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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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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친일 논쟁을 유발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뒤이어 색깔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집권당의 비상상황을 극복할 책임을 부여받은 그가 역사 논쟁을 유발하고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그는 일본과의 합동훈련이 자위대의 한국 주둔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겨냥해 '조선은 일본군 때문이 아니라 무능·무지 때문에 망했다'고 페이스북에 썼고, 12일에는 만해 한용운의 글인 '반성'을 왜곡되게 인용하는 방법으로 전날 주장을 보강하려 했다.

한용운은 자멸하지도 자모(自侮)하지도 말자는 취지에서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는가, 어느 개인이 자모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모멸을 받았는가"라고 썼다. 그런데 정진석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을 읽어보면, 한용운이 '조선은 외부 침략이 아닌 내부 자멸과 자기 모멸에 의해 무너졌다'라고 해석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정진석은 이런 논쟁의 와중에 일본제국주의 중일전쟁 공로자로 공식 지정된 조부 정인각의 행적이 불거지면서 친일 논쟁에 휩싸이게 되자, 색깔 논쟁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일 페이스북에서 그는 "북한이 어젯밤 9.19 군사합의로 설정한 서해안의 완충구역에 방사포를 쏟아부었다"고 한 뒤 "지금의 북핵 위기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합작품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동맹국 미국과 우리 국민을 기만한 문재인 정권의 5년 사기극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9.19 합의를 깼다고 판단됐다면 북한을 비판해야 하는데도, 이를 민주당·문재인의 잘못으로 연결하며 색깔 논쟁을 부추긴 것이다.

그는 16일자 글에서는 "대한민국은 친일세력이 세운,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입니까?"라고 한 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저지하려는 한미일 동해 훈련이 친일 국방이고 이 훈련이 일본군의 한국 주둔을 불러온다는 게 무슨 궤변입니까? 그런 생각이 기우라고 했더니 식민사관이라고 역공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북한과 연결지었다. "일본 식민지배의 아픈 기억 때문에 5000만 국민의 안전보장을 외면하는 것이 민주당의 길입니까?"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김문수 한 사람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18일에 쓴 글에서는 "민주당의 주류들은 요즈음도 북한은 항일 무장투쟁을 한 김일성이 만든 자주 정권이고 대한민국은 친일파 괴뢰정권이 세운 나라라는 생각을 언뜻언뜻 내비칩니다"라며 "경제력과 국력에서 세계 10위 안에 랭크되는 대한민국을 미제의 식민지, 일본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보는 것은 민주당의 자학사관입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런 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북한과 '우리 민족끼리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친일 논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생각과 자신에 대한 비판 세력을 북한과 연결지으려는 견해를 함께 드러낸 셈이다.

"반민족자 처단한다는 자는 공산당 주구"라던 삐라

친일 논쟁을 유발한 뒤 색깔론으로 공세를 펴는 정진석 위원장의 모습은 한국 현대사의 한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친일 청산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1948년과 이듬해에도 색깔 논쟁이 친일 논쟁을 밀어내는 현상이 있었다.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추진되던 1948년 8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 시기 서울에서는 공산당 음모를 운운하며 친일청산을 비판하는 삐라들이 살포됐다. 이날 발행된 <경향신문> 1면 상단에 인용된 삐라의 문구는 이렇다.

"대통령은 신성불가침이니 절대 복종하라. 반민족자를 처단한다는 자는 공산당 주구이다. 즉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철회하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통과된 다음날인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반공구국 총궐기 국민대회'가 열렸다. 대회 명칭으로 쓰인 '반공'은 '김일성 반대'가 아니라 '친일 청산 반대'였다. 이는 이날 궐기대회 결의문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겨냥한 데서도 증명된다.

2003년에 발행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0집에 수록된 이강수 정부기록보존소 학예연구사의 논문 '반민특위 방해 공작과 증인 및 탄원서 분석'에 소개된 이 결의문은 "동족 간의 화기를 손상케 하는 반민법을 시정하는 동시에 공산매국노를 소탕할 조문의 삽입을 요청하기로 결의"한다고 선언했다. 친일 청산을 국론분열책으로 몰면서 색깔론으로 그것을 덮으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결의문이었다. 

친일 진영과 이승만 정권은 9월 23일의 총궐기 대회를 위해 서울시민들을 강제 동원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논리를 구사했다. 다음날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 '민중 강제동원 반민법 반대 등, 국회서 중대문제화'에 따르면, 동 직원과 경찰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할 때 했던 말이 "아니 나가면 빨갱이라"라는 말이었다.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반민족행위처벌법 반대 국민대회에 참가하라는 강요와 같다.

색깔론으로 친일청산론을 덮는 이 방식은 성과를 거뒀다. 1949년 1월부터 본격화된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작업은 그해 6월을 기점으로 현저하게 기가 꺾였다.

친일논쟁에 갇힌 사람들이 빨갱이 논쟁을 일으키는 패턴은 그 후로도 그치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가 일제 식민지배 및 친일청산과 관련해 여전히 쳇바퀴를 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친일논쟁을 유발한 정진석 위원장이 뒤이어 색깔 논쟁을 제기하는 모습은 한국 현대사의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친일논쟁을 색깔논쟁으로 응수하는 방식이 대한민국 친일파들의 독창적 발명품이었던 건 아니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와 총독부가 썼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도발해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 뒤 중국 내륙 침략에 시동을 걸던 1930년대 중반의 일본제국주의가 구사한 방식 중 하나는 항일 비판세력을 '아카(あか)' 즉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전쟁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사상검증을 강화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을 억누를 목적으로 일제가 구사한 것이었다.

2013년에 <사회와 역사> 제100권에 실린 강성현 당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위원의 논문 '아카와 빨갱이의 탄생'은 "1935년 전후의 '아카'라는 적 만들기는 사회적 적대를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화하려는 시도였다"라며 "그 목표는 사상 검찰에 대한 견제를 뿌리치고 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항일세력을 탄압할 목적으로 일제가 구사했던 것이 색깔논쟁이다. 이 색깔론은 해방정국하의 친일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활용됐다. 친일논쟁을 유발한 정진석 위원장이 거침없이 색깔논쟁을 꺼내드는 것은 한국 현대사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줄 만하다. 이런 구태의연한 모습이 정당의 쇄신 책임을 맡은 정치인에게 어울리는지 곱씹게 된다. 

태그:#정진석, #색깔논쟁, #레드 콤플렉스, #친일 논쟁, #한미일 연합군사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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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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