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번도 책을 만들어보지 않은 세 사람이 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늦은 밤 한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어스름 불빛이 비치는 구석진 자리에 차 한 대가 서있다. 차 안에서 깜빡이는 불빛들, 헤어짐이 아쉬운 연인들일까? 불빛이 어른거리는 차가 수상한 지 순찰을 도는 분이 손전등을 비춰보신다. 차 안에 앉은 이정희, 이혜선, 장소현 세 사람은 각자 노트북을 들고 앉아 들여다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엥~'
'앗, 따가워!'


답답한 차 안 공기를 리프레시하겠다고 열어놓은 차창 틈으로 계절의 막차를 탄 모기들이 들이닥쳤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모기들 덕에 차 안의 세 사람은 연신 자신의 몸을 때려보지만 헛방이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모기와의 불가항력 전투를 벌이는 시간이 밤 11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다. 그 어두운 주차장 차 안에서 눈에 불을 켜고 노트북을 들여다 보며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는 세 여인들, 다름아닌 이정희, 이혜선, 장소현, 우리 세 사람이다.

퇴고의 무한루프 

퇴고는 밀 퇴(推) 두드릴 고(敲). '새는 연못가에서 나무 위에서 잠들어 있고, 스님은 달 아래 고요히 문을 두드리는구나.' 

당의 시인 가도의 시 중 일부분이다. 여기서 가도는 마지막 문구 '스님은 달 아래 고요히 문을 두드리는구나(僧敲月下門)'를 놓고 미는 것(推)으로 할까 두드리는 것으로 할까(敲) 고민에 빠졌다. 밀면 어떻고 두드리면 어떤가. 

그런데 시인은 이 글자 하나에 빠져 고관대작이 행차하는 줄로 모르고 '길막'을 해버린다. 다행히도 그 고관이 당의 유명 시인 한유였다. 그는 가도의 고심을 너그럽게 이해해 줌은 물론, '두드린다'가 나을 듯하다는 조언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유래한 '퇴고'. 글을 다시 다듬고 고치는 행위로, 글을 마무리 지을 때 여러 번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밤 11시 아파트 주차장에서까지 퇴고를 하기에 이르렀을까? 책이 한국 출판문화산업 진흥원에서 공모한 우수 출판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이혜선 선생님은 딱 이틀 좋았다고 술회한다. 솔직히 나는 반나절 좋았을까? 책 낼 돈은 마련됐는데, 책을 어떻게 내야할 지 너무도 막막했다. 그래도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출판 관계자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 유럽의 봄

관련사진보기


그래서 시작된 '퇴고', 우선은 내가 전체적인 글의 톤을 맞춰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정리하고 다 같이 한 번 보면 되겠지, 하는 야무진(?)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이미 두어 번 퇴고를 한 셈이었기에 순조로울 것이라 믿었다.

첫 퇴고는 언제였을까?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서, 그걸 함께 읽어보며 서로 '피드백'을 주던 한 '텀(term)'이 끝났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나의 그림책,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이라는 취지에 우리들의 글이 따라주지 못한 듯했다.

그림책 심리 수업을 함께 들은 터라 그로 인한 배경지식이 서로의 글에 엇비슷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더 세 사람의 색깔을 살려볼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이 '퇴고'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우리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글 '마음으로 떠나는 그림책 여행'을 제쳐두고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나는 장소현 선생님과 그림책은 물론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삶의 경험을 가진 이혜선 선생님의 풍성한 자원을 그림책을 빌려 풀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들의 경험을 글에 더하는 과정은 '퇴고'가 아니라, 거의 글을 새로 쓰는 과정이 돼버렸다.

끝이 없는 퇴고
 
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 유럽의 봄

관련사진보기


이미 수정에 수정을 걸친 터라 자신있게 내가 글의 톤을 맞춘다며 나섰다. 그런데 막상 글을 읽다보니 이건 새로 쓰는 거나 진배 없었다. 다시 그림책을 들춰보고, 모호한 표현들을 고쳐갔다. 미진한 내용들은 보충해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책이 되면 좋겠다며 쓴 글이었는데 이제는 이 글이 활자화될 것이라 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전체적으로 톤을 맞춘다고 맞춘 후 다같이 모여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검토'가 그만 끝이 없는 '무한 루프'가 되고 만다.

퇴고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 몰랐던 우리는 처음에는 여유롭게 한강이 보이는 북카페에서 만났다. 다행히 한적한 북카페 2층 조용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곳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업을 마무리한다 했다. 아니 우리의 퇴고가 영업이 끝날 때까지 끝날 기미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결국 우리는 6층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곳의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의 검토 작업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직 영업을 하는 곳이 있을까 고심하던 우리는 패스트푸드점 구석에 앉아 감자 튀김을 쌓아놓고 한 번의 퇴고를 마무리했다. 그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요령이 없는 우리는 서로의 집으로, 다시 서로의 사무실로, 그것도 모자라 한밤 아파트 주차장 차 안에서까지 퇴고를 거듭했다.

그런데 퇴고란 작업은 참 이상했다. 한번을 하면 또 할 게 생겼다. 글을 다듬고 나면, 맞춤법이 걸렸고, 맞춤법을 다듬고 나면, 저작권 관련 그림들을 검토해야 했다. 인쇄소, 북디자인 하시는 분들과 조율을 하던 출판사 유럽의 봄 대표 이혜선 선생님은 막연했던 퇴고의 과정에 현실감을 실어주셨다.

일일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그림책 표지를 허락받았고, 가수 모은에게 직접 연락을 해 그의 노래를 실을 수 있게 했다. 문장 부호 틀린 건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장소현 선생님. 한 문장을 가지고 이럴까, 저럴까 할 때 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이혜선 선생님, 그렇게 우리는 서로 보완을 해가며 한 편의 책을 완성해 갔다. 

이미 오마이뉴스 '책동네' 담당 기자님이 지적해 주신 바 있지만 나에게는 지병처럼 '작은 따옴표'를 남발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고 이게 또 발목을 잡았다. 전체 글을 내가 다듬었으니 작은 따옴표들이 넘쳐났다.

인쇄소에 넘겨야 해서 표지 등을 점검하는데 문장들이 다 이상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서로 의논하다 보니 마치 만화 속 글자들이 춤추듯이 문장 속 글자들이 다 따로 놀기 시작한다. '언니! 이제 그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오락가락할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던 혜선 선생님이 '마감'을 선언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퇴고가 끝이 났다. 이제 우리들의 글이 인쇄 중이다. 진짜 우리들의 책이 나오려 한다.

태그:#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