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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2년 세법개정안 토론회' 당시 모습.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2년 세법개정안 토론회' 당시 모습.
ⓒ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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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회예산정책처 주최로 '2022 세법개정안 토론회'가 열렸다.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감세안이 11월 국회에서 어떻게 논의될 것인지 전초전 성격을 띤 중요한 토론회였다.

기획재정부 측에서 정부안을 설명하고, 예산정책처에서 분석과 평가를 한 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지정토론자로 유호림 강남대 교수와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가 나서 토론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예년 토론회와 달리 기획재정부 측의 공격적인 발제가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기획재정부 측의 발제는 정부의 개정안 취지와 맥락을 건조하게 설명하는데 그쳐 왔다. 그러나 올해 고광효 세제실장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매우 적극적으로 개정안을 옹호하고, 이른바 '부자감세' 비판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다.

아래는 가업상속지원세제 관련 2019년 개정안 발표와 올해 발표를 비교한 것이다. 문투나 논지의 전개방식이 판이하다.
  
2019 세법개정안 토론회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일부
 2019 세법개정안 토론회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일부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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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세법개정안 토론회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일부
 2023 세법개정안 토론회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일부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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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세제실장 급의 '늘공'은 정권의 기조에 맞추는 차원에서 법안 취지 설명을 갈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철학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영역에서의 논쟁은 정무직 공무원이나 여당 정치인이 담당해 왔다. 고광효 실장의 발표는 이 선까지 나아갔다는 데서 이채롭다.

'세법개정안' 용어를 두고도 신경전이 있었다. 고 실장은 주최측인 국회예산정책처가 '세제개편안 토론회'로 쓰지 않고 오랜 관행에 따라 '세법개정안 토론회'로 쓴 데 불만을 표했다. 현 정부는 세법의 정비 차원이 아니라 세제 전반을 뜯어고쳤기 때문에 '세제개편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밝혀 왔다.  

현 정부의 세제개편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기재부의 태도 선회가 고광효 세제실장의 개인적 특성인지, 아니면 기재부 전반의 보수정치와의 유착이나 관료사회 일반의 정치화 경향을 대변하는 것인지 판별하기는 어렵다. 다만 '늘공'들이 적극적으로 보수적 지향을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 없게 된 것은 징후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우파 이데올로거'를 방불케 하는 무리한 논리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고광효 실장의 세제개편 관점이 전형적 우파 이데올로기의 내용과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가 눈에 띈다. 이를테면 가업상속공제 확대를 옹호하기 위해 중기중앙회의 실태조사 보고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다. 제도의 수혜자임이 명백한 이해관계자 단체의 자료가 정부측으로부터 인용된다면 편향성을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가업상속공제 확대 부분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가업상속공제 확대 부분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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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단을 분석에서 제외해버리기도 한다. 어느 계층에게 세금의 혜택이 돌아가는지 계산하는 <세부담 귀착>자료에서도 금융투자소득세 유예(1.6조 원)와 종부세 감면(2조 원)을 분석에서 빼 버렸다.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세목이 분석에서 제외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세금감면 효과가 커 보이게 만든다. 기재부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 세수 감면 효과는 1.2조 원에 그치지만, 실제로는 4.8조 원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금융투자소득세 유예(1.6조 원), 종부세 감면(2조 원)과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1.3조 원) 등을 합산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세부담 귀착> 부분
 기획재정부 발표자료 중 <세부담 귀착> 부분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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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통계자료를 기간을 잘라 취사선택하기도 했다. 법인세 인하를 옹호하기 위해,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이후 제조업 국내투자가 부진하고 해외투자가 늘었다는 그래프를 제시한다. 그런데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췄던 2009년에는 국내투자가 8% 감소했고, 해외투자는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은 함께 보여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업 투자는 경기동향, 사업비용, 소비시장 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조세회피처 수준의 낮은 세율이 아니고서야 법인세율이 투자에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도 말이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 그래프를 살짝 비틀기도 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바닥을 0이 아닌 20으로 삼았다. 이런 경우는 하단에 물결표시를 하는 편이 온당하겠지만, 과감하게 생략했다. 
 
기획재정부 발표 중 법인세 최고세율 비교
 기획재정부 발표 중 법인세 최고세율 비교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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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정치현안에 가려져 있지만, 수십조원의 향배가 갈리는 세법의 변화야말로 정권을 탈환한 보수정치의 '위시리스트' 맨 위에 있는 중대사안이다. 지지층의 핵심이익과 결부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획재정부가 매우 정파적인 형태로 옹호 입장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데서 앞으로 5년간의 '세금전쟁'이 만만치 않은 양상을 띨 것임을 짐작케 된다.

중용과 균형이 공무원의 미덕이었던 시대가 저무는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세법개정안,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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