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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있는 작품 속에서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찾아봅니다.인류의 역사와 문화, 생활 안에 숨어있는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감은 동아시아 특유의 과일로 한국·중국·일본이 원산지이다. 중국에서는 가장 오랜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과일 중 하나이며, 일본에는 8세기경에 중국에서 전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재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감은 단것이 귀했던 시대에 귀중한 과일로, 다양하게 이용했다. 조선시대에 여러 분야의 어휘를 모아 풀이한 사전인 <물명고>에는 여러 종류의 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수시(水柹)는 수분이 많고 맛이 좋은 것, 조홍(早紅)은 6월에 익는 작은 것, 홍시는 붉게 익은 것을 따서 따뜻한 곳에 두어 절로 홍숙시킨 것, 건시는 곶감, 백시·황시는 볕에 말린 것, 오시(烏柹)는 불에 말린 것, 준시(蹲柹)는 건시를 꼬챙이에 꿰지 않고 압편한 것을 가리킨다."

감의 주성분은 당질로 15∼16% 정도인데, 대부분이 포도당과 과당이다. 감의 떫은 맛은 탄닌 성분이다. 비타민C는 과육보다 감잎에는 훨씬 많이 들어있다. 곶감에 보이는 흰 가루는 시상(柹霜) 또는 시설(柹雪)이라고 한다. 

감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우리나라의 전통 음료인 수정과가 있다. 수정과는 국물이 있는 정과 형태의 음료로, 정과는 과일 등을 꿀이나 설탕에 조려 만든 우리나라 고유의 과자류를 뜻한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수정과는 화채, 식혜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였지만, 요즘은 주로 곶감수정과를 의미한다.

수정과는 가을에 곶감이 만들어지는 때부터 정이월(음력 2월)까지 겨울철에 즐겨 먹던 음료로, 생강이나 계피를 달인 물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곶감, 잣 등을 띄워 마신다.
 
조영석, 비단에 담채, 23.5x24.4cm, 간송미술관 소장
▲ 촌가여행 조영석, 비단에 담채, 23.5x24.4cm, 간송미술관 소장
ⓒ 공유마당(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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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작품 <촌가여행>이다. 이때 여행은 '女行'으로, 촌가여행은 '시골집 여자가 하는 일'이란 뜻이다. 초가에 올린 볏단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집을 배경으로, 부엌 뒤 감나무 아래에서 아낙이 절구질을 하고 있다. 어깨가 구부정한 중년 여성은 남색 치마에 미투리를 신고, 얹은 머리를 하고 있다. 나무에 줄을 매어서 널어둔 남자의 저고리도 보인다.

남녀 간의 내외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사대부 화가가 여성을 그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조영석은 아마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촌부를 보고 이러한 여성풍속화(풍속인물화)를 그린 듯하다.

감은 좋은 군것질 거리이자, 제사상에 오르는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마당가에 감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고바야시 기요치카, 1880년, 목판화, 24.7x36.1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 감과 동박새 고바야시 기요치카, 1880년, 목판화, 24.7x36.1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 위키미디어커먼스(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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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화가 고바야시 키요치카(1847~1915)가 그린 <감나무와 동박새>이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 서민 계층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다색 목판화를 말한다. 우키요에의 '우키요(浮世;부유하는 세계)'는 본래 '덧없는 세상'을 나타내는 단어였으나 에도시대에 들어 '쾌락적인 삶의 방식, 속세'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에(絵)는 '그림'이란 뜻이다.

여인과 가부키 배우, 명소의 풍경 등 세속적인 주제를 담았으며, 주로 목판화 형태로 제작되어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자포니즘에 영향을 주었다. 

약재로 쓰이는 감 꼭지

가을에 성숙한 감의 꼭지를 채취하여 말려 약재로 사용하는데, 이를 시체(柿蒂)라고 한다. 시(柿)는 '감, 감나무'를, 체(蒂)는 '꼭지(과실이 달린 줄기), 꽃받침'을 뜻한다.

시체는 냄새가 없고 맛은 쓰고 떫다. 시체는 기를 내리게 하는 작용이 있어 딸꾹질과 기침을 멎게 한다. 진정, 지사(설사를 멈추는) 작용도 있다. 밤에 자다가 무의식중에 소변을 지리는 야뇨증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약재에 얽힌 이야기가 조선 후기의 한문 야담집인 <청구야담>에 전해온다. 

유상(1643~1723)은 조선 후기의 의관으로, 천연두를 특히 잘 치료했다. 그는 임금의 부름으로 궁궐로 가는 도중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마마(천연두)를 앓고 난 아이를 업고 있었다.

그 여인이 말하기를, 마마가 곪을 때 빛깔이 검어지면서 아이의 숨이 통하지 않아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한 스님이 시체탕을 먹이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아기의 병이 나았다고 했다.

유상은 어젯밤 묵었던 집에서 본 책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았던 걸 기억했고, 천연두를 앓고 있던 왕에게 시체탕을 처방해 병을 고쳤다고 한다.

시체탕은 원래 가슴이 답답하고 딸꾹질이 계속 나오는 것을 치료하는 약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urilton7 에도 실립니다.


태그:#감,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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