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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있는 작품 속에서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찾아봅니다.인류의 역사와 문화, 생활 안에 숨어있는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인간이 우유를 음식으로 이용한 게 언제 부터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기원전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때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낙농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6.25전쟁 이후로 역사가 백 년도 되지 않는다. 

우유의 생산량을 살펴보면, 1961년에는 1,168t에 불과하던 것이 1998년에는 2,027,210t에 이르러 30여 년 사이에 2,0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연간 1인당 평균 우유 소비량도 1961년 45g에서 1998년 39.4㎏으로 현저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우유는 상류층 혹은 환자의 보양을 위한 치료식으로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다.
 
프레드릭 로웬하임
▲ 엎질러진 우유 프레드릭 로웬하임
ⓒ 아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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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 i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 그림이다. 이 작품을 그린 프레드릭 로웬하임(Frederick Lowenheim, 1869~1929)은 동화책 삽화가로, 컨트리 젠틀맨(Country Gentleman)과 우먼스 홈 컴패니언(Woman's Home Companion)의 잡지 1면 삽화로 유명하다.
 
1959년, 미 공보국
▲ care milk 1959년, 미 공보국
ⓒ 아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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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 공보국(USIA, 미국 해외 정보국)에서 제작한 그림으로, USIA는 1953년부터 1999년까지 운영된 미국 정부 기관이다. 이 기관은 행정부의 외교 기관이며, 교육 및 문화, 교류 활동, 국제 방송을 통해 해외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 이익 및 가치를 설명하고 지원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림의 왼쪽은 소의 젖에서 나온 우유의 지방을 분리하고 드라이오븐(drying oven)을 거쳐 '우유 한 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오른쪽 위에서는 우유 한 잔에 든 영양소를 알려준다. 우유의 칼로리와 단백질, 칼슘, 리보플라빈(비타민B2)의 양을 달걀, 닭, 생선, 밥을 얼마만큼 먹었을 때와 비슷한지 비교함으로써 알기 쉽게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아래 그림에서, 우유의 섭취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치아와 뼈가 튼튼해져,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파울라 모더존-베커, 1905년, 55.2x71.8cm
▲ 우유 수프가 있는 정물화 파울라 모더존-베커, 1905년, 55.2x7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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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의 그림으로 우유 수프(milk soup)가 있는 아침 식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모성과 여성의 운명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것들이 많은데, 단순화된 형태와 차분하면서 섬세한 색채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하였다. 

약용으로서의 우유

동의보감에서는 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은 달며, 독은 없다.
- 번갈(가슴이 답답하여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병증)을 멎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 오장을 보한다. 대장의 기를 잘 통하게 한다. 폐를 적셔주고, 폐의 기를 길러준다. 허해서 몸이 야윈 것을 보하며 살찌고 튼튼하게 한다. 죽을 쑤어서 늘 먹으면 좋다.
- 우유를 마실 때는 1~2번 끓어오르게 끓여 식혀서 마셔야 한다. 생것을 마시면 이질이 생기고, 뜨겁게 하여 마시면 곧 체하게 된다. 또한 단숨에 마시지 말고 천천히 마셔야 한다.

흔히 우유죽이라고 부르는 타락죽은 쌀을 물에 불려 갈아서 절반쯤 끓이다가 우유를 섞어서 쑨 죽이다. 타락(駝酪)이라는 말은 돌궐어(고대 튀르크어 방언의 하나)의 '토라크'에서 나온 것으로 '말린 우유'를 뜻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 초하루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는 타락죽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 왕의 식사를 담당하던 곳은 소주방이었지만, 타락죽은 보양음식이었기 때문에 소주방에서 만들지 않고 내의원에서 쑤어 임금께 올린 것이다.

서울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낙산(酪山)은 산의 모양이 낙타의 등과 비슷하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불린다.  조선왕조 때는 동대문 쪽의 낙산에 목장이 있어 타락산이라고도 하였다.

우유를 담당하던 기관인 우유소는 고려 시대부터 존재했는데 조선시대에는 타락색이라고 불렀다. 궁과 가까운 낙산에 있는 목장에서 짠 신선한 우유는 우유소를 거쳐 궁궐로 진상되었다. 이러한 우유 제품은 왕이 가까운 신하들에게 보양식으로 하사하기도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urilton7 에도 실립니다.


태그:#우유, #타락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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