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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훈씨는 파리 생활 7년차의 도시 디자이너이다. 15분 도시의 설계자인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파리지앵 한승훈씨 승훈씨는 파리 생활 7년차의 도시 디자이너이다. 15분 도시의 설계자인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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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동행이 있었다. 출국을 3일 앞두고 파리에 있는 한 청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원정대 기사 3탄인 "자전거 도시 만들기, '야금야금' 전략이 필요합니다"를 보고서 연락이 온 것이다. 41살 이 청년과는 블로그 댓글을 통해 먼저 연락이 닿았다. 오마이뉴스 쪽지창을 통해서도 똑같은 연락이 왔다.

그 내용은 '(자전거가) 자신의 관심사이며, 한국에서 일행이 온다니 반갑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여건이 허락하면 파리에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마침 파리시청과의 간담회 일정도 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분주한 연락이 오갔다. 출국하기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제안을 하게 되었다.

"함께 가기로 한 일행 중에 못 가게 된 사람이 있어, 빈자리가 있다. 체류에 필요한 예약은 되어 있고 비어 있는 상태이니 여건이 허락한다면 동행하는 게 어떻겠는가?"

시차가 있어 긴박했지만 이 제안을 출국 20시간여 전인 2월 22일 오후 5시경에 수락했다. 우리로서는 현지 사정에 밝고 여러모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든든한 가이드 한 명을 만난 셈이다. '일행이 모두 동의했고 환영한다'고도 전했다. 상대도 흔쾌히 응하며 일행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이 댓글과 쪽지가 생면부지 파리 청년과 원정대가 만나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승훈씨는 17번째 원정대원이 되었다.
▲ 출국 3일전의 연락 이 댓글과 쪽지가 생면부지 파리 청년과 원정대가 만나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승훈씨는 17번째 원정대원이 되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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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적인 제안과 수락, 그리고 일행이 된 승훈씨

이 특별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승훈씨. 승훈씨는 7년 전에 파리로 유학을 온 도시디자이너이다. 유학을 와서 그랑제꼴 L'Ecole de design Nantes Atlantique라는 교육기관에서 '시민참여형 디자인을 통한 도시재생'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더 놀라운 것은 '15분 도시 프로젝트'를 개발한 싱크탱크 'Chaire-ETI'에서 카를로스 모레로 교수와 함께 디자이너로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이란다.

나중에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며 승훈씨의 동행을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뒤, '사적영역'보다는 공공 분야의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하여 경관디자이너로 실무를 다년간 경험했단다. 차차 사람 중심의 디자인에 집중하고자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왔다는 설명이다. 파리에 온 한씨는 학업 이후 '15분 도시와 사람 중심 이동성'에 눈을 돌렸다고 한다. 특히 파리의 공유자전거를 주 이동수단으로 타고 한참 퍼스널 모빌리티에 관한 시야를 넓히고 있던 중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 전문적 영역에 관계하는 만큼 통역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한 때론 입이 있어도 말을 뗄 수 없어 답답한 우리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다. 더구나 우리가 궁금해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에 관한 깊이 있는 해설까지 가능하니 이보다 더 귀한 존재가 어디에 있으랴.

사실 일정 중에 한씨는 매우 바빴다. 한가한 틈을 내서 온 게 아니라 일정 중에도 계속 진행 중인 프로젝트 업무를 온라인을 통해 처리하고 꼬박 날을 세워가며 우리와 동행을 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승훈씨는 때론 통역을 돕는 또 다른 통역으로 때론 해설을 덧붙이는 가이드로 변신하였다.
▲ 원정대원에 섞여 있는 한승훈씨 승훈씨는 때론 통역을 돕는 또 다른 통역으로 때론 해설을 덧붙이는 가이드로 변신하였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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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함께 만들고 있는 파리의 변화 

- 파리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제가 놀란 점도 바로 그 점입니다.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경이로운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까?'를 매일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세계가 파리를 주목하는 것은 올림픽을 치르는 도시여서가 아니라 많은 도시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파격적이고 현명하게 풀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같이 느끼는 파리의 변화, 제가 15분 도시에 매료되고 관심사가 바뀐 이유이기도 합니다."

- 파리에선 이달고 시장이라는 인물의 리더십이 주요 포인트가 되는 듯합니다. 그와 함께 파리 시민들은 현재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파리 시민들은 원래 환경적인 문제나 기후위기 등에 대해 평소에 많이 생각하고 있는 편이에요. 필요가 인정된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파업에 대해서도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잖아요? 어떤 실험을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잘 짜인 설계와 완성도 높은 프로토콜을 통해 무난하게 파리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탑 다운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도 과단성 있고 용기 있게 (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파리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재선에서 무난하게 성공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시민단체와의 파리 시청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일종의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좀 더 거시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시청에서 계획을 잘 만들고 풀어가며, 시민단체의 경우 중간에서 완충지대의 역할-이를테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중간 평가과정 속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게끔 하는 등의-을 하는 보완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 같습니다."

- 이달고 시장의 페이스북 댓글에 '15분 도시는 좁은 구역 내에 가둬두려는 수용소를 구상하는 음모'라는 식의 내용들도 있던데 15분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생각합니다. 15분 도시라는 개념을 오해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15분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바운더리 안에서 완결적 구조를 갖춤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려는 패러다임입니다. 최근에 이런 데 대한 대응논리를 잘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런 견해와 싸운다기보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의 개발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며 이해를 높여가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며 열심히 연구 중입니다."

- 하우턴에는 처음이시죠? 여기가 시청 앞 도심의 한복판인데 이 풍경이 상당히 놀랍지 않습니까?

"(놀라운 이 풍경이) 충격적입니다. 네덜란드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자전거를 살펴보는 기회는 적었는데 대단하네요. 하우턴은 처음인데 네덜란드 도시들은 확실히 자전거를 중심으로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파리는 보행자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보거든요. 이런 길도 가능하겠다 싶지만 결과만을 눈여겨볼 게 아니라 어떤 과정 속에서 도출 되었을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원정대원들과 지내시는 건 괜찮으셨나요? 원정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저로서는 색다르고 행운의 시간을 얻은 것 같아 매우 좋습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 한없이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것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줄 구상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방문한 도시나 기관들과의 연락을 통해 추가적인 질문과 해소과정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2시간 정도의 미팅을 가지고 나면 따로 추가적인 시간이나 기회를 만들어서 후속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보편적으로 존재합니다. '아까 그 이야기 흥미로웠어요'와 같은 식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죠. 이를테면 '하우턴에 흥미로웠던 일행들과 함께 30여 분간의 화상 회의 같은 것을 통해서 이번에 만난 '안드레아'씨와의 연결을 통해 중재할 용의가 있습니다."
 
▲ 도시 디자이너, 파리청년 한승훈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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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나눈 이야기, 그리고 일정 중 나눈 여러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한다. 승훈 씨의 '사후적 연락을 위한 중재' 소식을 전하자 일행 중 누군가는 '누가 제발 이 연수 좀 끝내주세요~'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승훈씨와는 뮌스터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 더 머물고 돌아왔고 승훈씨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통해 파리로 되돌아갔다.

태그:#자전거 원정대, #자전거 도시, #파리 15분도시, #도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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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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