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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3주년을 맞이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일본 도쿄에서도 개최됐다.
 올해로 43주년을 맞이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일본 도쿄에서도 개최됐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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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 행사 나도 가도 돼?"
"너 핸드폰도 없는데 혼자서 찾아올 수 있겠냐. 그리고 한국어로 진행될 건데 괜찮겠어?"


올해로 43주년을 맞이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일본 도쿄에서도 개최됐다. 행사 준비위원으로 영상 설비 담당을 맡은 나는, 중2 아들에게 노트북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자기도 그 기념식에 가도 되냐고 묻는다. 미리 가서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너 혼자 와야 하는데 만약 못 찾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자 걱정 말라고 단언한다.

한국어는 기초적인 회화 밖에 모르기 때문에 두 시간에 달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행사를, 과연 녀석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내가 같이 가자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자발적인 참가 의사를 밝히는 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자연스레 5.18 기념식을 처음 열었던 때가 떠올랐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던 해부터 도쿄 거주 한인들은 매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자발적'으로 열어 왔다. 변변한 플래카드 하나 없이 우에노 한국식당에 열대여섯이 모여, 마치 '비밀결사'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몰랐다.

3년 만에 오프라인 개최로 열린 이번 기념식에도 70여 명이 참여했다. 멀리 뉴질랜드와 독일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그들은 원래 다른 일로 도쿄를 방문했다가 행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한다.

아들도 그렇고, 이 분들도 그렇다. '자발적인 참여'야 말로 진정한 광주정신이다. 김용덕 동경기념사업회 회장 역시 인사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을 예로 들며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민주주의는 선물이 아니라 투쟁이며 깨어있는 국민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기념사, 광주정신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특별강연을 맡은 게이센여학원대학 이영채 교수도 1980년 5월 27일을 예로 들면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특별강연을 맡은 게이센여학원대학 이영채 교수
 특별강연을 맡은 게이센여학원대학 이영채 교수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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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인 5월 27일 전남도청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자정이 지나면 공수부대가 올 것이고, 그들이 오면 무차별 학살이 자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남는 사람은 맞서 싸우자고 했다. 돌아간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고 총성이 들려왔다. 시민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30분 만에 총성은 멈췄다.

3개월 된 아이가 있어 집으로 돌아간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악몽 같은 30분이었다고 일기에 썼다.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왜 남았느냐라는 질문을 던져 보니 그냥 남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았던 그들은 정말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발적 참여와 희생이 우리 같은 이후 세대들에게 마치 숙명과 같은 근본적 물음을 던져 주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도청에 남았을까? 아니면 이유를 대고 빠져 나갔을까? 하지만 이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 돌아가도 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분들이 있고 그들 중 절반은 희생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중에 알게 된 우리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그리고 그 자문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윤상원 열사가 남긴 '오늘 우리는 비록 패배하지만 역사는 내일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말은 6월 항쟁으로 증명됐고, 4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됐다. 광주를 대표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각국 투쟁의 현장에서 반드시 나오는 노래가 됐고, 홍콩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은 '문화와 배경은 달라도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들에게 힘과 희망을 준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민주화 관련 운동들은 남자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민중항쟁은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를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항상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이 적극적, 주도적으로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민주화 관련 운동들은 남자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민중항쟁은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를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항상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이 적극적, 주도적으로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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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영채 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핵심은 여성의 존재였다고 강조했다.

"광주의 정신은 희생, 연대, 공존과 상생이다.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살자는 거다. 이러한 의식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한국의 시민의식 속에 면면히 살아 있다. 코로나 시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간호사들은 끝까지 책임을 졌다. 시민들은 질서를 지켰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광주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1980년 광주에선 신원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여성들이 주도해 그들의 장례식을 치렀고, 여고생들은 적극적으로 헌혈했다. 광주를 말할 때 항상 나오는 '주먹밥'도 그렇다. 주먹밥을 누가 만들었겠는가. 지금까지 민주화 관련 운동들은 남자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민중항쟁은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를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항상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이 적극적, 주도적으로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영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2년 연속 5.18 국립묘지 참배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연설문에 담긴 내용에 대해 "마치 Chat GPT에 넣고 돌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역대 대통령 추모사 중 최악"이라며 그 근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을 대동해 2년 연속으로 국립묘지를 찾은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추모사를 보고 광주정신을 전혀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은 광주를 광주라는 지역에 한정시켰다. 광주에 무슨 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는 말 자체가 광주 정신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사람의 발언이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정신적 흐름이 43년이 지난 지금도 아시아 각국의 민중들에게 면면히 이어져 나가고 있다는 인식이 결여돼 있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 윤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현충원 국립묘지에 묻힌 진압부대원의 묘비에 적힌 '전사'라는 부분부터 고쳐야 한다"며 "전사는 적과 싸우다가 죽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광주시민이 적이었다는 말이 된다"며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오월정신 국민과 함께'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오월정신 국민과 함께'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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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전일빌딩 헬기 기총사격의 진상, 최초 사격발포 명령권자, 극우세력들이 여전히 유튜브 등을 통해 퍼뜨리고 있는 북한무장공비 개입설에 대한 정부차원의 입장 발표, 미국의 개입여부 등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2년 연속 참여한 사실에만 주목하는 건 본질에서 벗어난다."

1시간 40여분에 걸친 이영채 교수의 강연은 드라마 <시그널>을 예로 들면서 끝났다.

"<시그널>이란 드라마를 인용하고 싶다. 20년 전 누군가가 현재의 우리한테 전화를 했다고 치자. 세상이 좀 바뀌었나요? 설마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망나니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고 그러진 않겠죠? 그래도 20년이나 지났는데 조금은 달라진 거 맞죠? 라고. 마찬가지로 43년 전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이 전화를 걸어 와 이렇게 물어본다. 한반도 평화 찾아왔나요? 역사문제나 노동조건 이런 거 다 해결됐죠? 43년이나 지났는데 당연히 좋아진 거 맞죠? 라고 물어왔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 전화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받았다면 네,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문재인 때도 최소한 조금은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전화를 받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꿀 수 있다. 나는 윤석열 정권이 이대로 간다면 결국 광주의 희생자들, 시민군들은 언젠가 다시 '폭도'로 불리게 될 것이라 본다. 그런 세상이 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여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전파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지금 현재의 우리만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꿀 수 있다."

아들의 메모 

가벼운 뒤풀이까지 포함해 약 3시간이 넘는 행사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감상을 물었다. 아니, 묻기 전에 스스로 "무슨 말 하는지 거의 이해는 못했지만 이런 행사엔 계속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바로 잠자리에 든 아들의 태블릿을 엿보았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5월 18일. 뭔지 모르겠지만 한국 행사에 참석. 한국어를 잘 몰라서 어려웠지만 사진과 NHK 자료화면 덕분에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였다. 관이 나열돼 있고, 길거리엔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얼마 전에 갔었던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앞으로도 아빠가 참여하는 행사엔 나도 갈 생각이다. 다른 아저씨, 아줌마들이 용돈 줬는데 절대 용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님.'

내년에도 변함없이 기념식을 해야 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이었다.

태그:#5.18기념식, #윤석열 추모사, #광주, #이영채 교수, #도쿄 5.18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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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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