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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이 새벽예배를 마친 6시 25분. 나는 예배실 옆 목양실(목사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앉았다.  공복에 따스한 차를 마시면서 아침 전까지 주어지는 2시간은 내겐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6시 32분, 사이렌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위급재난문자가 도착했다. 얼핏보니 '대피할 준비를 하고'는 문구가 보인다. 순간, 전쟁이 났는가 싶었고 전쟁이 나면 어떻게 어디로 대피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쟁이 났어도 할 수 없지, 그냥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하는 생각을 하며 상황파악을 했다. 인터넷에서는 실시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위급재난문자에 관한 보도는 없었다. 긴급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 걸 보니 뭔가 잘못된 것인가 싶은데, 댓글창에는 여기저기서 재난 문자가 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이어 행정안전부는 6시41분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다시 보냈고 서울시는 경계경보해제를 알리는 안전안내문자를 발송했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이어 행정안전부는 6시41분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다시 보냈고 서울시는 경계경보해제를 알리는 안전안내문자를 발송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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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옥수동에도 울렸습니다" 하고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난 뒤. 아직도 기도를 하고 있을 교인들이 생각나 예배실로 갔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대체로 7시 정도까지 기도하는데, 사이렌소리에 놀라 일찍 돌아간 것이다.

재난문자가 사실이 아니기만 바라고 있는데, 어디에 설치됐는지도 모르겠는데 확성기에서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왕왕거려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두 번 정도 확성기 방송이 나오고 응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쟁이 났구나. 이 정권에서 전쟁만 안 나면 다행이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 그렇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그때 둘째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하긴, 그냥 집에 있어야지. 어디로 대피를 해? 기다려봐."


그리고 나서 잠시 뒤 다시 핸드폰이 비상음을 냈다. 재난문자가 오발령이었다는 내용의 문자다. '6시 41분'이라고 적혔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발령 문자까지 크게 들리니 놀란 가슴이 더 놀란 것이다. 일본에 가 있는 큰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뒤죽박죽이 돼 버린 아침

"아빠, 일본도 난리가 아니었는데, 일본보다 더 늦으면 어떻해?"  

아마도 일본 오키나와에선 우리보다 빨리 긴급재난문자가 전해진 모양이다. 뒤죽박죽이 돼버린 아침을 보냈다.

수요일에는 오전 11시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모이자 마자 대화의 주제는 재난문자에 관한 것이었다. 교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어디로 대피를 해요?"
"신금호역으로 가면 된데요. 거기가 지하 8층 정도의 깊이래요."
"거기 가면, 안전해요?"
"전쟁나면 그냥 끝이에요. 전쟁이 나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때는 평화통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던 나라가 이젠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됐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점심 후에 뉴스를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과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위급재난 문자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위급재난 문자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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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짧은 시간 사이에 벌어졌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보니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새벽부터 전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일상을 뒤흔들어놓은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깨닫질 못하고 '당연한 일'처럼 말한다. '만약을 대비해서 이 정도의 혼란이야 어떠냐'는 식의 태도다. 무책임하다. 

이미 정부의 미숙한 조치에 대한 비판기사들이 나왔으니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옥수동에선 확성기로도 두 번의 방송이 나왔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지,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혹시 옥수동만 그랬던 것인지 타 지역도 그랬던 것인지 알고 싶다.

재난문자와 두 번의 확성기 방송, 하필이면 그 시간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간 긴급호송차량, 이 모든 것들이 비록 10여 분에 불과한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일들을 통해서 이 정부가 얼마나 준비가 덜 됐는지, 국민의 안전을 맡길 수 없는지, 언제든 사고가 나도, 심지어는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임을 확인한 비참한 날이었다. 안전 대응에 미숙한 정부가 민주노총의 집회엔 캡사이신까지 준비해서 진압하겠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아하다.

태그:#긴급재난문자, #확성기방송,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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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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