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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독서 모임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등장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굴드의 연주를 듣다보니 바흐를 치고 싶어졌다. 시간이 꽤 흘러 얼마 전에야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Italian Concerto BWV 971)을 시작했다. 인벤션을 배운 이래 수십 년 만의 바흐다. 연습이 즐거우면서도 어렵다. 

이탈리안 협주곡은 원제가 이탈리아 양식에 의한 협주곡이다. 협주곡이라고 하지만 건반악기(하프시코드)를 위해 만든 독주곡. 바흐는 비발디 등의 이탈리아식 협주곡을 자신만의 양식으로 실험했다. 오케스트라와 독주자가 협주하는 방식의 협주곡을 건반 악기에 적용하여 독주부와 총주부의 교차와 대비 효과를 살렸다.
 
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1악장 악보
▲ 이탈리아 협주곡  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1악장 악보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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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과 왼손, 글과 그림

일반적으로 '피아노 연주' 하면 오른손이 주요 선율을 담당하고 왼손은 그것을 거드는 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바흐 시대의 음악은 다성음악으로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도 지분을 동등하게 갖는다. 두 성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상호작용한다. 따로 또 함께 하모니를 구축해 나가는 음악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으로 대위법이 있다. 엄격하게 대위법이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협주곡 또한 형식 안에서 주제를 반복하고 축소, 확대되며 악상의 이원화, 통합 과정에서 나오는 바흐 특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한다. 1, 3악장은 경쾌하고 2악장은 낮은 장식음이 반복적으로 흐르며 주제선율이 진행된다.

음악에서만 대위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에서도 글과 그림이 서로 대위를 이룬다. 팻 허친스의 <로지의 산책>이 대표적 작품이다. 글만 보면 암탉 로지가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내용에 불과하다.
 
로지의 산책 일부로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 페이지 참고
▲ 로지의 산책 로지의 산책 일부로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 페이지 참고
ⓒ 도서출판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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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의 산책 일부로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 자료 참고
▲ 로지의 산책 로지의 산책 일부로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 자료 참고
ⓒ 도서출판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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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림에서 로지는 자신을 노리는 여우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따돌린다. 그림 속에서만 등장하는 여우는 장면마다 긴장과 웃음을 준다. 그림이 글의 보조가 아니라 동등하게 주요 요소인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도 그림책을 그림이 삽입된 짧은 글로 된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삽화가 있는 동화나 소설과 그림책을 구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 만난 그림책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독서 경험을 제공했다. 글, 그림의 관계에 담긴 세계의 깊이와 넓이, 아름다움에 놀랐고 빠져들었고 결국 그림책을 쓰고 있다.

이렇게 그림책만의 고유성은 바로 글과 그림의 독립적이면서 상호 교차와 대립, 조화로부터 온다. 작가 유리 슐레비츠의 말을 빌리자면, '글은 그림을 반복하지 않고, 그림도 글을 반복하지 않는다.' 글의 보충 설명, 장식으로서 그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문법을 가진 텍스트인 셈이다.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7세까지의 아이들을 주요 내포 독자로 하기에 작가의 치밀한 기획에 따라 귀로 듣는 글과 눈으로 보는 그림이 독립되면서도 상호작용을 이룬다. 아이들은 귀신처럼 그런 요소들을 찾아내고 즐기고 맛본다. 성인 독자들은 문자에 익숙하기에 글을 먼저 이해하고 그림을 다시 읽는 식으로 그림책과 친해진다.

제3 의미의 탄생

이탈리안 협주곡을 배운 지 4회 차, 1악장의 절반 부분 정도까지 연습 중이다. 바흐의 곡은 피아노가 개발되기 전,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므로 악기가 가진 특성과 느낌을 살려 부드럽게 이어 치는 레가토(legato)가 아닌 논 레가토(Non legato) 주법으로 끊어 연주해야 한다. 

똑같이 끊어 치면 편하겠지만, 팔분음표는 끊어서, 십육분음표는 이어 치되 전체적으로 양손 각각의 느낌과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살려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글과 그림 각각의 기능, 적절한 조화를 각각 살피며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써 가는 과정의 기쁨과 어려움은 바흐의 음악과 꽤 닮았다.

그림책에 빠진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러한 그림책의 속성이 독자를 적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마치 바흐를 연주하면서 왼손, 오른손이 쉴 틈 없이 별도로 움직이지만 조화로움을 확인할 수 있듯, 독자도 글과 그림을 따로 또 같이 읽고 합쳐서 제3의 의미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림은 글과 달리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게 만드는 것이 그림책의 묘미이다. 개인의 삶, 독서 경험 등에 따라 백이면 백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거기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흐하면 자동 연상되는 굴드의 연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의 연주도 좋아한다. 굴드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느낌이라면, 리히테르는 내 안에 깊이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게 한다.

낭만주의 시대 이후 악보에 빠르기나 음 길이 등을 표기하여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흐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에는 악곡의 형식과 구성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작곡 당시 건반악기의 특성까지 고려할 때, 연주자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향유하고 몰입하는 즐거움

같은 곡을 두고도 연주자의 해석과 전달되는 느낌이 다르듯, 그림책 또한 읽는 사람의 삶과 경험에 따라 여러 층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린이의 내면에서 온갖 상상이 가능하듯이 그림책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림책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아이, 어른 구분 없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고 현실로 돌아온 후의 변화, 성장, 해소를 경험하게 한다. 

게다가 그림책을 두고 아이와 나누는 상호작용은 발달과정에 따라 마주하는 과제들을 자연스레 나누고, 고민하고, 성취할 수 있게 돕는다. 더불어 어른 독자는 자신의 삶과 독서 경험 등을 대입해 풍성한 해석의 즐거움, 정서적 위안을 누릴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활력과 정서적 환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음악이든 그림책이든 작곡자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나만의 해석을 해나가려다 보면 그것을 면밀히 살피고 깊게 생각하게 된다. 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다보면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된다. 예술은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영화도 드라마도 요약본과 빨리감기로 보는 세상. 그림책 한 권을 깊이 들여다보고, 음악 한 곡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는 언뜻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을 들여 향유하고 몰입하는 즐거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삶의 주체로 세우는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저희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립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바흐, ##대위법, ##그림책, ##이탈리아협주곡, ##예술의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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