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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을 때, 한동안 피아노를 치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주 2회 학원을 오가며 건반 앞에 앉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체르니와 모차르트 소나타를 다시 치고 소품 위주로 연습을 했다.

2년 하고도 몇 개월 간 비슷한 일을 반복하자 배운 곡의 수는 늘었지만 어떤 허기가 올라왔다. 분명 칠 수 있는 곡은 많아졌는데 제대로 알기보다 진도가 중심이 되는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었다. 

밀려드는 마음의 허기
 
피아노 치는 일에서도, 회사 일에서도 어떤 허기가 올라왔을 때.
 피아노 치는 일에서도, 회사 일에서도 어떤 허기가 올라왔을 때.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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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일요일 아침, 온라인으로 고전문학 독서 모임에 참여해 온 지 3년 차다. 대부분 처음 접하는 책을 읽지만, 종종 예전에 본 작품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번 6월 초에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20대에 이미 본 책이었다.

분명 읽은 책인데 낯설었다. '<달과 6펜스>가 이런 내용이었던가?' 처음 펼친 것처럼 책을 읽어갔다. 예전엔 줄거리만 파악하며 그냥 '읽기만' 한 것. 촘촘히 등장인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 작가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고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으니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독서경험과 모임을 통해 한결 풍성하게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한 느낌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간략하게나마 후기도 남겨두었다. 다음에 읽으면 또 새로운 것이 보이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은 시간은 내 것으로 남았다.

피아노를 치며 느끼던 허기는 이와 유사했다. 악보를 읽을 줄 알고 연주가 되고 곡에 대한 경험도 쌓였지만 어린 시절에는 한 곡을 배워도 꼼꼼하게 배웠고, 이론적 지식도 익혔다. 당시 재미있게 배웠던 음악 이론은 지금은 대부분 휘발된 상태다. 아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제대로 모르는 기분이랄까.
 
올해 발매된 손열음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과 풍월당에서 나온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 평전
▲ 다시 처음처럼 올해 발매된 손열음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과 풍월당에서 나온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 평전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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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원장님은 자녀 셋 모두 음악 전공자로 키우셨는데, 원생들에게도 연주뿐만 아니라 이론과 감상 등, 예술이자 학문으로 음악을 배우고 즐기는 태도를 형성해 주려고 애쓰셨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하나를 배워도 촘촘히 배움을 확장하는 습관과 태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피아노를 친다. 물론 아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어린 시절 피아노를 접할 때 느꼈던 설렘과 경이로움 보다 배웠던 곡들을 기계적으로 치고 만 있었다. 이왕이면 채워지는 느낌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원장님께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렸고, 새로운 마음으로 바흐의 곡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챙길 것이 많고, 진도도 더디지만 재밌게 연습하고 있다. 다양한 연주 버전을 찾아 듣고, 작곡자와 곡의 유래도 살피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연주자의 평전이 있다는 걸 최근에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되어 구매했다. 바흐를 배우다보니 잊어버린 이론도 다시 천천히 공부하고 싶어진다. 피아노의 시간이 주는 밀도가 한결 촘촘해진 느낌이다. 연습에 갈 때마다 다시 설렌다.

회사 일의 무기력함

14년째 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몇몇 부서에서 여러 업무를 도맡았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부서별로 하는 일을 파악하랴, 관계도 맺으랴, 일을 배우면서 하루하루 긴장 상태였지만 이제는 많은 것들에 익숙해졌고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 안 하게 됐다.

더뎠던 일을 빠르게 처리하게 된 한편, 안다고 방심했다가 보완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전에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두세 번 확인했는데, 어느새 익숙함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업무 성격 자체가 주기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기 보다 하던 일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긴장감 없이 매일 비슷비슷하게 업무시간을 보내고 나면, 피아노를 치는 것에만 만족하며 학원을 오가던 심정과 별다를 바 없는, 헛헛함이 올라왔다. 

언제부터 나는 성장을 멈추게 되었을까? 곰곰히 되짚어 보았다. 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때, 한계 지어진 업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때, 그리고 어느 순간 일이 몰리는 것에 손해 보는 것 같은 몸을 사리게 된 이후부터인 듯하다.  

몇 년 전, 6년간 일한 부서에서 일이 주어지면 야근이며 주말근무까지 해 가면서 애를 썼다. 한창 배워야 할 때라 생각했고, 일에 대한 책임감도 큰 편이라 열심히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또다른 일이었다. 요령껏 자기 계발에 몰두한 사람들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데도 사적으로나 회사 내에서도 잘 풀리는 상황에 억울함도 겪었다. 그 후로는 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맡은 바 역할만 충실히 하자는 축소지향의 자세로 돌아섰다. 

도전보다는 익숙한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나, 열심히 하면 도리어 나만 손해니 적당히 하려는 태도는 조금 더 영리하게 살아가는 요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의 밀도는 점점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요령이 나를 지켜주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무기력함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된다.

피아노의 시간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의 중요성을 매일 실감하는데, 사십대 중반인 나에게도 성장은 필요한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잘 되지 않는 것을 바꾸는 식으로 변화를 주면서 그 일을 지속할 동력을 얻고, 또 다른 일로 확장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내 일을, 삶의 순간을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돌보게 된다.

피아노를 치면서도 기계적인 연습만이 아니라 곡과 관련된 요소들을 살피고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직접적으로 연주에 영향은 주지 않지만, 피아노를 오래 즐기고 성장해가고 있다는 충만감을 주었다. 비록 자발적 취미 생활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회사 일에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회사 일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퇴근 이후에도 내 삶은 있다. 하지만 하루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발전없이 매일 비슷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어떨까? 아는 것이니 하던 대로 하고, 상사와 부딪히기 싫고 혼자 독박을 쓰는 것이 억울해서 '적당히' 보낸 시간은 내 삶의 밀도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는 곧 마음의 허기로 이어지고. 고민이나 의문 없는 습관적 반복과 현상 유지는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시 나를 갱신하고 싶어졌다. 환경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맞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기준으로. 회사에서의 시간도 한번 뿐인 내 삶이고 그곳에서의 내 모습도 나니까.

퇴근 전도 후도 모두 내 인생, 눈치나 비교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삶의 밀도는 그것에 얼마나 솔직하고 용기있게 대응하느냐로 결정되지 않을까. 같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그 단단함은 분명 다를 것이다. 더딘 진도에도 한 소절 한 소절 생생하게 세포에 각인되며 충만함이 쌓이는 피아노의 시간처럼.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이미알고있다는착각, ##멈춤, ##지속적인성장, ##단단한삶의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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