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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아빠, 롤러스케이트 타고 싶어."

며칠 전 딸아이가 말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롤러스케이트가 갑자기 왜 타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적극적이고 의지가 강한 딸의 요청으로 계획에 없던 롤러스케이트를 타게 되었다.

차로 15분 거리에 스케이트장이 있다. 접근성이 좋은 데다 시설도 깔끔하니 괜찮아 보였다. 문제는 딸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처음이고 나도 완전 초보라는 것.  트랙을 돌기는커녕 끝도 없이 이불킥만 하다가 오지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버님은 (타지 마시고) 딸 잡아 주시죠."

사장님도 나에게서 초보의 기운을 강하게 감지하셨는지, 괜히 넘어지지 말고 연습 트랙에서 딸을 잡아줄 것을 제안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둘째치고 딸과 함께 놀기 위해 온 것이니,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롤러스케이트를 빌렸다.

혹시 몰라 딸을 위해 보조기도 같이 대여했다. 보조기는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하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기구이다. 신발을 갈아 신음과 동시에, 딸아이는 예상대로 하늘을 향해 쉴 새 없이 이불킥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보조기를 치워버리더니, 끙끙 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딸은 상위 10% 내에 드는 수준입니다."

초보인 나는 잘 모르지만 사장님이 그리 말해주시니 놀라움과 기쁜 마음이 동시에 솟구쳤다. 딸아이는 땀범벅이 된 채 끊임없이 넘어졌지만, 눈빛과 움직임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넘어져도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꼭 닮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꼭 닮았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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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 남짓한 트랙 안에서는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코너마다 작은 의자가 있었지만, 트랙에 있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전진했다. 저마다 스케이트를 타고 끊임없이 도는 모습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네 삶 같았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넘어졌다. 앞으로 넘어지는 사람, 다른 사람과 충돌하는 사람, 이불킥을 하는 사람 등 넘어지는 모습도 다양했다. 초보자들을 위한 안전장비도 마련되어 있었다. 손목, 팔꿈치, 무릎 보호대와 헬멧, 엉덩이 보호대도 있었다. 숙련된 사람들은 보호장비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초보들의 경우 반드시 보호기구를 착용한 채 트랙을 돌아야 했다.

아무리 많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만 했다. 내가 한 바퀴를 돌 때 3바퀴를 도는 사람도 있었다. 중심 잡기도 버거운 나와는 달리 쌩쌩 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약간 위축되기도 했다.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한다고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실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저마다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꾸 넘어지느라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도, 보조기를 잡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도 각자의 템포로 전진했다.
 
딸아이가 보조기를 잡고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딸아이가 보조기를 잡고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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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수없이 넘어질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손을 잡아주거나 마음을 졸이며 파이팅을 외치는 것뿐이었다. '남들은 잘 타는데 너는 왜 자꾸 넘어지냐, 피곤한데 괜히 나와서 다치는 건 아니냐' 같은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딸을 응원하던 나는 문득 한 달 전에 있었던 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이가 처음으로 수학 시험을 치르던 날이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딸과 마주쳤을 때, 딸은 한달음에 내게 달려와 외쳤다.

"아빠, 나 60점 맞았어!"

내심 '6'이 아닌 '9'를 바랐지만, 아빠에게 웃으며 소리치는 딸에게 속마음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어... 그래! 우리 다음번에는 좀 더 잘해보자..!"

그날 내내 딸은 시무룩했다. 평소 에너지가 넘치는 딸이 풀이 죽었거나 화가 날 때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생각보다 첫 시험 점수가 별로라서 속이 상했던 것일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빠, 왜 잘했다고 칭찬 안 해줘?"

60점이라는 점수에 대한 아빠와 딸의 기준은 달랐다. 딸은 아빠가 당연히 칭찬을 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아직까지는 공부에 크게 취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부가 아닌 다른 것들, 음악과 미술, 체육, 만들기와 같은 것들에 무척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일기를 가장 잘 쓰는 아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도 밖에서 많이 뛰어놀다 보니 무릎 근처에는 시퍼런 멍이 사라질 날이 없다.
 
작년 5월 진행되었던 아파트 주민행사에서 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작년 5월 진행되었던 아파트 주민행사에서 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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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성향은 나와는 정반대인 것들이 많다. 변화를 싫어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서툰 아빠와는 달리, 딸아이는 항상 새로운 것에 환호한다. 아빠는 작은 실패도 두려워하고 항상 시작을 망설이지만, 딸은 무슨 자신감인지 무엇이든 일단 손부터 들고 본다.

아빠는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딸아이는 밝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싫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무척 애착이 강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딸의 손을 잡아주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한 달 전 딸아이가 왜 서운했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9살 딸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들보다 높은 시험 점수가 아닌, 아무리 넘어져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 든든한 아빠였다.

비교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딸아이가 종이와 테이프, 솜을 활용해서 새우깡을 만들었다.
 딸아이가 종이와 테이프, 솜을 활용해서 새우깡을 만들었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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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지금 내 삶을 봐도, 주위를 둘러보아도 행복은 확실히 성적순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60점을 받았다는 딸아이의 말에 내가 보인 반응은, '적어도 남들만큼은 성적이 나와야 행복할 것'이라는 나의 무의식이 겉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평소에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대놓고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지만, 아빠의 말 한마디는 딸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자라기도 전에 치열한 경쟁, 취업난이 가득한 현실과 마주한다. 자녀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이 없으면서도, '아이들이 그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사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뒤처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시험 점수와 성적만으로 자녀의 가치를 측정하고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아이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믿고 싶다. 옆에 있는 친구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는 것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내 자녀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을 함께 찾고 응원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 남들보다 천천히, 어색하게 트랙을 돌던 딸아이를 응원하던 순간은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

아이들은 1등 성적표가 아닌 부모의 격려와 응원을 먹고 자란다. 자녀들이 앞으로 마주칠 실패의 순간들 속에서 실망과 좌절이 아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못해도,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교가 아닌 격려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눈치를 보고 위축되는 것이 아닌, 좀 더 자신감 있는 당당한 자녀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롤러스케이트장, #9세 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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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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