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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기자말]
나는 입사 초기에 환자를 내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열정이 넘치는 간호사였다.(자료사진)
 나는 입사 초기에 환자를 내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열정이 넘치는 간호사였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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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동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라고 기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늘은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 달 20일 근무 중 5번만 점심을 먹어도 성공한 달이다. 그나마 나의 점심시간을 줄여야 시간에 맞춰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기본 업무는 물론이고 수술환자 전후 처치도 하고 일정에 맞춰 검사 스케줄도 진행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너무 많다. 특히 환자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그 환자를 집중해서 간호해야 한다. 내가 점심을 포기해야만 환자가 간호받을 수 있는 구조다.

입사해서 지금까지 여유 있게 식사하고 일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환자들이 스테이션에 와서 무엇을 요구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잠시만요. 들어가서 기다리세요"다. '간호사들은 뭐가 그리 바쁘길래 바로 해결을 못 해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 혼자 12명의 환자를 책임지고 봐야 하니 환자의 요구를 바로 들어줄 수가 없다. 12명의 환자가 한 가지씩만 요구해도 나에겐 기본적인 업무 외에 해결해야 할 12가지 숙제가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간호 일을 처음 시 작했을 때 '입사하면서부터 퇴사를 고민한다'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나는 입사 초기에 환자를 내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열정이 넘치는 간호사였다. 특히 긴 시간을 투병하며 힘들어 하던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눈물이 났고, 환자가 쓰던 병상을 볼 때마다 환자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지면서 환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회복을 위해 진심으로 간호하던 나의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혼자 12명의 환자를 돌보게 되면서 초창기 때와 달리 컨디션 떨어지는 환자 없이 무사히만 하루를 보내면 운 좋은 근무였다고 생각하게 됐다. 보호자와 많은 시간 애도하고, 위로해주고도 싶지만, 너무 바빠서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는 내가 공감하는 간호사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는 늘 적정인력이라고 하지만 현장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호사 휴가를 고려하지 않고 인력을 배정하기 때문에 휴가 가는 것은 너무 힘들다. 누군가 갑자기 퇴사하거나 경조사나 질병으로 공백이 생기면 나의 한 달 근무표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남아있는 간호사들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몇 달간 자신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로지 일만 하며 버텨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백이 채워지지 않고 계속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퇴사조차 순번을 지키며 기다려야 그나마 예의를 지키는 간호사라는 얘기를 듣는다. 동료 간호사들은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퇴사하고, 남아있는 간호사들은 그 공백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또 퇴사하게 된다.

퇴사하면 그 자리로 또 다른 간호사들이 들어온다. 그러나 신규 간호사가 배정되어 와도 이전 간호사의 업무를 오롯이 혼자 담당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니, 기존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들을 가르치면서 일을 해야 하니 인력이 더욱 더 부족한 셈이다. 이 때문에 신규 간호사 투입 후 인력 부족 상황이 해결되기까지는 몇 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신규 간호사와 나이트 근무 서는 날 있었던 일
 
그가 담당한 환자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점점 떨어지더니 결국 산소 수치가 떨어져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주치의한테 빨리 연락해!"라고 말하고 응급상황 안내방송을 요청했다.(자료사진)
 그가 담당한 환자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점점 떨어지더니 결국 산소 수치가 떨어져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주치의한테 빨리 연락해!"라고 말하고 응급상황 안내방송을 요청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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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간호사와 단둘이 나이트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그가 담당한 환자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점점 떨어지더니 결국 산소 수치가 떨어져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주치의한테 빨리 연락해!"라고 말하고 응급상황 안내방송을 요청했다. 마음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주치의가 도착했고 환자 상태를 보더니 기관내삽관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나는 재빨리 카테터를 꺼내며, 신규 간호사에게 곡반에 생리식염수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신규 간호사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고, 어떤 물품이 응급카트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매기 시작했다. 주치의는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하며 핀잔을 주었다.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의사가 튜브를 삽입했고 나는 신규 간호사에게 튜브에 앰부를 짜달라고 했다. 

하지만 신규 간호사는 어찌할 줄 몰라하며 허둥거렸고 결국 내가 앰부를 짜고 신규 간호사에게 굵은 정맥 라인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신규 간호사는 떨리는 손으로 IV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환자에게 투여할 약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지연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주치의가 "라인도 한 번에 못 잡아요?"라고 말하면서 불안감은 더 고조되었다.

환자 혈압은 계속 떨어졌고 수액 투여가 급했다. 기관내삽관 지원도 버거운 상황에 모든 걸 해야 하다보니, 내 마음도 급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한 번에 라인을 잡았고, 환자는 응급처치 후 중환자실로 이송했다. 응급상황은 종료되었고, 밤새 해야 할 업무들로 한숨만 나오는 긴 밤이었다. 응급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신규 간호사는 결국 병원을 그만두었다.

이런 응급상황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싫다. 10년 차인 나도 그러한데 신규 간호사는 오죽했을까? 신규 간호사의 퇴사가 단순히 간호사로서의 자괴감 때문일까? 병동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늘 불안정한 상태로 돌아가는데 말이다. 

간호사로서 나의 희망은 단 하나

나이트근무 때 내가 담당하는 환자는 18명이고 총 2명의 간호사가 36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 밤이라고 환자 수가 줄지 않는데 낮과 비교해 간호사는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다. 만약 나이트근무에도 낮과 똑같은 숫자의 간호사가 일을 한다면 어떨까? 신규 간호사와 같이 근무를 하더라도 응급상황이 오면 선배 간호사와 부담 없이 상황을 이겨냈을 것이다. 신규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의 노하우를 보고 배우며 경험을 쌓을 것이고 중증 환자를 돌볼 때도 두려움보다는 케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을 1:5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조합이 현장을 알아주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했다. 간호사 대비 환자 기준 1:5가 현실적으로 마련된다면 현장은 많이 바뀔 것이다. 인력 부족으로 생기는 오류도 많이 줄어들고, 환자 요구에 맞춘 간호도 가능해질 것이다. 간호사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킬 수 있어 병원을 떠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의료기관은 간호사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인력 충원으로 간호의 질을 향상해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야 한다. 노동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간호사의 근무 환경만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질을 개선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환자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뒤에서 불만만 이야기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 간호사들이 안전하게 환자를 지킬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며 나아갈 것이다. 비록 한 명의 현장 간호사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현실을 바꿀 것이다. 적정 인력기준 마련은 간호사로서 나의 희망이며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현직 간호사입니다.


태그:#보건의료, #병원, #인력부족,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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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보건의료노동자의 친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산업 노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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