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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나는(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의사, 간호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나는(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의사, 간호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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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기로가 있는 곳,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웃음과 울음이 엉키는 곳. 응급실에서의 십수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라고 하면 "힘들겠다", "무섭다", "독할 것이다", "불친절하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일부는 인정이 되는 부분도 있고, 일정 부분은 억울(?)한 점도 있다. 나도 내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를 때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무섭고, 독하고, 불친절한 게 맞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중년의 남성 환자가 체한 것 같다며 보호자와 함께 응급실로 왔다. 명치가 아프다고 하여 손으로 아픈 곳을 만져보라고 하니 가슴 정중앙을 가리켰다. 명치가 아니라 가슴이었던 것이다.

가슴 통증 환자는 곧바로 심전도를 찍는다. 환자복을 주면서 상의를 환복하도록 하고, 심전도 찍어야 하니 단추는 잠그지 말고 누워계시라면서 커튼을 닫고 나왔다. 인턴에게 환복하면 심전도 찍어달라고 얘기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는데, 환자를 떠나온 지 1분 남짓 되었을까 커튼 안에 있던 환자의 보호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의 이같은 목소리는 큰 북을 울리는 것처럼 머리로 전달돼 마음과 몸까지 요동치게 만드는 신비하고도 묘한 천둥소리 같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나는(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의사, 간호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소리가 끝나기 전에 몸이 먼저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커튼을 열어보니 환자가 침대에 누운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맥박을 촉지하려고 서혜부에 나의 손가락을 대보았으나, 느껴지지 않음을 알았다.

"어레스트요(arrest, 심정지)!" 다른 의료진에게 큰소리로 알리고,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뒤로 하고 침대를 끌고 소생실로 미친 듯 뛰었다. 환자를 소생실로 이동하는 그 몇초 사이에 다른 간호사와 의사는 소생실에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할 준비를 했다.

소생실에 들어간 환자의 몸엔 곧바로 여러 줄의 모니터가 붙여지고 수액이 몸에 꽂히고, 의사는 모니터의 심전도를 보자마자 발판 위로 올라가 가슴압박을 시작한다. 수액과 심폐소생술에 쓰이는 약을 주입하고 호흡을 도와주기 위해 환자의 입에 앰부 마스크와 백을 연결하여 충분한 산소를 주입하였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지 2분 정도 되었을 때 모니터에 환자의 심장리듬이 보였다. 소생술 안에 있는 의료진의 입에서 "휴~~ 다행이다"라는 짧은 탄식이 나왔다. 환자의 심전도는 급성심근경색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환자 의식도 서서히 되돌아오고 있었다.

심장의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위해 준비를 하였고, 그 사이 의사는 보호자에게 현재의 상태를 이야기 하며 시술 후에 중환자실에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는 잠깐의 시간에 꿈꾸듯 우당탕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의사가 하는 말에 '네, 네, 네'라고만 했다.

보호자는 아직 많은 처치가 남은 환자를 만나지 못했고, 그런 보호자의 눈빛을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다. 보호자에게 다가가 자녀가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셨다.
이럴 땐 혼자서 이 상황을 오롯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내가 직접 격어 본 건 아니지만 그냥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보고 저절로 알게 되는 마음의 소리 같은 것이다.

"어머니~ 자녀분한테 전화하세요. 병원으로 오라고 하세요."
"전화해서 뭐라고 말하고 오라고 해, 애들이 놀라지."
"그래도 자녀분들도 아셔야죠?"
"난 잘 모르겠어, 아가씨가 대신 얘기해줄래?"
"그럼 전화해서 저 바꿔주세요. 제가 말할게요."


사실 빨리 빨리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던 차였다. 보호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얘기해 주고 싶었다. 보호자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게 주었다.

"안녕하세요~ OOO 아드님이시죠? 여기 OO병원 응급실 간호사예요?"
"응급실요? 엄마한테 무슨 일 있나요?"
"아니요. 어머니는 보호자로 오셨고요, 아버님이 진료 받으러 오셨어요."
"어디가 안 좋으신 거예요?"
"심근경색으로 오셔서, 심장혈관 뚫어주는 시술 받으시러 갈 거예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어머님이 경황이 없으셔서 제가 대신 말씀드려요."
"많이 안 좋은 상황인가요?"
"그렇긴 한데, 혈관을 뚫어주면 좋아지실 거예요. 근데 빨리 뚫어줘야 해서 금방 시술 받으시 러 갈 거예요. 오시면 어머님이랑 통화하세요. 조심해서 오세요."


아들에게는 차마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말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놀라서 병원으로 오는 길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 찰 생각을 하니 말을 할 수 없었다. '택시 타고 오시라고 할 걸 그랬나?' 잠깐 불안함도 밀려왔다. 전화기를 돌려주며 보호자에게 말했다.

"아버님 심폐소생 한 걸 알면 놀랄 것 같아 말씀 못 드렸어요. 오는 동안 불안해하실까 봐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보호자 분이 '고마워요'라고 하셨다. 손과 발은 환자를 처치하면서 시술준비를 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고맙다고? 오히려 내가 미안한데, 나에게 고맙다니...'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 "네"라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환자는 시술을 위해 '심장혈관조영실'로 이동했다.

보호자의 한 마디, 마음 속 짐이 녹아내렸다

시술하는 동안 도착한 아들은 환자의 상태를 듣고 싶어하였다. 응급의학과 담당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2분가량 심폐소생술 실시했음을 설명하였고, 후에 의식까지 회복되었다며 환자가 조금이라도 늦게 응급실에 왔다면 더 위험했을 텐데 다행히 응급실 도착 후에 심정지가 나타나 곧바로 처치할 수 있었고, 심정지 시간이 짧아 뇌나 다른 장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전했다. 심장조영술만 잘 된다면 잘 회복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들이 담당교수에게 어머니와 했던 얘기를 전하였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가 의식을 잃자마자 간호사가 뛰어와서 소생실로 데려갔고, 잠시 후에 심장도 뛰고 의식도 돌아왔다고 의사가 얘기했다면서, 어머니가 많이 놀랐는데, 잘 대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치즈가 녹듯이 내 마음 속 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 순간 이보다 더 나를 안심시켜주는 말이 있을까? 속으로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이것이 땀 흘리고 뛰어다니며 내가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어떤 이유인지 구체적으론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환자가 안 좋아질라, 문제가 생길라, 내가 실수할까, 환자가 힘들어할까 노심초사하는 걸 알아봐주고 느껴주는 분들이 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뜻해진다. 

더 이상 아픈 사람이 없을 수는 없지만, 덜 아프고, 덜 다치고, 덜 상처받는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태그:#보건의료, #병원, #인력부족, #응급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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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보건의료노동자의 친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산업 노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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