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카이로에 들어오면서 실수를 한 가지 했습니다. 카이로를 떠나 다음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는데, 날짜를 착각한 것이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편이라 실수를 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예정보다 카이로 일정을 하루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카이로 일대를 바쁘게 돌아다녔고, 어떤 일정은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빠진 일정에도 빠뜨릴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바로 콥트 정교회였습니다.
이집트의 콥트 정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파입니다. 오리엔트 정교회란, 451년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회를 말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합쳐져 있다는 '합성론'을 지지하는 교회입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가 콥트 정교회와 함께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해 있죠. 이른 시기에 가톨릭과 결별한 탓에, 오리엔트 정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단으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았습니다. 콥트 정교회도 마찬가지였죠.
특히 이후 이슬람교가 주류 세력이 된 이집트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시대에 따라 콥트 정교회 신자들도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원리주의가 득세하고,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화될 때마다 콥트 정교회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수의 콥트 정교회 신자가 이집트 사회의 핵심에 진출했습니다. 부트로스 갈리(Boutros Ghali) 전 UN 사무총장이 대표적인 콥트교 신자 출신 이집트인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혼란기마다 콥트 정교회 신자를 향한 테러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가 방문한 콥트 교회인 성 마리아 교회와 인근의 콥트 박물관은 무장한 경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명절이 다가오면 경비는 더 강화된다고 하죠.
이집트는 깊은 역사를 가진 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문명을 꾸린 땅 중의 하나이니까요. 기원전 32세기에 제1왕조가 세워져, 기원전 1세기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수천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죠. 로마가 분열한 뒤에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의 영향을 짙게 받았습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탄생한 파티마 왕조나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맘루크 왕조 등도 모두 이슬람을 믿는 왕조였죠.
맘루크 왕조는 16세기에 접어들며 쇠락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집트를 차지한 것은 오스만 제국이었죠. 한때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시도했지만, 프랑스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철수했습니다.
이집트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영국의 큰 도움이 있었죠. 이후 이집트에 영국의 영향력은 점차 강해집니다.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죠. 이집트 왕국이 명목상으로는 존속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었습니다. 특히 수에즈 운하의 존재는 영국이 이집트라는 이권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 주된 원인이었죠.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영국군은 수에즈를 제외한 이집트 영토에서 철수했죠. 1차 중동전쟁 이후 1953년에는 쿠데타로 왕실이 축출되고 이집트 공화국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1956년 2차 중동전쟁으로 수에즈 운하까지 이집트에 완전히 반환되죠.
그렇게 현대 이집트라는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궁금했습니다. 현대 국가로서 이집트는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국가일까요? 이집트라는 국가를 규정하는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6천년 전 존재했던 고대 이집트와 현대의 이집트는 분명히 다릅니다. 고대 이집트어와 현대 이집트의 아랍어는 그 계통부터 완전히 다릅니다. 문자도 물론 다르죠. 로제타 석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종교도 다릅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이제 신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현대 이집트인이 고대 이집트인의 직접적 후손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그 긴 역사 동안 수 차례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페르시아나 로마, 오스만을 거쳐 마지막에는 영국의 지배까지 있었죠. 인종만으로는 그 긴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현대적 정체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이집트가 탄생할 때에도 분명 그런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독립 과정에서 분출한 아랍 민족주의 역시 그런 고민의 발로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아랍 연맹의 탄생에 이집트가 적극적으로 기여한 것도, 한때 시리아와 '아랍 연합 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꾸렸던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겠죠.
그러나 저는 의외로, 콥트 정교회의 존재가 현대 이집트의 정체성에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를 받은 뒤,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까지 기독교 지역이었습니다. 콥트 정교회는 한때 이집트 전역을 지배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죠. 동시에 오랜 탄압의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콥트 정교회는 여전히 종교 의례에서 콥트어라는 별도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언어 중에서는 고대 이집트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라고 하죠. 어쩌면 이집트의 역사성을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이집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에 와서는 그와는 아주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된 땅이기도 하죠. 이집트의 역사와 현재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가, 이집트라는 현대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지점일 것입니다.
콥트 박물관을 돌아보며, 그 사이를 연결해줄 수 있는 다리가 콥트 정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집트라는 땅을 거쳐간 기독교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이집트에 살아남아 있는 현재적 실체이니까요. 그 역사와 현재를 모두 포용하는 것이 현대 이집트의 정체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집트인의 절대 다수는 무슬림입니다. 콥트 정교회 신자는 소수에 불과하죠. 실제로 제가 방문한 교회는 작았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콥트 정교회가 현대 이집트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집트라는 현대 국가의 정체성은, 이집트 사회가 이 소수파 신도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