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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무더웠던 어느 주말, 심심해 하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스 링크에 갔다. 처음에는 넘어질세라 주춤거리기만 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따로 강습을 받은 것도 아닌데, 금세 얼음 위에서 넘어지지 않는 법을 혼자 터득했다. 몇 번 더 아이스링크를 방문하고 나자, 제법 속력을 내며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어디 그 뿐인가.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치던 배드민턴도 이젠 아이가 월등하게 잘 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나와 다르게, 아이는 체력도 실력도 나날이 상승한다. 가르쳐 달라고 졸라서 귀찮음마저 느꼈던 큐브 맞추기며 종이접기까지 비교도 안 될 만큼 능숙하게 해 내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날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활동량이 늘어가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와 새로운 것을 하긴 체력도 의지도 점점 떨어져 가는 40대 중반의 엄마. 아이의 호기심을 끌만한 새로운 것들을 찾아서 제시해주고 즐기던 날들이 무색하게 이젠 의지도 줄고 같이 하는 것들도 조금씩 줄어만 간다.

이제 아이의 관심사도 내 한계를 벗어난 것들이 생겼고, 그동안 함께 해 왔던 것들도 나보다 훨씬 능숙해진 것들이 많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일이 서서히 줄어 간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있긴 하다. 바로 피아노다.

아이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재작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육아휴직을 하면서 함께 피아노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배우는 입장이고 아이는 완전 처음이라 서로 진도 차이도 크고 배우는 시간대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함께 피아노를 배운다는 공통 의식이 있다.

종종 휴가나 연차 날과 아이 방학이 겹칠 때면,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간다. 오늘 오전에도 휴가를 맞아 아이와 함께 피아노 교습을 받고 왔다. 학원 측의 배려로 오전 시간대에 둘만 연습을 하는데, 원장님 말씀에 따르면 아이의 표정이 확실히 다르다고 한다.

어차피 각자 연습실에 들어가 자신의 진도를 소화하고 나올 뿐이다. 하지만 엄마가 함께 피아노를 배운다는 특별함, 자기 눈에 꽤나 어려워 보이는 악보를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아이에게 좋은 자극과 소통의 계기가 되어주는 모양이다.

평소에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라서 재미난 음악을 발견하거나 몰랐던 곡을 배우게 되면 아이에게 공유한다. 아이가 관심을 가졌던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작곡한 캐러비안의 해적(Pirates of Caribbean) 주제음악은 내가 먼저 연습해서 들려주기도 했다. '저걸 직접 칠 수 있구나'라는 실감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된 경우다.

마찬가지로 아이도 자기가 배우고 있는 곡을 들려준다. 덕분에 '요즘 아이가 이런 곡을 치는구나'라고 알 수 있고 진도나 수준을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배우며 느끼는 어려움이나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거나 때로는 직접 나눌 수 있다.

피아노가 우리들만의 놀이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들었거나 거실에 흐르는 음악을 피아노로 쳐 보고 싶다고 아이가 건반을 뚱땅거릴 때가 있다. 그럭저럭 멜로디를 완성해나가는가 싶더니 나를 부른다. 바로 알려주면 재미가 없으니 힌트나 퀴즈를 내서 찾아보거나 같이 쳐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곡을 함께 완성한다.

또 학원에서 배워 온 곡을 외워서 치면서 나보고 따라 쳐 보라고 미션을 준다. 머릿속에 악보가 들어있고 능숙하게 연주하는 아이와 달리 더듬더듬 음을 따라가면 아주 즐거워한다. 자기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엄마의 반전이 아이에게는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한다는 공통의식이 굳건히 자리 잡는다.

피아노와 더불어 우리가 공유하는 취미, 즐거움이 또 있다. 바로 독서다. 책도 각자 읽는 것이긴 하지만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30분 전쯤 나란히 앉아 같은 책을 소리 내어 한 쪽씩 번갈아 읽는다.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 함께 그림책을 쓰는 입장에서 어린이 문학을 꾸준히 접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자발적으로 주로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학습만화다. 나도 어릴 때 만화를 읽는 걸 좋아했기에 아이의 독서습관도 존중하고 있다. 그러나 편향된 습관은 좋지 않은 것 같아 자기 전 30분간을 책 읽기 시간으로 정해두고, 다양한 책(주로 문학)을 골라 함께 읽는 것이 우리 둘만의 취미가 되었다.

서로 한 쪽씩 소리 내어 낭독하는데 그림책의 경우면 하루 한 권 또는 두 권, 동화책은 하루 한 챕터에서 두 챕터 정도를 함께 읽는다. 물론 다른 일이 생기거나 아이가 피곤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 부담 없이 쉰다. 

얼마만큼 읽자고 진도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놀이처럼 하고 있기에 아직까지는 아이가 이 시간을 더 즐긴다. 도서관에서 낭독할 책을 스스로 골라오는 작은 변화도 생겼다. 덕분에 나도 아이 취향을 알아간다. 가끔 마음에 안 드는 책도 있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재미있게 읽다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부모와 아이가 취미를 함께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

피아노도 독서도 어린 시절부터 일정 시간과 비용, 노력을 쏟아온 나의 특별한 취미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이다. 아이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그간 쌓아온 지식이나 경험 등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어서 기쁘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취미를 통해 아이와 소통하고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점이다.

학교나 직장에 가는 시간, 생활에 필요한 시간 외에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자유재량시간'이라고 한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개인에게 꼭 필요한 의미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고, 일이나 공부와 다른 목적성 있는 활동에 몰두하면서 자기 계발과 성취의 기쁨을 배우기도 한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자유재량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의미있게 가꾸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성장하면서 아이와 부모 간에 관심사가 점점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계속 아이의 관심사만 쫓아 일일이 챙겨줄 수도 없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에게 공통의 취미가 있다면? 그것을 매개로 일정시간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소통할 수 있다.

학교며, 놀이터를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함께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상황이 나오고 자연스레 친구와 있었던 일도 뒤따라 나온다. 굳이 아이에게 꼬치꼬치 질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이렇게 여가를 통해 아이에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삶의 가치관을 나눌 수 있고, 아이의 독립적인 성장과 시간을 이해하고 보장하면서도, 의사소통의 채널을 확보할 수 있는 쉽고도 의미 있는 방법이 바로 공통의 취미를 갖는 일이 아닐까. 취미를 공유하는 것은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거창한 목적을 쫓다보면 이 시간의 순기능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가볍게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목적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함께 누려보면 어떨까? 일요일에 다함께 짜파게티를 끓여본다거나, 가족 영화관을 정기적으로 연다거나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아이와 부모가 하루 30분 정도, 즐겁고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작도 유지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30분이 그 관계에 미치는 효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아이와의시간, #취미공유, #시간을함께하는법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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