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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집은 식탁과 벽이 그럭저럭 평행을 이루도록 배치하며 살 것이다. 원형 식탁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한, 동선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일 테니. 식사 때마다 펼치는 밥상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벽에 딱 붙이지 않아도 벽을 기준으로 반듯하게 펼쳐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늘 밥상을 비뚜름하게 놓고 식사를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늘 뒤늦게 밥상 앞에 앉는 아빠는 아무렇게나 앉았고 그 자세에서 본인이 편한 방향으로 밥상을 비틀었다. 덕분에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것은 먼저 자리에 앉아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네 식구였다. 
 
4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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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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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식탁을 쓰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네 명이 움직이던 시절을 말이다. 그러다 아빠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어느 날, 주방이 좁게 느껴져 거실에 밥상을 펼쳤다가 오랜만에 그 광경을 목격했다.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빠는 밥상을 비틀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남자가 그걸 어떻게 하겠냐" 자주 말하던 아버지

상을 차리느라 바빴던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어른이고 대접을 받아야 하며 그 주변의 모든 이들은 수발을 드는 존재이니까. 아빠는 선량한 사람이지만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다.

나 어릴 적, 아빠는 우리 삼남매에게 닭다리를 양보하곤 했고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뒤 그가 버릴지언정 결코 먹지 않는 음식이 닭다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헛헛함이라니. 그는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만 가족들의 입맛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남자가 그걸 어떻게 하겠냐?"

청소나 요리 등 가사노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초등학생도 다 하는 주변정리를 그는 남자라서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노동에 빚지며 살아간다. 그러니 실력이 늘 리가 없지만 당당하다.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옛날 드라마 속 '대발이 아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언성을 높이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을 주장하는 가부장제의 화신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1991년 작 '사랑이 뭐길래'), 아빠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과묵하거나 근엄하지 않았고, 예나 지금이나 농담을 좋아하고 침묵을 못 견디는 수다쟁이다. 나는 아빠가 무서웠던 적이 없으며 딱히 혼난 기억도 없다. 하지만 활달하고 유쾌한 것은 그의 성향일 뿐, 본질은 대발이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엄하지 않았던 것도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양육은 여자의 일이었으니까. 
 
아빠는 친근하고 다정한 가면을 썼을 뿐, 영락없는 가부장제의 화신이었다.
 아빠는 친근하고 다정한 가면을 썼을 뿐, 영락없는 가부장제의 화신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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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빠는 친근하고 다정한 가면을 썼을 뿐, 영락없는 가부장제의 화신이었다. 나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는 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그런 내가 뜨악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아빠를 바라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오랫동안 엄마의 노동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아빠는 얼마 전, 나와 대화를 하다가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란 말을 써서 결국 나를 폭발시켰다. 나는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었다. 어쩌면 자격지심이 문제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재택 근무를 하는 프리랜서이자 가사노동자로서 더 높은 생산성을 내기 위해 발악하며 살아가는 나는 격분했다. 

"아빠가 말하는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 대체 누구야? 응? 나는 그런 여자를 한 명도 몰라! 누가 집에서 놀아? 집에서 논다고 쳐! 아빠는 뭐하는 사람인데요? 아빠는 뭐 하길래 집이 이렇게 엉망이야? 여자들이나 하는 일도 못해서 엉망으로 살면서!"

나는 여성을 무시하고 가사노동을 폄하하는 그가, 가부장제를 등에 업은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돈만 벌어오면 그만, 집안일에는 무심해도 되던 시절을 살아온 그는 당연한 자기돌봄조차 배우지 못한 채 노인이 되었다. 그는 평생토록 그것을 남성의 특권으로 알고 누렸겠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늘어나는 곰팡이와 벌레도 어쩌지 못하는 가여운 노인일 뿐이다. 

아빠가 이렇게나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어?

애써 분을 삭인 내가 말했다. 나는 아빠가 이렇게나 가부장적인 사람인 줄 정말 몰랐다고, 어렸을 때 나는 아빠가 남들보다 깨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나는 딸이어도 차별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믿었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그나마 다행일까,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맞아. 네 생각이 맞아! 나 그런 사람 아니었어. 정말이야. 시골 와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하고만 어울리니까 그러지. 나 원래 안 그랬어! 여기 와서 변한 거라니까."
 
아버지(자료사진).
 아버지(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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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똑똑히 보고 겪은 것이 있는데 그 말을 믿을 리가. 그래도 다행이다. 잘못된 것을 아는 것 같아서. 

나는 요즘 일흔이 넘은 아빠에게 예의를 가르친다. 남이 차려준 밥을 먹었으면 잘 먹었다고 해야 한다고. 긴 시간 운전을 하고 온 자식들에게는 오는 길이 고생스럽지 않았느냐고, 빈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 거라고.

감사하게도, 아빠는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가 아빠의 농사를 도운 지는 오래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에서야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은 게 처음이라 나도 놀라고 어색했으니 아빠는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주장할 것이다. 배려와 돌봄, 예의에 관해 말이다. 

누군가 내게 건방진 딸이라고, 이런 패륜이 또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분노를 참아 낼 능력도 없고, 쏟아내고 싶지도 않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그와 더 오래, 더 다정한 시간들을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태그:#아버지, #가부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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