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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5월 초 한양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만화방창한 봄이언만 천지 인심은 흉흉합니다. 내 친구 서광범은 일본 망명 중이구요. 이곳 조정 대신들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공포가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뭐냐면, 일본으로 도망간 역적들이 일본과 밀계하여 조선을 공격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런 걱정은 스스로 만든 망상입니다.

서광범에 대해서는 이곳 백성들이 좋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광범의 가문에 대해 호평을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서광범은 내가 끔직이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의리상 나는 그의 모친과 아내를 보살피고 있는 것이지요. 두 여인들은 지금 무탈합니다. 조선의 물가가 매우 낮기 때문에 그들을 보살피는 데에 돈이 적게 듭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민영익은 지금 지방에서 암행어사를 하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그는 서울이 무서워 밖으로 돌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내게 카드와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그가 나를 무척 좋아하는 게 분명합니다. 가련한 사람. 심성은 착하지만 심약하기로 말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겁니다. 

이 큰 미국 공사관을 나 홀로 지키고 있는 정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시오. 이곳은 매우 넓어 23채를 헤아리는 집들이 들어앉아 있다오. 멋진 곡선을 뽐내는 기와 지붕을 이고 있는 건축물이지요. 무려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오. 이 휑한 곳에서 지독한 고독이 불현듯 엄습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고독에 빠질 틈이 없소. 조선인들이 날 만나러 수없이 찾아 오기 때문이오.

21세기 한국인 여러분이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1885년 봄 서울의 미국 공사관을 방문한다면 수많은 조선인들이 대청 마루에서 나를 둘러싸고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모습을 목도할 것이오. 무언가에 목이 말라 있고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진지한 표정들을 볼 것이오.

그들의 질문과 나의 대답을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오. 또한 나를 돕고 있는 충직하고 공손한 조선인 하인들을 볼 것이오. 그들은 나를 좋아한다오. 조선인들은 나를 '복福공사(Pok Kongsa)'라고 부른다오. 나는 조선인들의  신망을 얻고 있소. 모든 조선인들이 날 좋게 이야기 하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소. 아니오. 예외가 있소. 이곳에서 푸트 공사가 보인 행태를 혐오하는 소수의 조선인들은 나까지 미워하는 듯하오.

이 세상에는 '각하Excellency'라는 극존칭으로 불리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소. 그 하나는 국가 원수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 대사들이지요. 내가 살던 당시엔 공사가 최고위 외교관이어서 그들이 '각하'라고 불리었소. 세상에... 29살의 내가 그렇게 불리게 될 줄이야.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저를 '각하His Excellency'라 부른답니다. 일전에 제물포에 정박중인 우리 군함 오시피Ossipee호를 방문했는데 저에 대한 예우로서 여섯 명의 소년병과 한 명의 호위병을 붙여주더군요. 그건 더도 덜도 말고 해군 제독에 해당하는 예우랍니다.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세상에... 해군 소위 계급장을 달았던 내가 그토록 높이 날아오른 것입니다.

이런 걸 벼락출세라고 놀라와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해군 소위 때와 동일한 신체, 동일한 마음, 동일한 근심걱정, 동일한 병고를 지닌 동일한 인간이 아닌가요? 지위라는 것는 거창한 속임수, 빌어먹을 환상이고 헛된 바람(grand humbug, a damnable snare, wind)입니다. 저는 그런 허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명실상부한 것이라면 모를까." - 1885. 5.4 편지


5월 하순경에 미국 함선 트렌턴Trenton호가 제물포에 입항했습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미국 공사관과 나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트렌턴호는 당연히 입항사실을 공사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2주가 넘도록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왜이겠습니까? 해군소위에게 어떻게 보고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트렌턴호의 입항 사실을 풍문으로 듣고 화가 버럭 났습니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 함장의 임무 불이행을 본국에 보고해야했습니다. 

본국 정부, 정확히 말하면 국무부에서 내게 대리공사 연봉을 제의했습니다. 연봉 2,500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해군 소위 봉급보다 높은 것이지만 나는 거부했습니다. 내 판단에 내가 해군에 소속되어 있는 한 다른 신분의 월급을 받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대리공사 업무 수행에 따르는 비용을 월급이 아닌 별도의 활동 경비로 지급받는 것이 타당할 것 같더군요. 

그 즈음 골치아픈 외교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국 해군이 조선의 섬 하나를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영국이 러시아를 선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나는 기민하게 이 사건에 개입했습니다. 영국 측과 조선 정부를 접촉하여 나름의 중재를 시도한 것입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지 포크, #서광범, #민영익, #거문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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