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시급한 대책 마련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년층의 결혼과 동거에 대한 의식 조사를 보면 2012년과 2022년 사이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57%에서 36%로 떨어졌다. 반면 비혼 동거에 대해 긍성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62%에서 81%로 증가했다.
요컨대 결혼에 대한 긍정성은 떨어지고, 동거에 대한 긍정성은 올랐다. 이러한 통계를 인용하며 많은 매체가 가족 가치가 변화하고 있고 비혼 출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도 지난 9월 15일 '비혼 출산 양육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야 시급한가?
위에 언급한 통계를 보면 2012년 이미 비혼 동거에 대한 긍정성은 62%로 절반을 훌쩍 넘고, 결혼에 대한 긍정 비율은 간신히 절반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시의적절하게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 방향 보고서'(김영철 2011)를 내놨다. "동거와 혼외 출산 등 개방적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것이 보고서의 요지였다.
당시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정부는 첫째 아기 출산에 얼마를 지원하느니, 지자체는 앞다퉈 남녀 맞선까지 주선하며 결혼제도 안에서 아기를 낳게 하여 '정상가족'을 만들겠다는 열의에 차서 예산을 쓰고 있던 터였다. 이러한 때에 나온 KDI 보고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드디어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비혼 인구의 재생산권 확대에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고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 방향이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곧 KDI 보고서 기사에 '가족을 파괴하냐' '혼외임신을 부추기냐' 등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잠시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고, 보고서는 우리 기억에서 잊혀갔다.
최근 다시 비혼 출산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에 정부도 과거보다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비혼 출산 양육자 간담회' 자리에서 보건복지부 1차관은 "3.9%밖에 안 되는 비혼 출산을 적어도 30% 이상이 돼야만 (출산율 높이는 데) 좋은 결과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고요"라고 말했다.
이미 10년 전 비혼 임신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을 때 정부는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을 버리고 다양한 임신과 혼인 등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고심했어야 했다.
이미 늦어도 한 참 늦은 이 시점에 비혼 출산 양육자를 모아놓고 정책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비혼 출산이 30% 이상이 돼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발언을 하다니 함께 보도를 보던 동료는 비혼 양육자들에게 어디 가서 둘째, 셋째라도 낳아 오라는 소리인가 하고 낙담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출산을 하지 않는, 또는 못 하는 비혼 인구가 놓인 사회적 맥락보다 출생률 수치 상승에만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놀라웠다.
사람은 통계 수치로 환치될 수 없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와 해당 부처는 원치 않는 임신은 안전하게 중단할 수 있고, 원하는 경우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안전하게 출산하고, 빈곤에 내몰리지 않고 아기를 양육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그래야 정부가 원하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정상가족' 중심 정책에서 소외되는 비혼 임신과 비혼 양육 가정
우리 사회는 비혼 임신과 출산에 대해 그리고 아동을 양육하는 비혼 가정이 안정적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비혼출산을 원해도 산부인과협의회 윤리지침으로 인해 비혼은 보조생식술 시술을 받을 수 없다. 자연 임신이 된다고 해도 받을 수 있는 의료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2023 아동유기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 자료에 따르면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임신·출산 진료비카드(국민행복카드) 100만 원이 전부고, 이 돈은 산전 검진 및 출산에 관한 비용으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통과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신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충분히 하겠다는 조항은 있으나, 산모가 보호출산을 선택할 경우만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의료비를 전액 지원받을 수 있다. 위기 임신이지만 산모가 양육을 원할 경우 지원받지 못한다.
한편, 비혼 가정이 안정적으로 아기를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은 주거지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신혼부부나 19세에서 39세까지 청년세대 대상으로만 특별 공급을 하고 있다. 한부모 가정도 특별 공급 대상이나 당첨 되려면 나이가 많을수록, 세대원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대부분 젊고 한 자녀 정도를 둔 비혼 가정은 주거 안정성 정책에서 소외된다.
특히 아기 출산 전의 비혼 임산부의 경우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주거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이나 공동 주거 시설은 있지만 몇 개 되지 않고 빈자리가 있다고 해도 외출 시간 통제나 생활에 대한 제약으로 최근 비혼 세대는 시설을 기피한다고 한다. 이들이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개인의 생활을 통제 받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출산할 때까지 살 수 있는 비혼 임산부에 대한 주거 지원이 필요한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한 비혼 엄마는 현재 이사를 갈 수도 그냥 살던 곳에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엄마는 혼자 비혼으로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이 어느덧 중학교를 마치고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아들이 유치원 때부터 10평 남짓한 좁은 전세임대에서 지냈다.
하지만 아들은 크고 이제는 평수가 넓은 전세임대로 가고 싶어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났을 때 아무래도 큰 집으로 옮기는 건 포기해야 할 거 같다고 한다. 만약 당첨되서 계약금을 냈는데, 한 달 이내 지금 사는 집 전세가 빠지지 않으면 계약금을 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집이 너무 낡고 조건이 좋지 않아 집이 빠지지 않을 거 같아 불안하여 아예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세임대에서 다시 전세임대로 옮길 때 이중지원이 안 된다고 한 달 이내 기존 집을 빼라는 규칙은 꼭 있어야 할까? 기존의 집이 빠질 수 있도록 기간을 충분히 연장해주거나 아니면 다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엄마는 이제 자기보다 큰 고등학생이 된 아들과 여전히 서로 부딪힐 정도의 작은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비혼 임신과 출산에 대한 '때늦은' 시급한 대책 마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바로 이런 정책의 공백이 메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공백은 수치가 아닌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