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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리스본을 떠난 비행기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브라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저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남미, 특히 브라질의 치안에 대한 경고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었죠. 리우를 포함해 남미의 대도시들은 여행에 그리 적합한 치안 상태가 아닌 것이 사실이고요.

공항에서 나오는 고가도로 위에서도 멀리 빈민가가 보입니다. 악명 높은 브라질의 '파벨라'입니다. 숙소는 그나마 상황이 안정적인 해변 근처로 잡았습니다. 아침이면 바다와 호수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잠깐 길을 걷는 데도 주변을 살피게 되더군요. 치안 문제에 민감한 성격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우로 향하는 비행기
 리우로 향하는 비행기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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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착한 날부터 리우에는 비가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을 보자 비바람이 치고 있더군요. 이날 비는 금세 그쳤지만, 밤에는 다시 비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날씨는 흐렸습니다. 구름과 안개가 짙게 낀 풍경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리우의 상징인 예수상을 보러 갔습니다. 예수상이 있는 산 위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개중 가장 편리한 기차를 택했습니다. 표를 구매하기 전부터 직원은 '오늘은 흐려서 위에 올라가도 경치가 안 보일 것'이라고 알려 주더군요.

리우의 예수상은 높이 30m의 거대한 석상입니다. 1931년에 만들어진 것이죠. 리우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거대란 석상은 리우 데 자네이루와 브라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예수상으로 가는 기차
 예수상으로 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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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의 예수상에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수상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는 리우 최고의 부촌이 있는 반면, 예수상이 등지고 있는 방향에는 빈민가가 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리우의 빈민가를 '예수조차 등을 돌린 곳'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한다더군요.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예수상이 보고 있는 남부 해변 구역은 부촌으로 꼽히는 지역입니다. 반대쪽에는 거대한 빈민가가 들어서 있죠. 물론 리우의 빈민가는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요.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브라질은 뿌리 깊은 빈부격차를 겪고 있는 국가입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죠.

브라질 식민지는 포르투갈에 의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고 세계 식민지를 양분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대부분의 남미 식민지는 스페인이 가져갔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땅이 되었죠. 지금도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브라질만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안개 낀 전망대
 안개 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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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꽤 오랫동안 포르투갈에게 브라질은 중요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고아나 마카오 같은 아시아 식민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죠.

브라질이 포르투갈에게도 중요한 땅이 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입니다.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포르투갈 왕실이 모두 브라질로 망명한 것이죠.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왕실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에 기반을 둔 귀족들의 힘은 점점 강해졌죠. 결국 이들의 등을 업고 왕세자인 페드루 1세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독립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브라질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포르투갈과 독립 전쟁을 벌여야 했죠. 페드루 1세는 원래 브라질 땅이었던 우루과이의 독립 문제로 국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축출되어 포르투갈로 돌아갔습니다.

페드루 1세를 이은 아들 페드루 2세는 당시 겨우 5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페드루 2세도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백인 농장주들의 반발을 샀죠. 1889년 군부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페드루 2세는 제위에서 물러납니다. 브라질 제국은 채 70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셈입니디.

공화국이 된 브라질은 몇 차례의 군부 쿠데타와 독재, 파시즘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민심을 잃은 군부가 또 다른 쿠데타로 물러나기도 했고, 지지를 잃은 대통령이 금세 사임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군부 독재는 198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격변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페드루 2세의 축출 뒤 거의 100여 년 동안 권위주의 정권이 이어진 것입니다.
 
브라질 국기
 브라질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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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주인만 바뀐 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독재는 부패와 빈부의 격차라는 상처를 브라질에 남겼습니다. 노예제 폐지에 반발해 페드루 2세를 몰아냈던 농장주들은 착취 위에서 부를 쌓았습니다. 100여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질 것이 없었습니다.

브라질의 경제는 GDP를 기준으로 세계 10위권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실은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독재의 당연한 성질이지요. 브라질에도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2년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브라질 최초의 좌파 정권이 탄생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교육과 빈민 구호를 위해 노력하면서 브라질의 불평등 지표를 크게 개선했죠. 인구 10%가 이 시기 빈곤층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에 따르면, 브라질의 최고 부자 6명이 하위 50% 전체와 같은 양의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위 1%가 브라질 전체 소득의 13%를 차지합니다. 상위 5%가 브라질 부의 5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시내 내에서의 격차도 문제이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도 심각합니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특정 계층에 편중된 토지 소유가 자주 문제로 지적되죠. 거대한 땅을 가진 농장주들이 저임금 노동자를 이용해 플랜테이션 농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구조입니다. 부족한 교육여건과 의료 사정도 빈부격차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룰라의 퇴임 이후에는 후임 대통령의 탄핵과 극우파의 당선 등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경제적 평등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안개 속의 예수상
 안개 속의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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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열차가 예수상에 가까워질수록 안개는 더 짙어졌습니다. 예수상 근처에 가자 예상대로였습니다. 리우의 경치는 물론, 예수상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껴 있더군요.

예수상의 앞과 뒤가 다르다고 하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는 어느 쪽의 경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예수상이 보고 있는 방향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래 이어진 혼란 끝, 지난해 룰라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새로운 냉전의 시대, 브라질의 입지도 커지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노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브릭스(BRICS)는 회원국을 확대하며 그 몸집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현재 UN 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룰라 정권에서, 브라질은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남미의 다른 좌파 정권들처럼 미국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나려 하겠죠. 하지만 역시 남미의 좌파 정권들처럼 스스로 독재 정권을 꾸리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제 성장과 시장 경제를 지켜나가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빈부격차를 줄이고 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줄타기는 아닐 것입니다.

짙은 안개가 낀 예수상 앞에서, 브라질의 미래도 이런 짙은 안개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상 앞의 부촌에게도, 예수상 뒤의 빈민가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브라질은 지금, 그 어디도 빼놓지 않는 평등한 안개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공항에서 보이는 예수상
 공항에서 보이는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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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을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하늘은 조금 맑아졌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에서, 멀게나마 산 위의 예수상과 그 앞의 빵 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된다면 브라질에 끼어 있던 짙은 안개도 이렇게 모두 걷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개가 걷힌 그 때의 브라질을 상상합니다. 부디 지금 브라질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예수상의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땅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히우지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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