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8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대통령실

관련사진보기

 
지난 7월 14일 킬러규제혁신TF 2차 회의를 통해 기업의 건의사항을 바탕으로 정부는 15개 과제를 1차로 선정한다며 발표했다. 15개 과제는 입지, 진입, 신산업, 환경, 노동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달여가 지난 8월 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법무부, 고용노동부는 '킬러규제' 철폐를 위한 세부적인 추진 내용을 밝혔다.

투자와 투기의 한 끝 차이

제조업 중심, 중소규모기업이 입주할 수 있었던 산업단지를 업종을 확대하고 기업활동 지원 서비스업도 지원시설이 아니라 산업시설용지로 입주 가능하며, 공장 임대사업도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지금과 다른 산업단지를 만들자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산업단지 재도약 전략'이다. 산업단지의 입주업종, 토지용도, 매매 임대 제한을 했던 규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전국 1280여 개가 있는 산업단지는 과거에도 '산업단지 구조구도화'라는 명칭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경제위기 이후 수출은 대기업 중심으로 확고해졌고, 중소기업 중심의 공단이 쇠락했고, 국가산업정책이 첨단산업과 지식기반산업 등으로 눈을 돌리며 벤처기업이나 IT산업 육성정책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되기도 했다. 벤처산업, 클러스터 구축이라고 육성정책을 내놓고 산업공단 정책도 바뀌었다.

그러나 산업단지 내 가동업체들은 업체당 평균 고용인원이 20여 명이 조금 넘는 규모였고 경제특구, 지역특화특구 등의 이름으로 개발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산업단지가 추진되다 좌초되기도 했다. 중앙정부 주도의 산업단지 정책에서 지역으로, 민간으로 주체가 옮겨가고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으로 산업단지가 활용되기도 했다.

이번 정부의 정책으로 이미 15개 국가산업단지를 새롭게 지정했고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핵심광물 국가산업단지 등이 추진되거나 또 지정되었다. 국가산업단지는 속도가 생명이라는 국토부는 관계기간 인허가 신속진행과 함께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속하게 진행한다는 약속을 했다. 입주업종 제한도 해소하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임대제한도 완화한다는 정책이다.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최소화하여 기간도 내용도 축소한다는 환경부의 약속도 있다.

산업단지는 정부정책으로 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 등을 위해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지원과 혜택을 주고 만드는 정부의 사회적 투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투자는 기업의 투자를 위한 것이었고 이제는 기업의 투기를 열어주자고 한다.

시대에 따라 산업정책에 따라 산업단지도 목적을 유지한 채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좋은 일자리, 노동의 권리가 지켜지는 일자리를 전제로 할 때 정부가 지향하는 바대로 청년들이 찾아오는 산업단지가 될 수 있다. 커피숍을 더 많이 만든다고 편의점과 기업지원 시설이 더 많이 생긴다고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경제특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단지들에서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뺏기기도 하고 기본적인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례가 적용되기도 했다.

'킬러규제'가 하고 싶은 진짜 말

과거에도 이미 변질되어버린 산업단지 정책들이 추진되어 왔던 것을 고려하면 지금 정부의 정책이 새삼스럽지 않기도 하다. 산업단지 정책 뿐 아니라 킬러규제 철폐 정책으로 내놓은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처음 들어보는 내용들도 아니고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았거나 주장했거나 기업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입장들이다.

이주노동자 정책만 해도,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전은 지역만 가능하거나 사업주 허가 없이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숙련된 이주노동자 고용을 유지하고픈 기업의 요청에 맞췄다. 여기저기 싼 임금으로 일만 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요구에 이주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는 업종도 확장한다고 한다. 장기체류에 따라야 하는 생활과 노동 권리는 바꾸지 않는다. 킬러규제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위한 정책 중 15개 과제를 뽑아놓았다고 보는 게 더 맞는 설명이 될 거 같다.

그러나 '킬러규제'는 단순히 기업을 위한 기존의 정책들을 모아두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업을 위한'이라는 목표 하에 정부 내 행정기관들이 알아서 각각 정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조립하듯이 여러 행정기관의 역할에 맞게 정책을 세팅한 듯하다. 반도체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특정대학을 지원하여 산업인력을 양성하게 하고, 반도체공장을 짓는 곳에는 산업단지를 만들어 지원하고, 환경영향평가도 축소하고 용수처리를 쉽게 하도록 기준을 바꿔주고, 신규 화학물질 사용허용 기준을 낮추고, 유해성이 확인된 물질 외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해 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킬러규제'라는 단어를 통해 기업에 대한 규제는 모두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풀어놓았다. 규제가 무엇을 위해서, 어떤 것을 제재하는가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규제의 목적이나 대상에 대한 논의도 검토도 없이 '규제'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정부의 기준을 들이민다. 기업에 이익이 되는 행정을 목표로 하는 기업경영활동지원이 정부의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2023년 대한민국의 정부 아래 우리는 살아간다.

정부는 '킬러규제'를 기업활동을 죽이는 규제를 없애자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해를 가할 수 있는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규제의 성격이자 목적이라는 점이다. 규제의 목적어를 잊지 말자.

태그:#김용균재단, #킬러규제, #권미정, #규제완화, #투기와투자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