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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사인 LG디스플레이에서 팀장급으로 근무하던 노동자가 한강 변에서 사망했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해당 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LG디스플레이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노동부의 근로감독의 결과 고인은 사망 직전 한 달간 약 월 250시간 이상을 근무했다. 1일 평균 12시간 30분을 근무했는데 1주로 따지면 약 57시간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상한(1주 52시간)을 초과한다. 고인의 사망을 두고 직장 내 커뮤니티에서는 "과도한 업무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회사는 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는, 유연근로시간제(선택적근로시간제)를 악용했다. 가령 법정 근로시간은 1일 8시간인데, 특정일에 10시간을 일하면 다른 날에 6시간을 일하여 평균 8시간으로 맞추고 1일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은 2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보상한다.

연장근로 산정 단위를 기존 1주에서 월로 확대하면 얼핏 보면 노동시간의 선택권을 노동자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정일의 연장근로에 대하여 1.5배를 가산해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어렵고, 단위 기간을 평균하여 연장근로 시간을 산정하므로 1주 12시간을 상한으로 정한 연장근로 한도를 넘어 특정 기간에 장시간 근로가 가능해져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한다.

거기에 이러한 근로시간제를 사용하는 회사의 경우 업무의 불규칙성이 특징이다 보니 막상 보상 휴가 기간에도 인력 부족이나 업무의 예측 가능성이 부족해 보상 휴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법정 연장근로 가능 시간 이내(1주 52시간)에서만 근로 시간을 입력하게 했다. 한도를 초과한 시간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상 휴가를 부여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회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약 250차례에 걸쳐 120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약 7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로 한도 시간을 상시적으로 위반했다.

노동자 죽인 월단위 근로시간산정을 도입 하겠다니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3일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인 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 시간이 적혀 있다.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3일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인 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 시간이 적혀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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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는 지난 11월 13일 이처럼 장시간 노동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연장근로 시간 산정의 월 단위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사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는 명분을 들어서 말이다.

노동부는 이날 '근로 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1호 과제로 발표한 주 69시간 근로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편안 재검토에 들어가며 노사와 국민 약 6000명의 의견을 들었다.

노동부가 밝힌 설문 결과에 따르면 노사와 국민은 우리 사회에서 주 52시간을 최대근로 시간으로 하는 근로시간제도가 상당 부분 안착화 됐다고 인식했다. 현 근로 시간 제도로 업무시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커졌으며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사업주와 일반 국민은 현 근로 시간 제도에서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소 있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종에서 이러한 의견이 우세했는데 해당 업종에서는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노사나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이 비동의한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정부는 이와 같은 설문을 근거로 제조업과 건설업 등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주일을 단위로 12시간까지만 허용하는 연장근로를 월이나 분기 단위로 산정해 특정 시간까지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단위와 시간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노동부는 설문에서 다수가 동의한 월 단위, 1주 근로 시간 상한은 60시간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1주 단위로 연장근로 한도를 정한 근로기준법을 바꿔 1개월 단위로 연장근로 시간을 계산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현행 1주 52시간을 최대로 하여 정한 근로 시간 상한이 무력화되고 연장근로에 따른 가산 수당 지급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1주에 52시간으로 근로 시간 상한을 정한 이유는 노동자의 건강과 적절한 노동과 일·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1주의 적절한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본다. 불가피하게 초과근로를 하더라도 국제노동기구와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1주에 노동자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시간의 한도는 55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월 단위로 산정하면 현재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훌쩍 넘길 수 있다. 노동부가 적절하다 보는 1주 최대 근로 시간 한도는 60시간으로 기존 69시간제에서 줄기는 했지만 1주 2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영국 등 월 단위 연장근로 관리하지만 1주 48시간 초과 못 해

특정주에는 40시간 미만으로 일하니 괜찮다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몸은 고무줄이 아니다. 특정주에 몰아서 일을 할 경우 특정 주에 쉰다고 하여 건강이 평균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긴 어렵다. 영국과 덴마크 등 유럽 선진국도 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지만 모두 1주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정부는 1주 52시간을 한도로 정한 현행 근로시간제도가 현장의 노동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근로 시간 개편의 이유로 내세운다. 맞다.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삼성과 LG, 현대기아차 등 수출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로 수출제품의 생산과 제조를 담당하는 우리 기업의 핵심 업종임에도 인력난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노동자 다수는 50대 이상이 지배적이다. 2010년과 비교할 때 30대 미만 비중은 약 7% 줄고, 50대 이상은 약 15%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2011년 39.2세이던 평균연령이 39.2세에서 2020년에는 약 43세로 증가했다.

따라서 제조업 현장에서는 신규 채용이 원활하지 못하고 기존 고령 노동자의 연장근로를 통해 노동 수요를 감당해 왔다. 노동자들 역시 저임금에 시달리다 보니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감수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제조업 인력난의 구조적 해결 방법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연장근로 수당으로 유혹해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중소 제조업 노동현장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젊은 인력이 올 수 있는 매력적인 일터로 탈바꿈하는 데 있을 것이다.

노동 상담을 하다 보면 열악한 휴게시설과 낮은 임금, 차근차근 경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보다는 일상적 잔업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토로하는 노동자가 다수다. 때문에 구직자들은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무원이나 대기업 준비에 몰리면서 제조업 현장의 인력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근로 시간 개편, 공은 경사노위로

노동부는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복귀 선언을 한 만큼 노사정은 함께 구체적인 개편안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논의 과정에서 노사정은 명확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보건 전문가로 노동부의 근로 시간 개편을 기획한 '미래 노동 시장연구회' 위원이기도 했던 김인하 한양대 직업환경의학실 교수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그는 올해 초 정부의 근로 시간 개편과 관련하여 양대 노총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노동시간을 평균화할 때 "(연장근로 시간) 정산 기간은 최대한 짧게 하여 1주 평균 노동시간이 1주 48시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1주 최대 근로 시간 상한은 기존 52시간을 넘기지 말아야 하며 불가피할 경우 55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1주 55시간을 넘게 일하면 뇌출혈이나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 발생위험이 증가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으로 지탱하는 OECD 최상위 노동시간의 나라. 이 불명예를 노사정은 잘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이제 근로 시간 개편의 공은 경사노위로 넘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


태그:#근로시간개편, #노동부, #주69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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