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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작은도서관에서 주민들과 책 관련 모임을 결성하고 도서관 지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글로 담습니다. [기자말]
한 달 전 쯤인가. 한 엄마가 갓 돌 넘은 딸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들어왔다. 공간은 둘러볼 것도 없이 한눈에 담기는 크기라 탐색은 금방 끝났다. 아담하고 정감 넘치는 도서관에 홀딱 반한 눈치였다. 하기야 이 공간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애기 엄마는 어린 아이를 둔 엄마라기에는 어딘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이 도서관은 민간 도서관으로 마을 사람들의 쉼터와 같은 공간이며 후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짠' 하고 나타난 이가 바로 세화이다. 앞니 빠진 개오지 세화는 배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벌쭉 벌어진 입과 눈웃음으로 감겨버린 두 눈이 틀림없는 개구쟁이였다.

마음 놓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한참을 세화와 동생을 번갈아 보며 엄마와 얘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또 '짠' 하고 나타났다. 근데 들어온 아이는 세화와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이쪽 세화가 저쪽으로 순간 이동을 하며 약간 뻥튀기 된 건 아닌가 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다름 아닌 세화의 형이었다.

"어머니, 아이가 셋이에요?"

잠시 얼굴을 아래로 떨구는가 싶더니 고개를 반 바퀴 돌려 쑥스러움을 얹어 정면에서 멈추었다.

"흐흐, 어린이집에 한 명 더 있어요."

그 이후의 나의 반응은 안 봐도 비디오인 장면들로 채워졌다. 놀라고 칭찬하고 호들갑떨고 경이로운 눈빛까지 듬뿍 담았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에요."
"아이들은 온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물론 시대와 안 맞는 말이 되어버렸지만요. 온 마을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은 학교 마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읽는 아이, 친구와 보드 게임하는 아이, 학원가기 전 잠시 머무르는 아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모두 목적은 달라도 머무르는 자리는 같은 이곳, 비록 공간은 작지만 넉넉하기로는 하나의 마을보다 더 큰 이곳, 바로 작은 도서관이다.

그날 이후 세화와 서화는 우리 도서관 단골손님이 되었다. 학교를 파하고 어린이 손님으로는 언제나 맨 먼저 얼굴을 들이미는 세화는 이제 하루만 못 봐도 보고 싶은 얼굴이 되었다. 세화와 서화는 학교 마치고 와서 두 세 시간 어떤 때는 서너 시간을 족히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학교 마치고 도서관에 온 아이들, 핸드폰 게임 금지인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를 즐긴다.
▲ 함께 놀이하는 아이들 학교 마치고 도서관에 온 아이들, 핸드폰 게임 금지인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를 즐긴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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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분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이와의 달콤한 시간들이 소중하게 담긴 글들, 복직할 날에 대한 걱정 섞인 글을 통해 이미 깊은 공감을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 글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 건 '나 하나 집에 있으니 모든 가족들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내용 때문이다.

엄마의 휴직으로 아이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는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안도보다는 복직 후의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남편이 아이 픽업 할 걱정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부모님들이 손주를 돌보는 대신 본인들을 위한 시간들로 채워간다는 이야기는 슬퍼할 수도 기뻐할 수도 없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가 맡은 엄마의 역할이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신물처럼 씁쓸한 맛이 올라왔다.

'온 마을'까진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많은 노고와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많은 부분의 책임이 엄마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결국 탓할 수 있는 건 사회의 시스템이고, 사회가 가지는 인식의 문제이다. 시스템과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여전히 직장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엄마들은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모멸감>에서 저자가 "감정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지만, 사회의 거시적인 차원과 맞물려 있다"고 말한 것처럼 엄마들의 감정은 단순한 엄마 자신만의 감정이 아니다.예전에는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면 저절로 컸다는 말들을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리 호락하지만은 않다.

세상이 이러하니 육아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다 못해 자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축복이고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의 삶을 온통 힘들게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럴 때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언어를 이해할 줄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마 집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아이, 부모 모두에게 행운이다. 이용 가능한 인구가 그렇지 못한 수에 비할 바 못 되지만 그마저도 지원을 끊고 없애가는 추세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가 바뀌고 인식이 바뀌어 가는 중심에 이 같은 마을의 작은 공동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오는 아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작은 도서관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마을작은도서관, #책놀이터, #함께하는시민공간, #주민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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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을 펴내는 것이 꿈인 사람입니다. 그 꿈을 위해 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칼럼을 필사하고, 글을 쓰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게 되면서 진정으로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나를 잘 이해할수록 타인도 더욱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이후 농촌으로 가서 이주여성들과 노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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