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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로서 수많은 집을 짓고 전통 구들에 빠져 해체 수리 복원 작업을 하면서 저술 활동을 이어간 김동하 교장
 목수로서 수많은 집을 짓고 전통 구들에 빠져 해체 수리 복원 작업을 하면서 저술 활동을 이어간 김동하 교장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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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이자 전통 구들 전문가로 거듭난 김동하(55) 교장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전통 구들과 생태건축을 접목한 학교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장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용평면의 한 마을에서 지난 11월 중순, 이틀에 걸쳐 인터뷰했다.

김동하 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2001년 평창으로 귀농 후 우리 나무와 흙을 이용해 살림집 여섯 채를 직접 짓고 산다. 생태건축을 지향하며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교육 '내 손으로 만드는 황토구들방'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14년부터 미래인재개발협회 대표와 2012년부터 한국전통구들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2014년 문화재청의 문화재수리기능자 온돌공 자격을 취득하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전통구들 공개 특강 강사로 서울시립대 평생교육원과 서울시 한옥지원센터에서 강의했다. 우리나라 나무와 흙으로 만드는 집짓기 교육프로그램과 전통구들 교육을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귀농·귀촌인을 위한 내 손으로 만드는 통나무 황토구들방>, <창덕궁 수강재 구들 수리 복원을 통해 본, 궁궐 구들>, <구들의 모든 것>이 있다.

음악에 빠진 청춘 시절, 그리고 집짓기 목수가 되기까지
   
음악에 빠져 대학 시절을 보낸 김동하 교장
 음악에 빠져 대학 시절을 보낸 김동하 교장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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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좋고 키가 컸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기타를 만나 중고등학교까지 취미로 기타를 쳤다. 대학에 들어가 합창단 활동을 하고 행사부장을 맡으며 대중 앞에 섰다.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아르바이트도 했다. 군인 시절 노래를 불러 포상 휴가도 받았다. 대학 안에 창작 음악 동아리(동국대 뭉게구름)을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 동아리의 맥락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필리핀 여행을 갔다가 치과대에 유학 온 세 살 연상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졸업도 하기 전 4학년에 결혼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바텐더를 보면서 장사를 했다. 3년간의 장사로 서울을 떠날 수 있는 종잣돈을 모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역학과 졸업 후 호텔 면세점에 입사했다. 불만 해결 담당과 인사 교육팀을 거쳐 기획 및 영업부서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7년을 일하며 경제적 안정도 얻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은 직장 생활이었지만, 음악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서울에서는 엄두가 안 났다. 평창에서 집을 짓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운명처럼 지인이 도움을 청해 함께 집을 지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음악은 집을 짓게 유혹했다. 대학 시절 장사와 노래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로 종잣돈을 제법 모았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삼대에 걸친 서울 토박이가 망치를 들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좋은 전원주택 사진을 보면 여행 삼아 확인하러 다녔다. 모든 사람이 친절했다. 집주인들과 소통하며 건축 기술을 습득했다.

이런저런 기술을 모아 우선 한 채를 지었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여세를 몰아 모두 여섯 채를 지었다. 양가 부모님의 찬사가 이어졌다. 장인, 장모, 처형, 조카까지 삼대가 서울살이를 접고 시골행을 결정했다. 여섯 채 집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이 중 한 채는 라이브 음악이 가능한 합주실로 지었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봉평면 한 마을에 있는 김동하 교장이 직접 지은 여섯 채 생태 가옥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봉평면 한 마을에 있는 김동하 교장이 직접 지은 여섯 채 생태 가옥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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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후 혼자도 아니고 삼대가 터를 잡으니 이장은 물론 주민의 관심 속에 집 짓는 능력까지 인정을 받았다. 직장에서 얻은 기획력이 새농어촌 건설 사업, 전통테마 마을 만들기 등 마을 사업에도 도움을 주었다. 마을 반장, 지도자, 체험 마을 사무국장을 역임하다가 3년 동안 마을 이장도 봤다. 이런 마을 사업 활동이 농촌 전통 테마 마을 육성 분야에 뽑혀 강원도 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하고 마을은 5억 원의 상금도 받았다.

5~6년 집 짓는 일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자신에게 목수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얻고 이내 집 짓기에 몰두했다. 이후 매년 2채씩 집을 지으며 지금까지 목수 활동을 하고 있다.

집을 지으며 신기한 장면을 포착했다. 구들방이었다. 23년 전 여섯 채 중 한 채에 구들방을 놓아야 했다. 어려운 과정이다 싶어 수소문 끝에 전통 구들 전문가인 오홍식 선생과 인연을 맺고 동행을 시작했다. 이후 구들을 테마로 오홍식 선생과 함께 전국을 돌며 구들 일과 집짓기를 병행했다.
   
스승 오홍식 선생의 가르침으로 창덕궁 수강재와 낙선재, 창경궁 집복헌, 송광사, 불갑사, 봉암사 등 우리의 전통 문화재와 고찰에서 구들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데 구슬땀을 흘렸다. 2018년에는 우리나라 궁궐 구들의 매력에 빠져 <궁궐구들>이라는 책까지 자비로 출판했다. 문화 강국의 한 줄기를 염원하며 현장 사진과 함께 깊이 있는 해설로 우리 민족만이 가진 구들 문화를 역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들에 관심을 갖고 해체, 수리, 복원에 빠지면서 전통 구들을 대중에게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20여 년 동안 전통 구들을 실질적 체험으로 학습하여 구들 강좌를 이어갔다. 김 교장은 구들을 잘 놓는 구들 쟁이는 많지만, 구들을 가르치는 일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부한다며 구들 교육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해외에 보급한 구들
 
부탄에 구들을 보급하고 관계자들과 기념사진
 부탄에 구들을 보급하고 관계자들과 기념사진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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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할 만한 사실은 해외에 나가 구들 강의를 하고 구들을 보급했다는 것이다. 멀리 부탄과 베트남까지 건너가 구들 강의를 하고 구들을 놓는 데 가교 역할을 했을 정도다.

김 교장은 젊은 나이에 목수가 되어 재미를 붙였는데, 귀농귀촌 교육을 하면서 스승 오홍식 선생의 강의 보조를 하게 되었다. 이런 구들 강의 보조를 8년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점차 구들을 직접 놓으면서 스스로 교안도 작성하고 조금씩 생태 건축 강의와 구들 강의도 하게 되었다.

당시 30대였던 제자에게 스승이 던진 질문은 교육에 정진하는 데 위대한 힘이 되었다. 스승이 물었다. "이 세상에 진정한 부자는 누구인가?" 제자가 답변을 고민하고 있을 때 스승이 말했다. "이 세상에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나누어 줄 걸 많이 가진 자라네." 이후 김 교장은 자신이 가진 작은 재능을 세상에 나누면서 얻게 되는 기쁨을 알고 힘닿은 데까지 구들과 생태건축 강의에 열중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서울에서 3~4년 동안 '한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전통구들' 문화를 주제로 매월 무료 공개 특강을 진행했다. '내 손으로 만드는 황토구들방' 교육을 받은 분이 난방 시설이 열악한 부탄에 구들을 보급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부탄 유력 인사로부터 한국 구들을 홍보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김 교장은 구들 특강을 하고 도지사급 공관에 구들을 놓아 공개했다. 부탄 공무원들과 기술직 관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몇 년 후 또 건너가 라야라는 지역의 학교에 구들을 놨다. 이는 부탄 방송국에서 10일 가까이 촬영하여 방송할 만큼 관심을 받았다.

오홍식 선생은 제자에게 해외 구들 문화 보급을 강조했다. 부탄에 이어 베트남에 들어가 구들 교육을 진행했다. 돈은 목수 일을 하면서 벌면 되고, 구들 강의나 보급은 나눔의 깊이로 보면 비교할 게 없다고 스승은 강조했다. 김 교장은 구들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홍식 스승을 떠올리며 강조한다.

"구들에는 홍익인간의 개념이 있다.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처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구 한 사람의 특허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누구에게나 이롭게 할 수 있는 철학이 담긴 게 구들이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추운 지방 유럽이든 히말라야든 우리의 구들 문화가 전해질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구들 문화 확산과 박물관 건립을 꿈꾸며
 
20년 전 직접 지은 집의 일부를 수리 중인 김동하 교장
 20년 전 직접 지은 집의 일부를 수리 중인 김동하 교장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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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지터'에는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구들 유적 수십 개가 있다. 살아있는 구들 문화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바닥 난방 시스템인 구들이 회암사지에 광대하게 존재한다. 회암사지 터가 너무 넓어서 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지붕을 만들지 못하고 흙으로 덮어 버린 상태가 안타깝다. 구들 복원에 힘을 모아 구들 박물관을 회암사지에 만들어야 한다고 김 교장은 역설한다.

우리에게는 한옥이라는 큰 그림이 있다. 한옥의 구조와 형태 등 모든 대목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기록이 가장 적은 것 중 하나가 구들이다. 학술적 자료나 연구자도 다른 분야에 비해 많지 않다. 김 교장은 구들에 미쳐 구들 관련 내용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의 주거 전통 문화 중 하나인 구들문화가 점차 사라진다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김 교장은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 구들 문화 확장을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의 구들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복원하여 관광객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구들 문화 홍보 프로그램 운영, 전 세계 대사관 한 켠에 구들을 구축하여 외교 차원에서 활용, 동남아 어려운 나라에 구들 보급, 구들 사우나 만들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생각보다 실행이 어려워 늘 안타까운 심정이다.

서울을 떠나 생태건축가로, 전통 구들쟁이로 20여 년을 살아온 김동하 교장에게 소박한 바람이 있다.
                   
"저는 생태 건축을 지향해요. 나무를 이용한 DIY 집짓기, 자가 수리 등 집 짓기의 기본부터 완성까지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여 나누고 싶어요. 이 가운데 구들을 접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재능 기부를 할 생각입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구들 전문가가 많이 양성되어 우리의 전통 문화가 지혜롭게 계승되기를 소망합니다."

태그:#김동하교장, #생태건축, #전통구들, #궁궐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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