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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 MC는 왜 늘 중년의 남자 진행자와 젊은 여성 연예인의 조합일까. 

어느덧 한 해가 다 가고 연말 시상식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도 한 해 동안 좋은 드라마,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 등을 만든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 서로의 성과를 자축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과거의 연말 시상식은 대중문화의 최전선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였지만 오늘날 지상파의 시상식들은 그 위상을 거의 잃은 모양새다. TV 프로그램들은 하루하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OTT와 유튜브 콘텐츠들이 모든 화제성을 앗아간지도 이미 오래다. 지상파의 현재 위치를 대변하듯, 이들의 연말 시상식은 트렌드와도 멀어진 느낌이다.

올해도 돌아온 연말 시상식들이 진행자 라인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매년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안타까운 점은 익숙한 이름들이 오로지 중년의 남자 진행자뿐이라는 사실이다.
 
<2023 KBS 연예대상> 스틸 이미지
 <2023 KBS 연예대상> 스틸 이미지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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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방송된 <KBS 연예대상>은 신동엽, 주우재, 조이현이 진행을 맡았다.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를 이끌며 지난해 연예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신동엽과 <홍김동전>을 통해 예능 입지를 다진 주우재,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혼례대첩>에서 열연 중인 조이현을 내세운 것. 

이어 29일 방송되는 <MBC 연예대상>은 전현무와 배우 이세영, 그리고 최근 예능 대세로 떠오른 방송인 덱스를 섭외했다. 30일의 <SBS 연예대상>은 이상민과 이현이, 배우 김지은의 조합이다.

그리고 29일 방송되는 <SBS 연기대상>에도 다시 신동엽이 등장한다. 신동엽은 2020년, 2021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김유정과 호흡을 맞춘다. 30일 <MBC 연기대상>은 김성주와 박규영이 MC를 맡는다. 그리고 마지막 31일에 방송되는 <KBS 연기대상>은 장성규, 로운 그리고 설인아가 발탁되었다.

남자 진행자들의 평균 나이는 42.6세

최근 5년간 방송국들의 연기대상, 연예대상 진행자를 모두 열거해보면 매년 신동엽, 전현무 등 익숙한 남자 진행자의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은 이 방송국에서, 내일은 다른 방송국에서 진행을 연달아 맡기도 한다. 그만큼 진행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옆자리를 차지하는 여성은 거의 매년 바뀌고 있다는 점이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그만큼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능한 여성 진행자가 정말 없기 때문일까.

유능한 사람이 계속 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방송국들의 연말 시상식에는 분명한 성별 격차가 있다. 올해 방송 3사의 시상식 6개를 조합해보면, 남자 진행자는 총 9명이고 여자 진행자는 6명이다.

<SBS 연예대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자 진행자 2명, 여자 진행자는 1명으로 섭외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 진행자들의 평균 나이는 42.6세에 달하지만, 여자 진행자들의 평균 나이는 31세에 그친다. 특히 <SBS 연기대상> 진행을 맡은 신동엽과 김유정의 나이 차는 무려 28세에 달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지상파 3사 연기대상, 연예대상 시상식의 진행자 숫자는 남자 10명에 여자 7명으로 격차가 있었다. 평균 나이 역시 남성의 경우 40세였지만 여성은 30.4세였다(2022년 당해 기준). <MBC 연기대상> 진행을 맡은 김성주와 수영의 나이 차는 18세였다.

지난 5년을 통틀어 계산해 보더라도 연기대상, 연예대상 진행자 중 남자는 총 50명이었지만 여자 진행자는 다 합해서 30명이었다. 남자 진행자들의 평균 나이는 매년 40대를 웃돌았지만, 여자 진행자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초반이거나, 30세를 넘지 못했다. 방송사 별로는 KBS가 5년간 남자 진행자 21명을 발탁하는 동안 여자 진행자는 단 10명만 발탁하며 성비 격차가 가장 컸고, MBC는 남자 15명에 여자 8명, SBS는 남자 14명과 여자 12명으로 가장 비슷했다. 

반면 주로 아이돌 가수들이 출연하는 페스티벌 형식의 <가요대전> <가요대제전>은 진행을 맡은 남녀 모두 20대 또는 3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출연자들이 섭외된다. 그러나 이 역시 남자의 숫자가 더 많은 게 대부분이다. 올해도 <MBC 가요대제전>은 샤이니 멤버 민호와 소녀시대 임윤아, 가수 황민현을 진행자로 발표하며 남자 둘, 여자 한 명의 조합을 유지했고, <SBS 가요대전> 역시 샤이니 키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 아이브 안유진으로 남자 둘, 여자 한 명 조합이다(KBS는 올해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로 대체되어, 포함하지 않았다).

KBS는 18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시상식 진행자 선정에 대해 "<연예대상>의 경우 경험 많은 MC 1인과, 올 한해 활약한 신인급 예능 1인, KBS 드라마에서 활약한 여배우 1인 위주로 진행자를 선정한다. <연기대상> 역시 능숙한 전문 MC 1인과, 해당 연도에 KBS 드라마에 출연한 남녀 배우 한 분씩을 진행자로 모신다"고 설명했다. SBS와 MBC는 여러 번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연말 시상식에서 이런 방식 계속되는 이유는..."
 
지난해 <2022 MBC 연기대상> 진행을 맡은 김성주와 배우 최수영.
 지난해 <2022 MBC 연기대상> 진행을 맡은 김성주와 배우 최수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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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연말 시상식들이 중년의 남자 진행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저 관성에 따른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정덕현 문화 칼럼니스트는 21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방송국에서) 남성 진행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만 하더라도 늘 같은 그림이지 않았나. 중요한 뉴스는 남자 앵커가 소개하고, 상대적으로 연성 기사만 여성 아나운서에게 맡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고, 여성 앵커가 단독 진행하는 뉴스도 있다. 지상파 연말 시상식에서 이런 방식(성차별적 섭외)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만큼 이 채널들이 보수적인 채널이라고 볼 수 있다. 늘 해왔던 방식에서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도 (시상식) MC는 늘 중년 남자의 몫이었다. 뉴스에서부터 예능에 이르기까지 유능한 중년 남자의 자리는 고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여성 MC의 자리는 자주 바뀌어왔다. 당대의 가장 예쁘고 젊은 여자에게만 잠깐 맡겨지는 식이다. 청룡영화상의 김혜수가 그 구도를 깼던 상징적인 MC였지만 그마저도 이제 진행자의 자리를 내려놓게 되지 않았나. 중년 남자는 왜 바뀌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혜수 다음은 (청룡영화상 진행자가) 누가 될 것인가도 지켜봐야 한다. 전현무, 신동엽과 같은 사람에게는 늘 진행을 맡기면서, 그 자리에 왜 능숙하고 능력 있는 여성 진행자를 계속 앉힐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남자가 중요한 진행자 역할을 맡는 것이 안정적이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관성은 여성 진행자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정 칼럼니스트는 "시상식의 진행자는 대개 예능인의 몫이다. 결국 한국 예능판의 성비 불균형 문제다. 최근에는 예능계 경향이 바뀌고 있지 않나.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아직 시상식 환경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시상식 진행을 맡을 수 있는 유능한 여성 진행자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짚었다.

태그:#연말시상식, #성비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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