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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학 목사의 약력은 조금 특이하다. 광주에서 목회를 하다가 교회 성전을 다 짓고, 이때가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다시는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오랫동안 개척하고 목회하던 안정된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서울 도봉구로 이사와 요양기관을 차렸다. 그때가 2006년 이었으니  어느덧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들의 집에 살고 계신 노인들 댁을 직접 방문하여 돌보아 드린다. 그리고 단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노인들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래서 주위에선 그가 하는 요양기관을 재가장기(在家長期) 요양기관으로 부른다.

지난 18년 동안 이런 일을 매일 하면서 그는 많은 노인들을 떠나보냈다. 일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매일 가까이 한 것이다. 그 노인들의 마지막 순간인 임종을 지켜보면서 느낀 감회를 매일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의 일부를 모아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하여>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표지
 책표지
ⓒ 임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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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언젠가는 다 죽는다. 그래서 이 책은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잔잔히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의 이름 '임종학'처럼 이 책은 '임종' 학, 즉 '죽음의 공부'에 관한 책이다. 다음은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저자와 이 책에 대해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

- 먼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주요 내용에 대해 소개하면?
"이 시대의 모든 어르신이 동일하게 품고 살아야 하는 '외로움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변할 수 없는 성깔의 마지막 일상들을 남은 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육체는 오래 살지만 뇌는 먼저 죽어가는 안타까운 치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여러 잔상들을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었다. 그런 어르신들과 은빛동행의 주인공이 되어준 착한 돌봄 종사자들의 애환들까지 담았다. 마지막으로 노인 연령에 들어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우리 모두가 노년을 지혜롭게 맞이할까 히는 생각들을 미리 거울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써보았다."

- 어떤 사연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인지?
"안개처럼 사라지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들이 잊히고 만다는 게 허망하여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글을 남기게 되었다. 어둠은 아닌데... 희미한 안개 속 이야기들이고 다시 읽어보자니 무언가 남겨지는 따뜻함이 드러나 보여서 책으로 묶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없는 단편적 글이지만 주제로 묶고 보니 스토리처럼 이어진 느낌으로 다가와서 노인들이 아닌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 필자가 일하던 1기 진실화해위원회 동료 중 학살이나 고문 사건을 조사하다 불면증,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 몇몇은 그런 문제로 급기야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목사님도 매일매일 어르신들을 만나고 '죽음'을 가까이 다루는 일을 하면서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어려움이 있으실 것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움으로 소화되고 있다. 신앙 때문인지 모르나 부모님이 떠나실 때도 많이 울지 않았고, 어르신들을 떠나보내며 흘린 눈물은 별로 없었다. 다만 더 섬겨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남을 뿐이다. 정신적인 고통과 아픔이란, 주어야 하는데 주지 못했거나 헤어질 수 없는데 헤어져야 하는 그런 상처들인데 돌봄의 일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없어서였던가 보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오히려 더 많았고 그런 일들이 쌓여가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임종학 목사
 임종학 목사
ⓒ 임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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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대 이상 노인들은 사회복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세대다. 그런데 그런 노인들이 오히려 사회복지에 인색한 우파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이런 성향을 어떻게 이해하나?
"젊은 때는 진보적이고 나이가 들며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때면 보수화되는, 이념의 이동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리고 노인들의 복지 혜택에 있어서 현금보다 큰 것은 없고 그것은 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는데, 그에 대한 대처를 어찌 보면 보수정당이 더 잘 이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표적으로, 노령연금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권 때에 어르신들은 국가가 주는 복지 혜택임에도 하나같이 그것을 한 정치인이 준 선물로 인식하였다. 많이 들었던 말이 '박근혜가 주었어...'라는 씁쓸한 말인데 적어도 국가재정이 과하게 들어가는 정책은 정치인의 선거공약이 아닌 국민투표의 결정이어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좋은 종사자가 많은 곳이 좋은 기관

- 어르신들을 돌보며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는? 또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 해소하는지?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어려움을 생각하기 전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희생과 봉사정신을 소양으로 가진 사람들에게 맞는 직업일 뿐이다. 자신에게 이 일이 맞지 않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봉사 성품이 뒷받침 안 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어르신들에게 상처만 주면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고 있으니까. 기관평가를 행정력으로 하지만 사실 좋은 기관은, 좋은 종사자를 많이 품고 있는 기관들이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며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어르신들을 만나고 돌보며 가장 큰 보람과 삶의 의미를 느낄 때는 언제인지?
"생명의 연장에 어떤 역할을 할 때다. 그리고 주고받는 정이 깊어짐을 느낄 때다. 내게 큰 기쁨과 보람을 준 일들은 사업적 이익과 무관한 일을 했을 때였고, 어르신들은 그 순간을 기뻐하고 있었다. 돈이 개입되면 보람은 사라지는 것 같다."

- 일반 교회에서 목사로서 목회만 할 때와 비교해, 이 일을 하면서 새로 삶에 대해, 또 인생에 대해 깨닫거나 배우신 점이 있다면?
"일반 목회를 그만두기 4년 전쯤 예배당을 건축하고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예배당을 갖게 되니 교인이 주인 되지 않고 목사가 주인 되어 간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목사의 꿈을 갖고 한 길만 걷다 보니 세상을 너무도 모르고 목회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3년 정도 세상 일을 하며 세상을 아는 설교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후 교회를 사임하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으며 직장인과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내게 가장 맞는 옷은 지금의 봉사적 목회인 것 같다. 그때보다 지금의 행복이 몇 배 더 크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일을 함께 못 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 두 사람을 두고 섬기면서 '찾아가는 교회'로서의 삶으로 만족한다."
 
책 내용 중
 책 내용 중
ⓒ 임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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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어르신을 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경험과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두 가지 다 죽음과 연관되고 있다. 먼저 감동이었던 것은, 진심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했던 한 어르신을 품고서 울며 천국으로 빨리 인도해 달라고 영적 이별을 위해 기도했던 일이다. 그리고 안타까웠던 것은,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었는데 정 없는 친족들로 인해 병원 입원 후 돌아가신 과정에서 문상도 못하고 나중에 운명을 알게 되었을 때다."

- 요즘 우리사회는 이념, 성별, 세대 간 분열이 심각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이해하는 일이 왜 중요하다고 보는지?
"이에 대한 답변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질적 여유를 가진 모든 선진국들의 모습이고 특히 개인주의의 변화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우리가 가진 기본적 정의 문화가 죽지 않고 유지하며 회복될 수 있다면 좋겠다."

* 임종학 목사는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신학대학원 졸
한우리교회 개척(광주)
현. 재가장기(在家長期) 요양기관 "온누리" 원장
현. 밀알나눔재단 이사.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임종학 (지은이), 시커뮤니케이션(2024)


태그:#임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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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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