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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옛돌박물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동자석들. ⓒ 성낙선

서울에 눈이 내리는 날,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경복궁 같은 곳은 우리나라 궁궐답게 평소보다 더 화사한 풍경을 보여준다. 근정전 지붕이며, 향원정 연못에 내리는 눈이 궁궐 전체를 은은하게 밝혀준다. 한강공원에서는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은빛 장관이 펼쳐진다. 눈으로 덮인 하얀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내릴 때, 경복궁이나 한강공원만큼 아름다운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곳을 거닐다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거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성북동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한 번은 찾아가 볼 만한 곳으로 꼽을 수 있다. 박물관 자체가 보기 드문 곳이다.
 
우리옛돌박물관 입구. ⓒ 성낙선
  
사실, 눈이 내리는 날에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우리옛돌박물관만큼이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도 드물다.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있는 옛돌들 위로 내려 쌓이는 하얀 눈이 어린 시절에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마을 주변에 늘어서 있던 석상 위로 소복이 내려 쌓이던 눈을 바라보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풍경들이 예전에는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풍경이 되고 말았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래서인지 눈이 내리는 날, 자연스럽게 우리옛돌박물관이 떠오른다. 이 박물관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다른 장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야외 전시장 한가운데 원을 그리고 서 있는 동자석들. ⓒ 성낙선
 
우리옛돌박물관, 옛돌 야외 전시장으로 통하는 길 입구. 길 양쪽으로 석호 두 마리가 버티고 서 있다. ⓒ 성낙선
 
꾸밈이 없는 우리 옛돌들

우리옛돌박물관은 건물 밖 야외 마당에 각종 석불과 석탑을 비롯해 장군석 같은 무덤가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마당 초입에서부터 호랑이 석상 한 쌍과 문인석, 벅수 등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한 장소에서 이렇게까지 많은 석상을 보는 일이 흔치 않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잠시 그 풍경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 풍경이 경우에 따라서 삭막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눈이 내리는 날 이곳에서 보게 되는 석상들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하얀 눈이 오래된 옛돌에서 풍기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차가운 옛돌 위에 그보다 더 차가운 눈이 내리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따듯해진다.
 
우리옛돌박물관, 일본에서 환수해온 문인석들. ⓒ 성낙선
 
우리옛돌박물관, 세월의 때가 짙게 묻은 칠성신들. ⓒ 성낙선
 
우리옛돌박물관, 현무암으로 만든 제주동자들. ⓒ 성낙선

우리옛돌박물관에 전시된 석상들은 대부분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도 그 석상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주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석상들이 하나같이 투박하고 거친 생김새를 하고 있어 더 친근해 보인다. 옛돌들 위에 새겨진 얼굴들이 오래전부터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를 닮아 있다.
 
그 옛돌들이 성북동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서 하루 종일 눈을 맞고 서 있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그 모습이 숱한 풍상을 겪으면서도 돌처럼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옛돌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상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다. 오랜 세월을 견딘 끝에 이 자리에 남아 있다. 그 역사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옛돌박물관, 마애지장보살. ⓒ 성낙선

옛돌에 진심이었던 사람들

우리옛돌박물관은 '국내외로 흩어져 있던 한국 석조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건립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석조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 야외마당에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벅수, 석탑, 불상 등 다양한 돌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그 수가 1250여 점에 이른다. 유물을 모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유물들에 얽힌 사연도 만만치 않다.

이 옛돌들을 모으는 데만 모두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 옛돌들 중에는 심지어 일본에서 되찾아온 것들도 있다. 남의 나라에서, 더군다나 일본인들이 가져간 유물을 되찾아오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인가. 이쯤 되면 이 박물관을 만들고 운영해 온 사람의 열의와 소명 의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옛돌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옛돌박물관, 장군석과 장명등. ⓒ 성낙선

사실 한국인처럼 돌 조각에 진심인 민족도 드물다. 돌을 조각하면서 거기에 수복강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돌 조각을 통해서 수복과 강녕이 돌처럼 단단하고 오래 가길 기원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수없이 많은 석조물을 남겼다. 그런데 그런 소망과는 달리, 지금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옛돌이 그렇게 많지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보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옛돌들은 대부분 이름 없는 석공들이 만든 것이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리옛돌박물관 같은 곳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옛돌들에서는 세련되고 화려한 멋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진솔한 멋이 있다. 거기에 우리 민족 대다수가 지키며 살아온 삶의 진수가 깃들어 있다. 그런 옛돌을 표면적인 가치로만 따질 수 없다. 우리 옛돌들이 가진 가치가 빛을 볼 날이 반드시 돌아온다.
 
우리옛돌박물관, 승승장구길. 길 양 옆으로 망주석들이 늘어서 있다. ⓒ 성낙선

옛돌 위에 내리는 하얀 눈

우리옛돌박물관은 지난해 6월, 박물관 내부에 미술관 '웨이브 뮤지엄'을 개관했다. 박물관 건물 벽에 미술관 전시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그걸 보고,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혼동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우리옛돌박물관 근처에 '길상사'가 있다는 사실도 놓치지 말자. 눈이 내리는 날 보게 되는 절 풍경이 무척 고즈넉하다. 그곳도 한 번 들러볼 만하다.

우리옛돌박물관에서 길상사까지 마을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돌조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는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어디든 승용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게 쉽지 않다. 우리옛돌박물관은 특히나 성북동 비탈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어지간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눈이 내리던 날의 길상사 풍경. ⓒ 성낙선
 
길상사 관세음보살상 발 위에 쌓인 눈. ⓒ 성낙선
 
우리옛돌박물관과 길상사를 나와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간다. 거기에서는 또 박물관 마당 한 쪽에 석탑과 석불 등 다양한 석조문화재가 수풀에 둘러싸인 채 조용히 눈을 맞고 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단단하고 육중한 옛돌 위에, 공기만큼이나 가벼운 눈송이들이 무수히 내려앉는다. 눈송이가 부드럽고 따듯한 솜털이 되어 거칠고 차가운 돌을 감싼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옛돌 위에 흰 눈이 내려앉는 풍경처럼 역설적인 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전히 이질적인 두 물질이 만나 하나가 되는데,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잘 어울린다. 그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풍경을 찾아보는 맛에, 눈이 풍성하게 내리는 날을 기다려 우리 옛돌들을 만나러 간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 불상들. ⓒ 성낙선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 석탑. ⓒ 성낙선
태그:#우리옛돌박물관, #문인석, #장군석, #벅수,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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