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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볼이 넓어 하이힐은 엄두를 못 낸다. 납작한 굽에 발이 편한 신발을 주로 신는다. 당연히 굽도 빨리 닳는다. 며칠 전 외출하려고 나서는데 뚜걱뚜걱 보도 블록과 마찰하는 소리가 심상찮다. 발을 들어 구두 바닥을 보니, 굽이 사라졌다. 

그제야 며칠 전 폭설이 떠오른다. 아, 그때 젖은 눈이 뭉치면서 구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지. 그 바람에 굽이 빠졌구나. 만 보를 걷겠다고 여행 가방을 끌면서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치고 걸었던 개천길이 떠오른다.

고집 센 구두 주인을 못 이기고 떨어져 나간 구두 굽이 애처롭다. 자주 가던 수선집을 찾아갔다. 수선집에 앉아 굽갈이를 기다리면서 폐타이어를 보았다. 여기저기 오려낸 흔적이 있는 타이어. 사장님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이걸로 구두 굽 만들어서 쓰시나 봐요?" 
"네. 이래저래 실험해 보는데 미끄러지지도 않고 괜찮아요. 이거 다 태워버린다는데 환경오염도 심해서 이런 방법을 쓰고 있어요." 

"사장님, 이걸로 특허 내도 되시겠어요?" 
"그렇잖아도 특허청에서 오라고 하여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라토너 이봉주도 왔다 갔네요?" 
"한참 동생이에요. 제가 마라톤도 뛰거든요." 

 
구두수선집.
 구두수선집.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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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당신이 튼튼하게 갈아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냥 가라 신다. 어떻게 그러냐고 계좌번호로 5천 원을 송금했다. 한때 잘 나가던 성수동 수제구두 장인이 의정부 자그마한 골목으로 밀려왔지만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돋보기를 쓴 채, 수선비도 받지 않으시고 폐타이어 재활용에 몰두하시는 모습이 뭉클하다. 

백화점에서 말쑥한 남자가 신겨주는 신발이 아니라 닳아버린 굽을 갈러 와서 우리 동네 이웃의 생애를 듣는 일은 신발 그 이상의 가치를 선사한다. 물건 뒤에 숨겨진 한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책에 기록된 딱딱한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량생산으로 물건을 흔하게 쓰는 시대에, 고쳐 쓰고 아껴 쓰고 순환시키며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은 물건을 선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부디 폐타이어 신발이 특허를 얻어 전국 아니 전 세계에 퍼져 나가길 빌면서 가게문을 얌전히 닫았다.

태그:#이봉주, #페타이어, #구두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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