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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중심 왕푸징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이화원으로 향한다. 베이징의 도로는 동그라미 형태(環)로 확장한다. 2환에서 7환까지가 건설되어 있는데 이화원은 4환 너머 서북쪽에 자리해 있다. 출근시간 교통정체를 뚫고 왕푸징에서 20여km 떨어진 이화원 동문에 도착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 600만여 대의 차량이 오가는 베이징의 교통정체는 오랜 골칫거리 중 하나다.

이화원에서 얼어붙은 서호의 풍경을 보다

광서제가 쓴 '이화원' 편액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인수전으로 향한다. 사슴 뿔, 용 머리, 사자 꼬리, 소 발굽 형상의 기린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서태후를 위한 경극 공연장 덕화원 앞의 소나무는 황제의 상징인 용처럼 뻗어가지 못하고 줄기가 잘린 채 황후의 상징인 봉황처럼 날개를 드리웠다. 서태후를 위한 이런 아부를 기획한 이연영의 거처 영수제가 덕화원 바로 곁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은 권력을 숙주 삼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기생하며 유전한다.
 
성인이나 영웅의 출현을 미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기린의 모습이다.
▲ 인수전 앞의 기린 성인이나 영웅의 출현을 미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기린의 모습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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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처음 전기가 들어온 낙수당도 서태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부여되었기에 가능했다. 낙수당 앞 패가석은 청나라 말기의 암울한 역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낙수당을 지나 장랑에 들어선다. 직선으로 이어진 회랑의 화려한 회화 작품을 감상하다가 회랑이 좌측으로 굽어지자 우측에 불향각이 드러난다. 절대 권력이 동원한 인력이 손으로 흙을 파서 곤명호를 만들고 그 흙을 쌓아서 세운 불교사원이다. 회랑의 동선을 고려해 시선이 오른쪽으로 넓게 열리는 곳에 멋진 경관을 배치한 원림의 치밀하고 절묘한 설계가 경이롭다.
 
얼어붙은 곤명호 너머로 멀리 불향각의 모습이 보인다.
▲ 청동으로 만든 소 뿔 사이로 보이는 불향각 얼어붙은 곤명호 너머로 멀리 불향각의 모습이 보인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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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을 지나는데 추수(秋水)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장자>에 나오는 구절인데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는 스스로 품고 있던 물을 내놓음으로써 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내려놓아야 할 때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시련이 닥치는 시절은 더더욱 움켜쥐려 말고 비워야 한다고 일러준다.

돌로 만든 배 석방에는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라는 민수군주(民水君舟)를 활용한 간계가 스며있다. 돌로 만든 배는 어떤 물에도 침몰할 수 없다는 발상이 발칙하다. 석방을 보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곤명호가 얼지 않았다면 유람선을 타고 17공교를 둘러보면 좋을 텐데, 지금은 베이징의 엄동 시절이다. 얼어붙은 항저우 서호의 풍경을 이화원은 나름 멋지게 재현하고 있다. 원림의 구성요소인 섬과 다리가 또 하나의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는 17공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이화원을 벗어난다.

거용관장성에 부는 거센 바람

이화원을 나와 베이징 외곽에서 점심을 먹고 거용관(居庸關)장성으로 향한다. 너른 평지를 벗어나자 베이징 외곽의 산들이 모습이 드러낸다. 황제가 있는 자금성을 보호하기 위해 베이징 외곽의 장성은 겹겹으로 촘촘하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장성은 언제나 안에서 열렸지, 밖에서 뚫린 적이 없었다.
 
평범한 병사 한 명이 수천 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용관 장성의 모습이다.
▲ 거용관장성 평범한 병사 한 명이 수천 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용관 장성의 모습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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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용관장성 앞에 서자 여학생들은 계단 오를 걸 걱정한다. 마오쩌둥의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각자 자유롭게 장성을 즐기기로 한다. 두 발로 체험하는 것도, 두 눈에 담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성곽을 쌓지 않아도 넘기 어려운 이 험준한 곳에 굳이 이렇게 탄탄한 방어진지를 쌓아야 했던 절박함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진 않는다. 만리장성은 한족과 이민족,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경계로, 유교문화의 울타리로서 굳건히 기능해왔고, 인류역사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다.

남학생들은 두 번째 봉화대까지 거침없이 오르더니 지친 기색도 없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다. 장성에서 뭔가 오랫동안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원대한 포부 하나쯤은 가슴에 품었기를 다만 바란다.

소통이 아닌 검색과 감시의 공간, 톈안먼광장

만리장성에서 내려와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냐오차오(鳥巢)를 경유해 톈안먼광장에 도달한다. 광장에 이르는 진입로에 대한 경계가 사뭇 삼엄하다. 사전 신청을 하고 여권을 제시해 남서쪽 검색대로 진입했는데도 또 한 번 검색이 이뤄지고 마지막 정밀 검색이 또 차례 이어진다.

이쯤 되면 광장의 의미가 무색하다. 광장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소통의 공간이 아니었던가. 검색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운 것이 많은 사회는 뭔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삼엄한 검색을 통과해 들어간 톈안먼광장, 또 등에 달린 수많은 CCTV의 감시를 받는다.
▲ 톈안먼광장 삼엄한 검색을 통과해 들어간 톈안먼광장, 또 등에 달린 수많은 CCTV의 감시를 받는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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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안먼 앞에서 국기하강식이 곧 개시되는지 인파가 모여든다. 굳이 기다렸다가 볼 것은 아니다 싶어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사방에 수십여 개의 CCTV가 관람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광장에서 열린 공간의 소통과 자유가 아닌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감시사회의 일면을 느껴야 하다니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라오서차관의 변검 공연
 
전통건물과 화려한 조명이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 첸먼대가 전통건물과 화려한 조명이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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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광장을 빠져나와 첸먼대가로 향한다. 취엔쥐더, 동인당, 두이추 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철로가 개설된 곳이기도 한데 지금은 현대적 감각으로 재개발되어 조명과 전통 건물들의 조화가 멋진 야경을 이룬다. 베이징오리구이 저녁을 먹고 공연을 보기 위해 라오서(老舍)차관을 향한다.

라오서차관은 베이징 출신의 중국현대 극작가 라오서의 이름을 딴 소극장인데 경극, 만담, 짧은 단막극, 서커스, 변검 등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국가원수급 내빈들이 찾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근처에 국가대극원 등 대형 공연장이 들어서서인지 관객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공연은 단연 변검 공연이다. 변검술사가 객석까지 내려와 관객 바로 앞에서 순간적으로 가면을 바꾸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라오서차관의 공연의 기획력이 변검을 제외하고 다소 떨어진 느낌이다.
▲ 변검 공연 라오서차관의 공연의 기획력이 변검을 제외하고 다소 떨어진 느낌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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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중국도 변검술사처럼 빠르게 얼굴을 바꾸고 있다. 사방에 붙어 있는 '문명'이란 글귀처럼 점점 세련된 문명의 얼굴로 바꿔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게 빅브라더가 감시하고 조정하는 문명은 아니길 또 바란다.

태그:#이화원, #거용관장성, #톈안먼광장, #첸먼대가, #라오서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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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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