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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화위) 이영조 위원장을 진화위 전 직원이었던 나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바 있다(관련기사: 내가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을 고소한 이유 http://bit.ly/cVgW5U).

이영조 위원장은 지난 2009년 12월 진실위 3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이영조 신임 위원장은 부서별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매우 뜻밖의 지시를 내렸다. 2009년 3월 필자 등이 번역한 진화위 최초 영문보고서 배포를 중지하라는 지시였다. 그 이유로는 "영문 보고서의 번역이 엉망"이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번역이 엉터리'라는 이유로 멀쩡한 진화위 영문보고서를 배포 금지한 그는 무엇이 엉터리인지 하나도 지적하지 못했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진화위 게시판에 '영어가 엉터리라서 진화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 금지시켰다면 어떤 부분이 엉터리인지는 왜 지적하지 못하냐?'며 공개 질문했기도 했다. 또 이영조 위원장에게 진화위 직원들 앞에서 나와 '영어 테스트'를 해서 진 쪽이 천만 원을 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해서 지난 2010년 5월 나를 포함해 진화위 영문보고서 번역 감수자 3명이 이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으로 총 6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민사소송은 이후 6년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갔다. 마침내 지난 2016년 4월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필자 등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이 위원장은 필자를 포함해 3명의 번역 감수자들에게 법정이자 포함 약 42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소송이 박근혜 정권에서 비로소 필자 등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관련기사: '뉴라이트 진실화해위원장' 이영조, 대법원도 패소 https://omn.kr/jyic)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지금 유사한 소송이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현 김광동 진화위 위원장을 상대로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필자처럼 진화위 직원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김 위원장을 고소했다.

그 사유가 뭘까 궁금해 이 소송을 수임한 이명춘 변호사와 그의 사무실에서 지난 19일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국군 등에 의해 민간인 학살을 당했던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재심 사건' 결심 공판을 받은 뒤 법정에서 나와 이명춘 변호사(왼쪽에서 네번째) 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2020.1.17
 한국전쟁 전후 국군 등에 의해 민간인 학살을 당했던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재심 사건' 결심 공판을 받은 뒤 법정에서 나와 이명춘 변호사(왼쪽에서 네번째) 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2020.1.17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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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리됐는데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주범 옹호"

-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1950년 충남 남부 지역 국민보도연맹(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조직된 단체) 사건'으로 희생된 고 백낙용·백낙정씨는 어떤 분들이었고 어떤 사연으로 희생당하게 됐나.

"백락용(1911년생), 백락정(1919년생), 백락효(1925년생,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 현재 자녀가 없음)는 모두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에서 살고 있었다. 위 3명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이 되었다.

백락용은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한국전쟁 당시 동아일보 서천 지국장이었으며, 1947년에는 서천군 집회를 취재해 동아일보에 보도했다는 이유로 태평양 미국육군 총사령부 포고 제2호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것 때문인지 1949년에 국민보도연맹 서천지부장을 지냈다. 백락정은 위 집회에 참여해 같은 포고령2호 위반죄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백락효는 농사를 지었는데 별다른 활동력을 찾을 수 없다.

가족들 진술에 의하면 1950년 6월 27일 백락용이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사복경찰 2명에 의해 집에서 시초지서로 연행되었는데 동생 백락정, 큰아들 백**과 함께 연행되었다가 백락정과 큰아들 백**만 곧 석방되었다. 백락정은 1950년 6월 30일 시초서로 속옷 등을 가지고 형인 백락용을 찾아 갔으나 백락용은 행방불명(대전교도소로 이송되어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당함) 되었다. 이어 백락정마저 시초서에 재차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행방불명 되어 대전교도소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 백락정을 당시 면회했던 아내 김00과 딸 백00은 시초지서에 면회할 때 백락정이 전신에 밧줄로 결박된 채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고 구타로 새파란 멍이 들었다고 했다.

백락용과 백락정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고 백락효는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백락용과 백락정은 진화위에서 집단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 희생자 아들이자 유족인 백남식·백남선씨는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나?

"큰아들인 백락용의 막내아들 백남식은 1957년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사찰경찰의 괴롭힘을 피해 마서면으로 이사를 갔다. 1960년대 초중반까지 한 달에 2회씩 경찰의 사찰이 있었다.

백락정의 아들 백남선은 1970년대 말경 미국으로 이민 갔고, 현재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거주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필라델피아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백락용, 백락정의 가족들은 사찰 받으며 산 것으로 보인다."

- 김광동 진화위 위원장을 최근 고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1968년 경찰 신원조사서에 '백락용은 노동당원으로 활약하다가 처형됨', '백락정은 악질 부역자로 처형됨'이라고 적힌 내용을 김광동 위원장이 진화위 결정문에 적시함으로써 사자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범하였다고 판단했다.

허위 사실을 바로잡는 데에는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의 방법이 있으나 진화위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진화위 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넘어 이승만을 정파적으로 편들며 진실규명 결정문을 악용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형사 고소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 김광동 위원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백락용과 백락정의 진실규명 신청자인 백남식이 거동이 불편해 농성 등 진화위에 직접적으로 항의하지 못하고 전화로 항의했다. 진화위 관계자가 피고소인 김광동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다. 이에 백남식은 문제의 글을 결정문에서 삭제하고, 출판된 결정서들을 수거하라고 이의신청 했으나 현재까지 아무 결정이 없다. 형사고소에 이어 민사소송 손해배상, 위헌위법적 결정문 기재 내용 삭제를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김광동 위원장 진화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역사적으로 이미 정리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의 주범을 옹호하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져 진실을 찾아보지 않으며, 정파적 논쟁을 진화위 결정에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 현재 유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유족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 자신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잘못 알까 봐 걱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명예훼손에 분노하며 이 과정에서 고통을 되새기고 있다."

- 이 사건을 맡게 된 이유는?

"원래는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수임했는데 유족이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으므로 과거사를 정확히 정리하고자 하는 바람과 유족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마음에서 형사사건도 수임하게 되었다."

"진화위가 오히려 피해자인 유족을 처벌하려 해"

- 인권 변호사로서 윤석열 정부의 인권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사 사건에 대한 인권 정책이 없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반공·반북 정책의 이념 전쟁 속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밝혀진 진실마저 왜곡할 것으로 보인다."

- 진화위가 진실을 밝히는 기관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되어가고 있다. 조사와 수사는 다른데 진화위는 수사를 하고 싶어 한다. 진화위가 부역자 수사위원회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수사는 범죄자를 처벌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행위인데 과거사 사건에 대해 수사 태도를 가지는 것은 재판 없이 학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수사도 하지 않고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지금은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잡아야 할 진화위 자체가 왜곡되어 만들어진 자료를 토대로 오히려 피해자인 유족을 처벌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유족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명예를 훼손해 반사적으로 가해자인 이승만 정권의 정당성을 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다."

- 대한민국이 향후 바람직한 인권국가, 민주국가로 가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앞 정부의 성과와 과오를 승계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상속자다. 즉 과거의 인권 민주국가의 성과를 잇고, 과오는 반성하고 고치는 자세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이명춘 변호사는 법무법인 정도(正道) 대표 변호사로 전문 분야는 형사 재심사건, 과거사 손해배상(집단소송) 사건, 행정사건, 노동, 교육 분야 사건이다.

태그:#이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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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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