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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한 전시장 가벽에 백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마치 달이 뜨고 지듯이 벽에 걸린 백자가 인화 기법에 따라 흑과 백의 빛깔로 새롭게 피어오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자인데 새삼 낯설게,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문라이징
 문라이징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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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이 '백자'들이 우리가 박물관에서 봤던 그 백자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2점),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2점), 교토 고려미술관, 도쿄 일본민예관(2점),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 등 세계 곳곳에 전시된 우리 백자들을 모은 작품이다. 

구본창은 1989년 우연히 조선백자 달 항아리와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의 사진을 보고 타국에 있는 조선백자를 안타까워하다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4년부터 조선백자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전시되는 사진가 구본창이 한 일이다. 

회고전의 형식으로 중학생 때 만든 자화상(1968)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진가 구본창의 43개 시리즈 500여 점의 작품과 600여 점의 자료를 총망라한 전시회는 '눈으로 보는 자서전'과도 같다. 1980년대 이래 한국 사진계에서 굳건하게 한 축을 자리했던 구본창이었기에, 그의 사진사는 곧 한국 사진사를 조망하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젊은 남자 포스터 등
 젊은 남자 포스터 등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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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소년은 어떻게 꿈을 이루어 갔을까

1953년 생 구본창은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외국 앨범을 수집하고 명작을 모사하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한 소년은 거기서 우리가 아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과 동기 배창호 감독이다. 

배창호 감독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그만두고 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데 그를 보고 구본창 작가도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창호 감독처럼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 하다 독일 지사로 발령을 자처하게 된다. 다시 예술가의 꿈을 풀어가고자 한 작가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의 영향을 받아 '사진'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배창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정재라는 배우를 각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젊은 남자>, 그리고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쁜 우리 젊은 날>등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우리 뇌리에 각인시키도록 만든 포스터가 친구 구본창의 손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구본창
 구본창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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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구본창이란 젊은이가 배움을 시작했던 '사진'은 어땠을까?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영향력이 큰 '인상주의'의 시작은 '사진'이다. 그 이전 정물과 인물을 표현하는 대표적 매체였던 미술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사진술'의 탄생 이후, 자구책으로 '보이는 것 그 이상'에 대한 모색을 시도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상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인상주의'의 모색이 '사진'에서도 일어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는 '즉물주의'적 경향이 1차 대전 이후 대두되었고, 이런 경향은 2차 대전을 치르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굳어지며 전쟁 중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전후,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주관적인 사진'이 새로운 양식으로 대두된다. '인간화되고 개인화된 사진으로 대상에 충실하면서도 사진에서의 자유로운 조형 언어'를 강조하는 경향이다. 이 경향에 영향을 받고 나아가 이를 자신만의 장르로 만들어 간 구본창은 귀국 후 1988년  <사진 새시좌(視座)>(1988.5.18.-6.17, 워커힐미술관)를 통해 '연출 사진'이라는 표현을 통해 기존 한국 사진계에서는 볼 수 없는 시도를 한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굿바이 파라다이스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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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 보이도록 연출하다 

그가 추구한 연출 사진은 '사진이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예술적 장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세계적인 나비학자 석주명의 유고집에서 전국을 돌며 채집한 15만 마리의 나비 표본이 전쟁 통에 소실되고 말았다는 내용을 읽은 구본창은 '나비' 시리즈를 시도한다. 명함 크기의 한지에 나비를 인화하여 채집 상자 표본처럼 만든 것이다.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태우는 제의와 1994년 개봉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잿더미 도시 이미지에서 착안해 인화된 사진을 토치로 그을려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구본창의 사진은 '이게 사진일까?'라는 의문을 느끼게 될 정도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영역을 확대한다. 인화지를 변형시키거나 변화시킨다던가, 찍은 사진을 그을린다던가, 자르고 깁고 다시 조형적으로 구성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의 세계를 확장한다.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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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진'의 세계를 확장하던 구본창은 민속학자 이두현을 만나며 새로운 작품 세계에 발을 들인다. 앞서 소개한 '백자' 시리즈는 물론, 백자를 촬영하며 다니며 만난 '곱돌(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인 뒤 겨 속에 넣어 태우면 탄소가 기름에 부착돼 표면이 옻을 칠한 듯 검게 변한 공예품)', 굿에 사용된 후 태워없어지는 지화 등이 구본창의 앵글 속에서 그 존재의 의의를 얻는다. 

1998년 이두현 교수와 함께 봉산탈출음 촬영하며 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구본창은 <탈> 시리즈를 제작한다. 그의 백자 시리즈가 덩그러니 백자만을 화면에 가득 담는 여느 백자 사진과 다른 것처럼 구본창의 탈은 '생생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회적 초상 사진에 영향을 받은 구본창은 13종 100 명의 탈춤꾼을 각각의 '인물'로서 구현한다. 이쁘게 턱받침한 색시탈, 호기로운 무사 탈은 그래서 낡은 전통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탈
 탈
ⓒ 서울 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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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비무장지대, 콘크리트 광화문 시리즈로 확장된다. 소실되었던 광화문이 1968년 재건축 복원되었든데, 박정희 정부는 당시 광화문을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다. 채색된 단청 속에 숨겨져 있던 콘크리트 단면 만큼이나 우리의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이 있을까. 

그의 표현대로 구본창의 지난한 '항해'는 쉬지 않는다. 일찌기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졸업 작품 <일분 간의 독백>으로 구현해 낸 그는, 돌아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자신의 앵글로 기억한다. 그런 '부재'에 대한 기억은 다시 빈 공간의 모서리와 그곳에 오롯이 남겨진 옷핀 하나를 담는 <인테리어> 시리즈로 나아가며 '사진으로 담는 철학'의 경지에 이른다. 
 
콘크리트 광화문
 콘크리트 광화문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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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본창,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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