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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인 나는 언어학자 신동일 교수의 사회 비평 에세이 <버티는 힘, 언어의 힘> 담당 편집을 맡게 되었다. 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차별과 억압을 내 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힘, 나아가 딴딴하고 올곧은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되찾는 힘을 사람들에게 건네기 위해 쓰여진 책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주 전쯤, 책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들여 매만진 작품은 대부분 그렇지만 집필을 시작하는 시점과 실제 책이 출간되는 시점에 간극이 있다. 하여 편집자로서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책이 나오는 동안 시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출간 직후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가 된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편집자로서 안도했고 시민으로서 탄식했다. 

논란을 보며 여전히,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한참동안이나 우리 사회에는 '언어의 힘'이자 '버티는 힘'인 '비판적 언어감수성'이 요구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미디어에서 떠밀려오는 언어 폭격에 휩쓸려 경쟁 내몰리는 삶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책.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책.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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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지난 며칠 간 수많은 언론사에서 두 선수의 불화에 대해 발단부터 결과까지 대대적으로 다루었더랬다. 기사는 대부분 엇비슷했다.
 
'대회 전날 이강인을 포함한 어린 선수들과의 다툼 과정에서 손흥민이 부상을 입었다. 어린 선수들이 탁구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저녁 자리를 빨리 뜨려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이강인이 손흥민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고 손흥민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기사를 접한 대중은 당연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새파랗게 어린 이강인이 대선배 손흥민에게 하극상을 일으켰구나, 귀한 선수를 다치게까지 했구나, 그런데도 손흥민은 대인배답게 사과를 받아줬구나...

그런데 잠깐, 여기서 멈춰서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개인이 행동하도록 말과 기호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즉 다수 언론은 '대인배 손흥민'과 '무개념 MZ세대 이강인'이라는 대립된 이항으로 둘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급급하고, 대중은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기 쉽다.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집단 내 잘못된 소통 방식부터 시작해 사회의 물밑에서 작동하는 언어 문제까지 한눈에 보여준다. 대립을 부추기는 미디어, 그리고 국가 대항전이라는 경쟁 상황 속에서 과잉된 열기로 굳혀진 신화 체계는 사회 담론을 구성하게 된다.

우리의 언어 일상, '손흥민 이강인' 사건을 다루는 언론과 다를 바 없다

책에는 위 사건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이와 똑닮은 삶의 면면이 들어있다. 티비를 틀면 '혼내고 혼나는' 똑같은 레퍼토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깜짝카메라 예능, 참교육 콘텐츠들이 주를 이룬다. 뉴스에서는 누군가의 선행이 '순수한 의도'로 이루어진 행위였는지 가늠하고, 정치적 발언을 한 아이돌을 대역죄인처럼 다룬다. '착해야 성공한다'는 말은 덕담처럼 방송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은 순종하며 사는 삶을 미디어가 어떻게 칭송하는지, 이를 개인이 어떻게 고스란히 학습하게 되는지를 논하면서 대중문화를 비평한다.

"우리는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 바깥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은밀하게 퍼진 속박과 회유, 그로부터 만들어진 불안과 도피의 행위성에 관해서는 무지합니다. 그래서 100년 전, 10년 전에 비해 자유의 공간을 훨씬 더 많이 획득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살아가긴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책 231p)

"세상을 둘로 나눈 언어가 넘치면 세상은 둘로만 보이"며 "이항으로 모든 걸 대립시키는 언어는 전쟁언어"라고 말하면서 순혈주의와 파벌 싸움, 마녀사냥이 팽배한 학계와 정계 및 기업문화에 대한 쓰디쓴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팬데믹 당시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어느 곳이든 봉쇄할 수 있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마스크 미착용자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정책"을 시행한 정부, 당시 감염자를 마녀사냥했던 언론까지도 비판의 대상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규제는 바이러스보다 은밀하게 몸과 마음을 억압, 우리 안에 불안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하게 진단 받아야 할 언어 폭력의 온상지, 일터

몇년 전 '라면 상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기업 임원이 객실 승무원을 향해 폭언과 폭행을 가한 상황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이는 비단 일개 갑질 고객과 직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수많은 가게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매뉴얼에 적힌 대로 응답한다. 정해진 언어의 틀에서 벗어난 직원은 손님의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기 일쑤다. 말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직원들에게 강요되는 것은 말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아닙니다'가 아닌 '아니요'라고 말해서. 말끝을 '솔' 톤으로 올리지 않아서... 승무원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물론, 각종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 언어 관리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일상 속 풍경을 주도면밀히 살피면서 개개인의 언어를 상품으로 치환하여 통제하는 현대 사회의 통치 권력을 포착한다. 서로 다른 삶의 모양처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말의 모양을 표준에 맞추어 관리하는 현상을 '언어의 맥도날드화'라 부르며, 이것이 어떻게 진상 손님을 만드는지 면밀하게 파헤친다.

"용모와 복장, 과잉 친절과 순종의 태도, 표준적인 말투"를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사회는 사람들의 인식까지 틀에 가두게 된다. '예쁜 제복을 입고 단정한 얼굴로 웃음을 파는 것이 원래 서비스 직업이다'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라면 상무'가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사회라면 당신과 내가 다음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절망하지 않는다. 외로웠지만 동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던 한 축구선수의 인터뷰, 글과 말로 버티면서 고통을 호소하길 멈추지 않았던 체육계 미투 운동 등 크고 작은 이야기를 통해서 희망의 새싹을 발견하려 한다. "우리의 언어를 갈고 닦아서 그걸 반지성적이고 폭력적인 언어사회에" 말하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법은 바로 일상을 둘러싼 언어와 거기서 생기는 문제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언어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다. 

"늦게라도 언어감수성을 학습하면 자유와 사랑에 관한 우리의 의식은 달라집니다. 배타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언어를 버리도록 교육받을 때, 자유는 우리의 고유한 인격을 성장시키며 사랑은 상호인격적인 관계를 학습하게 합니다. 언어와 기호의 매개로부터 우리는 자유를 되찾고, 사랑의 관계를 선택하며, 지배적인 문화 풍조에 맞설 수 있는 자아정체성을 갖게됩니다." (책 237p)

꾸준히 글을 쓰고 나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싱어송라이터" 같은 삶, 비유의 언어를 체득하고자 문학 작품을 거듭 읽는 삶, 리추얼을 만들고 일상의 여백을 늘리는 미니멀리스트의 삶과 같은 비주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면서 독자가 본인만의 언어를 자각하도록 이끈다. 달라진 언어가 우리를 권위주의 사회에서 버티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에게도 비판적 언어 감수성을 권한다.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을 토대로 'MZ'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화법을 말하며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의 연대를 희망한다.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삶, 꼰대로 살아가지 않을 젊은 마음을 바라는 모든 이에게 <버티는 힘, 언어의 힘>을 권하고 싶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뒷표지.
 《버티는 힘, 언어의 힘》뒷표지.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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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지은이), 필로소픽(2024)


태그:#버티는힘언어의힘, #필로소픽, #신동일, #에세이, #사회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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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픽 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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