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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후보로 나선 정운용(외과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회 대표)입니다. 이 글은 지난 2월 15일 <의협신문>에 제가 기고한 글입니다. 기고 게재가 미뤄지다가 '민감한 시기라 당장은 싣기 곤란하다'는 답변을 2월 말에 들었습니다. 글에서 다루고 있는 '의사 파업'은 이미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해결책은 도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도 이 글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오마이뉴스>에 송고합니다. - 글쓴이 말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함께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의협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됐습니다(2월 초). 정부는 파업을 포함한 의사들의 반대 투쟁에 강경 탄압을 예고했습니다.

저는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300여 명의 동료 의사들과 토론했습니다. 지금 한국 의료가 장기간 지속 가능한가, 큰 틀에서 개혁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개혁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누구의 힘으로 할 것인가' '그 속에서 의사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등이었습니다. 토론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휠체어가 놓여 있다.
▲ 의대증원 맞서 의협-전공의 집단행동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휠체어가 놓여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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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지속적으로 부족했고, 행위별 수가제에 기반한 민간 영역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전문가인 의사들은 자영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의 지배력은 날로 강화되어 국민들의 의료 이용 행태만이 아니라 의사들의 진료행태와 노동시간, 노동강도에 왜곡을 더하고 있다.

현재 한국 의료는 지속가능성이 낮으며 일대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등록제에 기반한 주치의제를 중심으로 수가체계의 변화, 의료전달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국가보건정책의 핵심 지렛대인 공공병원의 확대를 통해 위기를 대비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멸하는 지방의료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가 더 필요하고, 이는 의사들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서도 그렇다.

국가의 획기적인 재정투자가 필요하고 이는 공공의료의 확충만이 아니라 필수의료를 위해서도, 의사 증원에도 국가의 재정투자가 필요하다.

의료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이 하는 것이지만, 의사들도 충분히 개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의사들은 국민 설득을 통해 국민과 의사 모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료개혁에 함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협회가 권익단체 보다는 전문가단체로서 위상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의료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사증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른바 '필수의료'과의 전공의 지원 미달, 지방의료 붕괴, 소위 응급실 뺑뺑이 등을 해소하려면 이 의대 증원은 공공적 의대 증원 방안이어야 합니다. 즉 공공의대나 국립의대 증원을 통한 공공적 의사 증원, 공공병원 또는 지역의료의 대한 의무복무제와 이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이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의사증원 방안이라고 봅니다.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증원' 발표... 결정 과정서 의협이 배제된 이유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법무부-행안부 합동브리핑이 2월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성재 법무부장관.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법무부-행안부 합동브리핑이 2월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성재 법무부장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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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을 발표했습니다. 결정 과정에서 의협은 완전히 배제됐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민주적 정부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정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인기 없는 지지율 30% 남짓의 정부가 의대증원을 이른바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의 하나로 밀어붙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조차도 의협을 완전히 배제한다해도 의사 증원에 대한 절대적인 국민적 지지가 있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의견을 나눈 의사들은 정부 방안대로라면 의사가 늘어나도 필수의료로, 지방으로 가는 의사 숫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또 많은 의대교수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증원 숫자에 대해 의대 교육의 부실화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의사증원에 대한 국민 여론은 80%가 넘는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압도적 지지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5년간 400명 정원 증원 방안'에 대한 의사들의 파업, 즉 코로나 시기의 파업과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들의 직접적 여파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2020년 파업으로 의사들은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었고 고립됐습니다. 지금 의사들은 그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2020년 파업은 명분이 없었고,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시기의 파업이라는 수단을 통한 대응은 정부를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의협의 사회적 불신과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저는 의협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의사증원 안에 대해 의협의 대응이 지난 2020년 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증원 무조건 반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사증원 무조건 반대라는 설득력 없는 명분으로 파업을 강행하는 것도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고 봅니다.

'공공적 의대 증원 방안'이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환승센터 인근에서 개최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의협 비대위가 연 "전국의사총궐기대회"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환승센터 인근에서 개최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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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이번 의대증원안에 대해 의협이 의사증원은 하되 지역의료·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도록 공공적 의대 증원 방안, 즉 지역의료나 공공의료 의무복무제를 통한 공공적 지역의사제와 같은 공공의대·국립의대 증원방안을 주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의사협회는 정부의 의사증원안에 대한 반대투쟁을 천명하고 기자회견과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증원에 대한 국민 여론의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조건에서 의사협회의 투쟁 목표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협회가 전문가 단체로서 거듭나려면 지방의료의 붕괴나 이른바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 미달사태 등을 해결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의사협회가 공공적인 목적의 의사증원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적으로 정부의 의대증원안에 대응할 때에만 의사협회가 시민들에게 존경받고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전문가단체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가 더 이상 의사협회가 의사증원에 무조건 반대하고 국민설득이 아닌 힘의 과시만 하는 단체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공공의료, #의대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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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인의협 대표이며 제 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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