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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정상 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지난 2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정상 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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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업무개시 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 절차에 돌입했다. 복지부는 4일 의료 현장을 대상으로 전공의 복귀 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5일부터는 면허 정지 처분에 필요한 사전 통지서를 우편 발송한다. 만일 3개월 면허 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는 1년 이상 늦어진다. 전공의 수련 기간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면허 처분 대상자는 7854여명에 이른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복귀하면 정상 참작하겠다고 여지를 뒀다.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정부는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여론은 전공의 집단사직에 싸늘하다. 전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도 강하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지 2주를 넘겼다. 의료 현장에서는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하고 있다. 제때 진료를 받지 못 하거나 '번 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떠난 대형 병원은 의대 교수와 전임의사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야근과 당직이 누적되면서 상당수는 극심한 피로에 노출됐다. 교수들이 당직을 돌아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한계에 달했다. 만일 계약기간이 끝난 전임의사들마저 현장을 떠난다면 진료 공백은 한층 악화될 게 빤하다. 전공의들에게 최소한 의료윤리라는 게 있는지 의문이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어떤 경우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의료인들도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볼모로 삼는 의료 파업은 다른 문제다. 수단과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태도는 문제를 키우고 있다. 의협은 의대 증원 계획을 원점에서 논의하자며 전공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앞서 1일에는 집단 휴진 가능성도 내비쳤다. 직업 이기주의이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인질극과 같다. 의료인력 부족은 엄연한 현실이며, 의사 증원은 당연하다. 지난 28년 동안 한 명도 증원하지 못했다면 비정상적이다. 과로를 호소하는 의사들이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의사가 늘면 업무가 분담돼 과로를 해소할 수 있는데 왜 반대할까.

의료, 주거, 교육은 공공재다. 의료는 고도의 직업윤리를 필요로 한다. 모든 직업 가운데 스승사(師)를 붙이는 경우는 의사와 약사가 유일하다. 둘 다 생명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는 2.5명이다. OECD평균 3.7명에 못 미치며 38개회원국 중 꼴찌다. 의대 졸업자도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OECD 절반 수준이다. 반면 의료인 연봉은 OECD 최고다. 종합병원 의사 평균 소득은 2억6900만 원(2021년 기준)이다. 변호사(1억1500만 원), 회계사(1억1800만 원)보다 2.3배 높다. 의사 소득은 최근 10년 간 79% 상승했다. 일반 임금 근로자의 평균 소득(42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6.8배나 높다.

의사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시비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들이 반대하는 속내는 빤하다.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증원에 따른 희소성 저하와 과당경쟁, 수입 감소 때문이다. 의사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그릇된 가치관이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독일 정부는 50%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의사들은 정부 조치를 전폭 환영했다. 같은 시기 문재인 정부는 34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가 의료계 반발로 철회했다. 정부가 특정 직업 이기주의에 무릎 꿇는 나라는 많지 않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의료계는 이번에도 정부가 손을 내밀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선 차가운 여론을 극복하기 어렵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독일 병원에서 체험을 토대로 "환자를 볼모로 삼는 의료윤리는 야만적"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독일은 의사 선발 과정에서 성적이 아닌 적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의사로서 적합한 품성을 갖췄는지 이틀에 걸쳐 적성과 인성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성적순으로 의대를 지원하는 한국과는 판이하다. 의사 고시 의료윤리 문항도 320개 중 4개(1.25%)에 불과하다. 미국은 1단계 15~20%, 2단계 3~7%, 3단계 14~18% 정도 의료윤리 문항이 출제된다. 정춘숙 의원은 이 같은 사실을 들어 의료윤리 항목 증가를 주장했다.

정부는 이번에는 어물쩍 타협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원칙을 세우지 못한다면 집단 이기주의는 반복 될 수밖에 없다.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되 현실적인 대책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전공의 근무시간 한도와 연속근무 허용시간 축소가 필요하다. 또 상급 종합병원 전공의 비율을 제한하고 전문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수술이 많고, 24시간 응급환자를 돌보는 분야는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의대정원 증원 시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 근무를 조건으로 선발하는 전형절차도 명문화해야 한다. 그래야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비할 수 있다. 핵심은 제도보다 의료윤리 회복에 있다. 의사다운 의사, '의사 선생님'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전공의집단사직, #업무개시명령, #면허정지처분, #집단이기주의, #의료윤리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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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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