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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신혼 때 남편과 한의원을 찾은 적이 있다. 내 진맥을 짚어보던 한의사는 남편을 쳐다보며 이런 말을 뱉었다. "같이 살기 힘드시겠어요." 무슨 뜻인가 하니 내가 무척 예민한 기질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씩 웃어 보였다.

다음은 남편 차례였다. 나는 괜히 뾰로통해져 있었는데, 한의사는 남편의 진맥을 짚더니 이번에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휴 만만치 않은 분이랑 사시네." 남편과 나의 표정은 일순간 뒤바뀌었다.  

이렇듯 우리 부부는 한의사가 인정한 예민한 부부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어떨까. 역시 예민하다. 피가 어디 가겠나. 유전자는 정직하게 발현된다. 첫째는 그나마 덜한 편인데, 둘째는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거부하고 앞에 나서서 하는 일에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매일 아침 울면서 등원하고, 하원한 뒤에는 자기 전까지 따라다니며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는 것도 싫어했다. 휴일이 길게 이어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등원을 거부했다. 각종 행사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물놀이의 경우 아예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거릴 때 홀로 물 밖에서 멀뚱히 서 있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내 아이만 세상에 스며들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입학과 동시에 "학교 가기 싫어"
 
너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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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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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을 앞두고 아이의 눈치를 살피니, 아이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있는 듯했다. 새로운 공간, 낯선 사람, 생경한 일상을 아이는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이보다 내가 더 긴장이 되었다. 둘째 입학은 다들 큰 걱정이 없다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첫째 때보다 더 염려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식 날부터 아이는 초긴장 상태였다.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고, 간단한 자기 이름 말하기조차 거부했다. 나까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최대한 평온해 보이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의 학교에는 전통적으로 입학식 날 보호자가 아이에게 개인적인 격려의 말을 전하는 순서가 있다. 아이의 앞에 앉아 손을 맞잡으니 아이는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직 작고 작은 아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일까 싶어 나까지 울컥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예상했던 말인데도 듣고 나니 미간이 일그러졌다. "왜 가기 싫어?" 하고 물으니 "그냥."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럴 수 있어. 근데 한 번 가보자. 네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재미난 것들이 세상엔 아주 많아." 학교는 가고 싶다 해서 가고, 가기 싫다 해서 가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는 말도 해주었다. 아이는 얼마나 내 말을 귀담아 들었을까.

아이는 다음날 잔뜩 굳은 얼굴로 등교를 하면서 내게 온갖 걱정을 털어놓았다. "화장실이 어디야? 급식은 어떻게 먹어?" 나는 아이가 안심할 수 있게 답변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다 알려주실 거야. 초등학교 1학년은 시작하자마자 공부부터 하지 않아. 학교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부터 알려주셔. 걱정하지 않아도 돼." 터벅터벅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예민함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지도

'예민하다'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라는 뜻을 가진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는 두 번째 뜻이고, 첫 번째에는 의외로 긍정적인 뜻이 적혀 있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예민한 사람은 어딘가 까탈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세상을 느끼고 감각하는 데 무척 섬세한 사람인 것.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고쳐 쓰면 사뭇 느낌이 달라진다.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으로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둘째는 어린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주변 사람의 기분 상태를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눈치도 빠른데 행동도 재바른 편이라 어린아이치고는 무척 자신의 주위를 잘 챙긴다.

사실 내가 글을 쓰는 삶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단어 하나 행동 하나 판단 하나 허투루 하지 못하는 성정은 조직 생활에는 맞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일에는 꽤 적합했다. 남편의 예민함 역시 결혼을 결정하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 섬세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함께 살기에 잘 맞다 생각됐던 것.

예민함은 때로 서로가 서로를 베는 칼날이 되기도 하지만, 잘 관리하고 보듬으면 따뜻하게 상대를 감쌀 수 있는 기질이기도 하다. 아이의 예민함을 단점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독려해야겠다. 감각적인 아이가 자신의 기질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섬세함으로 자신을 돌보고 타인도 배려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의사 다카다 아키카즈의 책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만약 예민함이 인간에게 불필요했다면 유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지 않다면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민함도 당신의 가치를 완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며칠 전 첫째보다 먼저 준비를 마친 둘째가 첫째를 재촉했다. "형아 빨리 학교 가자."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맞나 싶었다. 둘째에게 물었다. "학교 빨리 가고 싶어?" "응. 가서 OO랑 놀 거야." 학교에서 뭐가 가장 재밌느냐고 물으니, 중간놀이 시간과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노는 게 신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싶을 만큼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학교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내 걱정과 달리 둘째는 예민하지만, 누구보다 섬세하게 감각하며 빠르게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던 것.

육아에서 해결점은 의외로 믿음일 때가 많다. 아이를 믿으면, 아이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힘을 신뢰하면, 아이는 금세 변하고 적응한다. 아직 작지만 커다란 우주를 간직한 이 아이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신뢰하리라 다짐한다.

"엄마는 널 믿어! 너의 섬세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예민한아이, #섬세한아이,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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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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