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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이다. '49.9 vs. 42.8%, 44.1 vs. 45.6%, 48.9% vs. 43.9%, 7.1p오차범위 내 우위, 불과 1.5% 차, 우세 또는 접전...' 신문을 펼치면 숫자의 향연이 펼쳐진다. 얼마 전까지는 전국 팔도의 시장 풍경을 마주하게 하더니 슬슬 선거도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모양이다. 숫자의 향연과 함께 막말의 향연도 눈부시다. '막말'로 공천 취소된 후보들의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후속보도까지 쏟아지니 그야말로 틀면 나온다.

'2024총선미디어감시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주 포털뉴스를 분석한 결과 주요 인물 키워드에서 도태우 국민의힘 예비후보와 정봉주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언급량 상위권에 등장했고 도태우, 정봉주, 장예찬, 조수연 등 후보들의 막말 논란 관련 후속 보도 건수는 323건, 노출시간은 1077시간이었다. 두 당의 공천 보도 건수 240건과 노출시간 879시간보다 더 많이 보도되고 오래 노출됐다.

'판세-전략'과 '판세-여론조사' 이슈도 보도량 상위권에 등장하는 시기이다. 기사건수와 노출시간에서 198건(9.3%)과 781시간(11.6%)을 기록하면서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별 지지율 비교보도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도태우·조수연 후보자의 막말을 정리한 MBN <MBN뉴스와이드>(3/14)
 국민의힘 도태우·조수연 후보자의 막말을 정리한 MBN (3/14)
ⓒ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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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선거가 본격화되면 어디랄 것 없이 판세 분석이 보도의 중심이 된다. 후보자의 공약이나 자질보다는 시시각각 변하는 지지율을 보도하는 '경마식 중계' 또는 '스포츠 게임' 방식으로 선거보도는 지역 후보의 인물에 대한 정보와 공약에 대한 정보 제공의 기회를 뺏을 수밖에 없다.

여기가 경마장이야?

그러고 보면 선거 과정에서 '말'과 관련한 용어들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선거에 나설 때 후보들은 자신의 의지와 다짐을 담아 '출마의 변'을 밝힌다. 출마는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 내온다는 말로 전쟁터에 나간다는 의미다.

실제로 경마 경기에서 기수와 경주마가 경주에 참가할 때 '출마'라는 말을 쓴다. 선거 중에 뜻밖에 선전을 하는 후보를 '다크호스'라고 부르고 공천 과정과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을 '낙마'라고 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말이 출세나 입신양명을 뜻했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말'과 관련한 용어들이 자주 쓰인다 해도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경마식 보도'는 얘기가 다르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000이 구포시장에 왔다던데요", "그래서 뭐 먹고 갔대?", "모르죠. 그 동네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보다는 000이 앞선다던데요.", "그 지역은 공약이 뭐예요?", "몰라요. 지지율은 막상막하라던데... 요즘 골때녀도 막상막하예요. 완전 재밌는데 골때녀 안보세요?"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방송장면(3/20) 갈무리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방송장면(3/20)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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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대화는 SBS 스포츠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로 옮겨갔다. 화제가 되고 있는 팀과 감독 이야기, 선수들의 놀라운 투혼과 실력에 대한 이야기, 어느 팀이 이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팀 다 내 팀 같은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승부가 아니라 모두가 내 팀 같은 경기라니! 이거야말로 선거에 딱 어울리는 얘기 아닌가.

<골때녀>는 2개 팀 조합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치르던 올스타전 형식을 바꿔 각 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총 망라한 4개 팀을 새롭게 구성해 올스타리그를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고 울고 웃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니 '두 팀 다 내 팀 같은" 스포츠 경기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선수들은 상대를 누르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고 즐겁게 축구를 즐기는 더 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편'과 '남의 편'의 대결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모두 한 팀이 돼야 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축구에 대한 진심과 유대감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여론조사의 함정

경마식보도를 볼 때마다 못내 답답하고 불편한 것이 선명해졌다. 몇 대 몇,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를 읊어대는 보도에서는 절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들이다. 경마식 보도가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보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현실에서 그나마 선거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항변이 무색하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갇힌 경마식 보도가 어떤 관심을 끌고 어떻게 유권자의 선택을 도울 수 있을까? 경마식 보도가 많을수록 유권자들은 선거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문제 외에도 경마식 보도의 핵심인 여론조사가 유권자의 선택 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흔히 선거과정 여론 조사와 관련해 '밴드왜건 효과'가 자주 등장한다. 유행 동조나 편승을 일컫는 말로, 다수의 선택을 무작정 따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선거에서 흔히 나타나는 '우세 후보 쏠림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여론조사가 표심을 읽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정치의 공간에서 사실상 '플레이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밴드왜건이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라면 좀 더 은밀하고 간접적인 차원의 영향력도 있다. 프라이밍(priming), 즉 점화 효과인데 먼저 받은 정보가 뒤에 얻은 정보를 처리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심리학적 현상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한번 공표되면 경쟁력 척도로 각인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선거전이 임박해지면 후보들의 세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3월 21일 <부산일보> 여론조사 보도(3면)
 3월 21일 <부산일보> 여론조사 보도(3면)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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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부산MBC <뉴스데스크> 여론조사 보도 갈무리
 3월 20일 부산MBC <뉴스데스크> 여론조사 보도 갈무리
ⓒ 부산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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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의 결과를 해석하는 데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여론조사는 특정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본이 충분히 크고, 다양한 집단을 포함하도록 구성됐는지, 특정 성향이 과표집 됐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것과 관련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자주 간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오차범위를 확인해서 결과의 신뢰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는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보도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지역신문은 최근 오차 범위 내 접전인 지역구에 1위, 2위를 붙이는 잘못된 보도 관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론조사를 위한 질문 구성과 답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는지, 여론조사 기간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주중 낮에만 조사가 이뤄진 것인지, 주중 낮과 밤, 주말을 포함하고 있는지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진다. 조사기관의 성향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론조사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마식 보도는 단순한 수치를 전달하는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선거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게임이다

투표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5년에 세 번 권리를 행사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권력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여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다. 선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열고 싶은 가능성은 무엇인지, 2024년 총선은 어떤 선거가 돼야 하는지 분석하는 언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마식 보도의 주인공은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경기장에 직접 들어가뛰지 못하는 유권자들을 대신해 그 새로운 가능성을 열 열쇠를 찾는 선수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며 함께 뛰는 선수들과 함께 축구라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골때녀'들처럼. 우리는 그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가운데 유권자들의 마음을 여는 맞춤한 열쇠가 있을 테고 말이다.

'우리 편' 이든 '남의 편'이든 우리의 열쇠를 찾아 뛰고 있는 선수들을 모두 내 팀처럼 기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선거보도를 기대하는 건 '골때녀'에 너무 푹 빠진 탓일까?

정수진 정책위원(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기획실장)

태그:#부산민언련, #지역언론, #유권자중심보도, #총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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