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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2024.2.16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대통령에 항의하다 입 틀어막힌 KAIST 졸업생 2024년 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2024.2.16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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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학위 수여식 도중 R&D 예산 복원 발언을 하는 졸업생의 입을 틀어 막아(입틀막) 강제로 끌고 나간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폭력적인 언행도 아니었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하는 국민을 '입틀막' 하고 강제 퇴장 시킨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R&D 예산 삭감'이라는 정부 정책은 입틀막까지 해야할 만큼 비합리성, 비논리성의 결정판이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R&D 예산 삭감의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 회사는 벤처기업으로 환경분야 R&D에 강점이 있는 회사다 보니 R&D 지원사업을 2개 수행중이다. 각각 5년, 4년짜리 과제로 작년에 협약을 끝냈다.

그런데 한 과제는 80%, 나머지 한 과제는 30% 지원금이 삭감되면서 80% 삭감된 과제의 경우 겨우 2500만 원으로 올해 연구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작년에 청년 채용을 했기 때문에 2500만 원은 인건비로 모두 소진될 것이고 정작 연구비는 남는 것이 없어 올해 연도 연구 내용과 목표를 전부 변경하여 승인을 받았다.

이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예산, 연구내용, 연구목표를 변경하느라 꼬박 한 달을 서류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3월 초쯤 되니 변경 요청한 협약 내용이 승인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지원하던 예산 빚내서 쓰라고?  

그렇게 그간의 억울함과 분노가 잠잠해질 즈음, 이번에는 'R&D 혁신스케일업 이차보전 사업 안내'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그 내용인즉, R&D 예산이 삭감된 과제에 한하여 삭감된 금액의 200%만큼 대출이 가능하며 그 이자를 최대 5.5%까지 지원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R&D지원과제를 수행중인 기업에 보낸 이차보전사업 안내문
 R&D지원과제를 수행중인 기업에 보낸 이차보전사업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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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이자를 5.5%까지 지원해준다니 거의 거저 쓰는 자금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엄밀히 말해 원래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하는 예산을 기업이 빚 내서 쓰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권 카르텔이라며 R&D 예산을 삭감해 놓고는 이자보전해 줄 예산은 4000억 이상을 잡아 놓은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기업은 당장 삭감된 예산 때문에 재정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싼 이자 대출 받아서 그간 부담이 되던 비싼 이자 대출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으로선 안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빚 내서 연구해 매출이 올라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빚 갚느라 기업은 또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약속을 깰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연구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가?

무책임한 정부, 국민 신뢰 얻기 힘들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2023.11.27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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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정부가 R&D지원 사업을 통해 예산을 주며 연구하라고 한 이유는 당장 연구성과가 나오기는 어렵지만 국가 산업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연구해야 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기업이 빚 내서 연구하고 못 갚으면 망해야 한다면 국가산업의 미래를 저당잡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장에서 R&D 과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담당자로서 이런 글을 올린다는 것이 매우 부담되고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뉴스 어디서도 다루지 않아 국민 대다수가 이런 정부의 행태를 모르고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기사를 쓰게 되었다.

무책임한 정부,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여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부는 더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태그:#연구비삭감, #빚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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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속에 숨어있는 비범함을 찾고 불행 속에 가끔 찾아오는 행운을 감사하면서 균형을 이룬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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