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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편집자말]
1천 개를 넘는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은 계절에 따라 나는 음식 재료가 육해공(陸海空)을 망라한다. 그런데 육지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안군이 2022년 펴낸 <신안 섬음식 백서>는 굴 김 갈파래 감태 등 해조류, 민어 홍어 황석어 농어 병어 낙지 등 어류, 전복 거북손 새우 꿩 흑염소 등 42가지 대표적 향토 식재료를 소개한다. 섬에서 나는 독특한 음식 재료와 주민들 사이에서 전승되는 조리법으로 고유한 섬 음식이 만들어진다.

여행자들은 해가 기울면 입을 호사시키는 미식(美食)을 찾아 나선다. 음식에는 그 지방의 물산과 전통, 정서가 담겨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웰빙 관광을 추구하면서 '맛집 투어'는 여행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한국인들의 식단에서는 어딜 가나 주요리(main dish)에 못지않게 반찬(side dish)으로 나오는 김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필자가 그룹 투어로 대양주 국가에 갔을 때 한식집들이 한결같이 불그레한 물이 질척거리는 중국산 김치를 내놓아 타박한 적이 있다. 여행사들이 제시한 단가를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식당 주인의 변명이었다. 그 나라의 김치는 모두 한 업자가 수입하는지 한눈에 같은 중국산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신안 음식점들은 섬에서 나는 젓갈과 생선 등을 넣고 숙성시킨 김치를 내놓는다. 같은 재료를 써도 주인의 손맛에 따라 향과 식감이 달라진다. 천사섬에서는 외관이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서도 여행 중 먹는 맛의 즐거움을 망쳐놓는 중국산 김치를 만나지 못했다.
  
《신안 섬음식 백서》표지.
 《신안 섬음식 백서》표지.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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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섬 음식 백서>는 '발로 쓴 요리책'이다. 신안군 섬들마다 요리 잘하는 사람과 식당을 수소문해서 304가지 음식을 찾아냈다. 이 중에서 보존가치, 역사성, 대중성을 고려해 100 선(選)을 해 백서(白書)로 펴냈다.

강성국(목포대 식품공학과 교수), 김경희(목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양동휘(초당대학교 호텔조리학과 교수), 노선미(신안군청 관광진흥과 영양사) 씨가 1년 6개월 동안 76개 유인도를 찾아다녔다. 기능보유자한테 이야기를 듣고 요리를 같이 했다.

필자는 이 백서를 바탕으로 깔고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 교수와 사단법인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의 저서를 참고했다, 김준 연구원이 쓴 <바다 맛 기행>(전 3권)에는 각종 어류와 해조류 75가지 요리가 등장한다. 강 소장은 남도 섬 전역을 발로 뛰며 발굴한 토속음식 34가지를 <전라도 섬맛기행>에 담았다.

홍어(흑산도) 민어(임자도) 숭어(영산도 퍼플섬) 병어(지도) 낙지(옥도) 거북손(영산도) 등은 해당 섬을 다룰 때 관련 음식과 조리법을 소개했으므로 중복을 피했다.

<황석어>
황석어(黃石魚)는 농어목 민어과의 물고기로 지역에 따라 강다리 황석어 황새기 등으로 불린다. 몸은 작고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모양과 맛이 비슷해 간혹 조기 새끼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기 새끼보다 머리가 크고 돌기가 있다. 지역에 따라 참조기라 부르기도 한다. 
  
조기 새끼와 비슷하게 생긴 황석어.
 조기 새끼와 비슷하게 생긴 황석어.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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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서는 오뉴월이면 알이 꽉 차고 싱싱한 황석어로 찌개를 끓인다. 황석어 조림은 조기조림보다 국물 맛이 더 진하고 살은 부드럽다. 황석어는 바짝 말려두었다가 조림을 해 먹기도 한다. 황석어를 소금에 절여 6개월 넘게 발효시켜 조미료로도 이용한다. 황석어는 다 자라도 크기가 13~15 cm로 몸집이 작고 뼈가 연해 통째로 씹어도 무탈하다.

황석어젓은 천일염으로 담가 신안 임자도 전장포 토굴에서 숙성시킨 젓갈이 유명하다. 황석어젓으로 김장을 담그면 김치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식감을 부드럽게 해 준다. 황석어 젓갈에 양념을 하면 밥반찬으로도 인기가 높다. 민어와 참조기는 몸값이 높아 쉽게 밥상에 올릴 수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황석어가 대용으로 이곳저곳에 나선다. 몸집은 작지만 맛과 쓰임새는 조기에 못지않다.

황석어 튀김도 일품이다. 김준씨는 "임자도 황석어 축제에서 황석어 튀김을 처음 먹어봤는데, 내가 먹어본 생선튀김 중에서 으뜸이었다. 통째로 튀겨서 씹는 맛이 좋다"고 강추한다.

<망둥이>
표준말은 망둥어가 아니라 망둥이 또는 망둑어다. 신안 같은 갯벌이나 강과 바다가 만나고 바닥이 진흙이나 모래로 이뤄진 강의 하구에 산다. <자산어보>에는 '성질이 둔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낚시로 잡기가 매우 쉽다. 겨울에는 갯벌을 파서 겨울잠을 잔다. 자기 어미를 먹기 때문에 무조어(無祖魚)라고 불렸다'고 소개했다.
 
초가을이 제출인 문절망둥이.
 초가을이 제출인 문절망둥이.
ⓒ 국립수산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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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따라 뛴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망둥이는 바닷가나 어물전에서 대접을 못 받던 어종이다. 요즘은 양식을 안 하는 어종이 고급 어종이 됐다. 신안에서는 망둥이를 운저리라고 한다. 막걸리 식초로 만든 초고추장과 익은 열무김치 또는 묵은지에 비며 보리밥과 함께 먹는 운저리 비빔밥, 된장과 깻잎에 싸먹는 운저리회는 이 지방에서 알아주는 별미다.

망둥이 요리중 으뜸은 초무침. 망둥이는 지방이 적고 담백하여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낙지 냉연포탕>
하의도 장산도 신의도 사람들은 뜨거운 연포탕이 아니라 냉연포탕을 즐긴다. 차가운 국물에 삶은 낙지와 채소를 곁들인 요리다. 하의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냉연포탕을 먹는다. 타관에서는 겨울에 국물을 조금 따뜻하게 덥혀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의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냉연포탕을 즐긴다.
 하의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냉연포탕을 즐긴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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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는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제거한 후 밀가루나 소금으로 문질러 2~3번 씻어 이물질이나 잡냄새를 제거한다. 끓는 물에 낙지를 살짝 데친다. 여름철에는 낙지 삶은 물을 식혀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냉연포 양념장에 낙지 삶은 물을 섞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배 당근 양파 오이는 얇게 썬다. 적당히 자른 낙지에 야채를 섞고 차거운 국물을 붓는다. 식초와 마늘 풋고추 참깨로 양념을 한다.

<거북손방풍초무침>
거북손과 갯가에 나는 방풍나물을 버무린 요리다. 방풍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거나 각종 요리재료로 이용한다. 절벽에 붙어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거북손에 관해서는 영산도 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파도가 때리는 절벽에 붙어 사는 거북손.
 파도가 때리는 절벽에 붙어 사는 거북손.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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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서 자라는 방풍나물.
 갯가에서 자라는 방풍나물.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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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막걸리 식초, 다진 마늘, 매실청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방풍나물은 굵은 줄기를 잘라서 손질한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방풍나물을 데친 후 거북손을 데친다. 데친 거북손은 아래쪽을 비틀어 살만 발라낸다. 당근 양파 대파는 채를 썰고 청양고추는 어슷하게 썬다. 방풍나물과 거북손, 채소를 섞고 양념장을 넣어 무친다.

<칠게>
칠게는 십각목 달랑겟과 갑각류로 주로 하구 근처의 부드러운 진흙 바닥에 직경 1 cm 정도의 경사진 타원형 구멍을 파고 서식한다. <자산어보>에는 '집게발이 강해서 물리면 매우 아프다. 민첩하고 잘 달리며 항상 모래에 살면서 굴을 만든다'라고 했다. 집게가 큰 것이 수게, 작은 것이 암게다.

칠게는 낙지가 좋아하는 특식이다. 낙지 주낙에 싱싱한 칠게를 이용할수록 많은 낙지를 잡을 수 있다.

칠게는 크기가 작아 보통 튀김, 게장, 볶음요리 등으로 통째 먹는다. 신안 갯벌에서 서식하는 칠게는 맛이 뛰어나다. 칠게장은 밥도둑이다. 예전 장산도 사람들이 가장 즐기던 반찬은 '기젓국'이다. 기젓국은 좋은 펄에서 나온 칠게로 담은 칠게젓을 말한다.
 
고소하고 바삭한 칠게 튀김.
 고소하고 바삭한 칠게 튀김.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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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젓국 담그는 법은 다음과 같다 칠게 배 딱지를 떼어내고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준다. 양파 청양고추 마늘을 작은 크기로 썬다. 믹서기에 채소와 고춧가루, 생강즙, 멸치액젓, 설탕을 넣고 간다. 갈린 양념에 칠게를 넣고 다시 갈아준다. 천일염을 넣고 숙성시킨다.

수산물 전시회에 가보면 어디서나 칠게 튀김이 인기를 끈다. 요리법의 첫 순서는 칠게를 이물질이 없도록 깨끗이 씻는 것. 씻은 칠게를 체에 내려 물기를 제거한다. 칠게에 전분 가루를 골고루 뿌린다. 식용유는 170℃까지 온도를 높인 다음 전분 가루를 묻힌 칠게를 넣고 튀긴다. 튀길 때 색이 나기 전에 한 번 건져 공기와 닿게 한 뒤 다시 한 번 튀겨 준다. 마지막 마무리로 초간장에 청양초를 썰어 넣는다.

칠게에 풍부한 오메가-3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고 항염 작용을 하여 뇌를 건강하게 한다. 칠게는 키토산 덩어리다. 기젓국은 키토산이 많이 함유된 껍질을 단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능산도에서는 기젓국을 보리밥에 비벼 먹는 것이 별미. 보리밥에 양념한 기젓국을 올리고 시금치나 숙주나물 등을 곁들여서 비빈다. 오이냉국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있다. 칠게 된장국과 칠게 무침도 먹어보시라. 천사섬의 진미다. 

<바위옷 묵>
바위옷은 풀가사리과의 바닷말로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조간대(潮間帶) 상부 바위 위에서 자란다. 간조 때 드러나는 바위 위에 마치 옷을 입힌 것처럼 보여 바위옷이라고 부른다. 다 자라면 5~10 mm 정도인 다갈색의 해조류로 수저나 전복 껍데기 등으로 긁어 채취한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위 위에 자라는 바위옷.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위 위에 자라는 바위옷.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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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놓는 바위옷묵.
 신안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놓는 바위옷묵.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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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서는 바위옷을 불리고 끓여서 굳힌 묵으로 만들어 먹는다. 다른 묵과는 달리 씹히는 식감이 쫄깃하고 단단하며 진한 바다 향기가 입안에 오래 머무른다. 우무나 도토리묵에 비해 단단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열량은 높지 않으면서 부피가 비교적 크고, 식이 섬유소 함량이 높아 포만감을 주므로 겨울철에 열량을 과잉 섭취해 살이 찌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신안에서는 귀한 손님이 왔거나 명절에만 하는 요리다. 수확량이 너무 적고 채취하는 데에 일손이 많이 들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신안군 바위옷 묵은 국제 슬로우푸드협회가 선정하는 '맛의 방주'에 2017년 등재됐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강성국 김경휘 양동휘 노선미, <신안군 섬음식 백서>, J&H, 2022
강제윤, <전라도 섬맛 기행>, 21세기북스, 2019
김준, <바다맛 기행>, 1,2,3, 자연과 생태, 2013, 2015, 2018


태그:#신안천사섬, #남도음식, #섬음식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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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탐사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두해 연속 수상했다. 저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항쟁'은 언론 지망생들의 필독서 반열에 들었다.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황호택이 만난 사람을 5년 5개월동안 연재하고 인터뷰 집을 7권 펴냈다. 동아일보 논설주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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