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석열 대통령이 부활절인 31일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2024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축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활절인 31일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2024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축하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3월 31일 오후,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명성교회에서 있었다. 예배 말미에 사회자는 "이 시간 윤석열 대통령께서 나오셔서 축하 인사를 해 주시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약 5분간 이어진 인사말에서 "저와 정부는 국민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서 국민의 작은 목소리도 귀기울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청중은 박수를 쳤다. 

이어 윤 대통령은 "저와 우리 정부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일어서실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이 분들께 힘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박수가 터졌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갈라디아서 5장 1절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다음의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읽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윤 대통령의 이 성구 낭독에 청중은 우렁차게 "아멘"하였다. "아멘"은 "참으로 그렇다"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상대방 말에 동의를 표할 때 쓰인다. 윤 대통령의 축하 인사는 겉보기에는 무난해 보인다. 우려하였던 실언이나 총선 관련 발언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유언?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이승만 대통령의 유언'이라 언급한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사도 바울'이 남긴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인용'하여 유언하였다면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 거라고 말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자체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한 트집이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공석에서 사실 관계를 정확히 말해야 한다. 갈라디아서를 쓴 '사도 바울'은 언급하지 않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들먹이니 앞뒤가 바뀌었다. 윤 대통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거야 자유이지만, 축사 시간에 성구를 읽었다면 적어도 그게 누구의 글인지는 알고서 말하기 바란다.

윤 대통령이 부활절 축하 인사에서 굳이 왜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낭독한 건지 정확히 알 순 없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의 유언'이란 말과, 갈라디아서 5장 1절이 '자유'를 강조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은 간다.

윤 대통령에게는 다가오는 4.10 총선이 "자유대한민국"대 "공산전체주의세력"의 대결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현 정권의 '이승만 전 대통령 띄우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억지스런 성구 인용

이승만 전 대통령은 왜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인용하여 '유언'하였을까? 그는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맞이한 뒤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이 전 대통령은 다시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종살이'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인용해 유언하였을 거다. 그 충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말한 '자유'와 '종살이의 멍에'는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고 지배당하는 거와는 별 상관이 없다. 이 전 대통령이 한국의 독립 국가 유지를 바라는 뜻에서 이 성구를 인용해 유언한 거라면 본문 문맥과 상관없이 자신의 바람을 뒷받침하고자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끌어다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과 죄의 종살이하던 삶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고 본다.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강요하는 할례를 비롯한 각종 유대 절기와 정결 규정 따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면서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맥락은 무시한 채, 자신의 특정한 주장이나 이념을 뒷받침하고자 성구를 끌어다 쓰는 건 왜곡이자 억지이다. 

백보 양보하여 윤 대통령 의도 대로 '공산전체주의세력'의 위협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라는 뜻으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이해 한다고 해도 문제이다. 솔직히 말하자. 현재 이 나라의 '자유'를 누가 망가뜨리고 억압하는가? 실체도 모호한 '공산전체주의세력'인가? 아니다.

윤 정권이야말로 방송 장악으로 언론 자유를 심히 침해하고 국민의 성난 목소리를 소위 '입틀막'으로 억압하는 상황이다. 국회가 합법적 절차를 거쳐 발의한 주요 법안마저 번번이 '거부권 행사'로 무산시킴으로써 국회를 대놓고 무시한다.

지금 국민들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윤 정권 집권 2년 내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줄곧 60% 이상에 달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성구를 인용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며 '자유'를 역설하니 어이없다. 
  
타락한 말들
 
윤석열 대통령이 부활절인 31일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2024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성경책을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활절인 31일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2024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성경책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소설가 이청준은 "말을 타락시킨 주범들"로 "권력이나 재물, 명예 따위의 개인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과 나라의 미래 아니면 민주주의와 지유와 같은 압도적 대의명분을 입에 물고 다니는 정치인, 교육가, 재벌, 사업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꼽았다. 물론 그 주범 중에는 "제 육신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영혼의 양식을 외쳐대는 신앙인이나 거짓 계율주의자들"도 포함돼 있다. 

'자유'와 '해방' 또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 말은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칫 '빈 말'이나 '선동 문구'가 되고 만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적절한 그 주인을 벗어나면 '오염'되거나 '타락'하고 만다. 우린 지난 세월 그런 사례를 무수히 보았다.

무고한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찬탈한 자가 '정의 사회 구현'을 내세웠다. 전두환과 함께 군사 정변을 주도한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모든 사회 악을 조폭에게 돌렸다. 이런 야만의 시절이 여태 이어지는 거 같아 마음 착잡하다. 

태그:#이승만대통령, #윤석열대통령, #부활절연합예배, #갈라디아서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