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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 열풍'이 분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지난 10년 동안 제주를 떠난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진짜 삶이 궁금해 직접 인터뷰에 나섰다.[기자말]
내게 제주로의 이주는 일종의 도피였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사회로부터의 도피, 내가 멀어지고 싶은 사람으로부터의 도피. 국내지만 배나 비행기를 타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은 자유와 고립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은 번갈아 찾아왔고, 숨은 턱 막히다가도 어느 순간 탁 트였다. 그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십여 년 전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그저 순수하게 제주가 좋아서 온 사람도 있다. 운명처럼 제주와 사랑에 빠져 거주지를 옮긴 이들에게 지난 십 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운명처럼 제주로 이주한 뒤 지난 십 년간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가 있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청소년지도사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를 거쳐 MBTI 및 진로 전문강사 일을 하고 있는 최혜린(37)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혜린씨가 산책길에 환하게 웃고 있다.
 최혜린씨가 산책길에 환하게 웃고 있다.
ⓒ 최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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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십 년 전 제주에 왜 오셨는지 궁금해요.

"2013년도에 제가 무척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낮에는 회사 다니고 저녁에는 대학원을 다녔거든요. 추석 연휴 때 쉴 겸 혼자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에 오게 됐는데, 그때 묵었던 한 숙소에서 자연도 느끼고 글씨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주인분이 밥도 차려주시고 되게 잘해주셨어요. 감사해서 제 글씨로 명함을 만들어 드렸더니 평생 숙소를 이용해도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계기가 돼서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를 왔어요.

당시 묵었던 숙소 중에 또 한 주인분은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분이었어요. 한 번 참여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그 분의 권유로 플리마켓과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제주에서 글씨로 돈을 버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제주를 자주 오가다가 제가 하던 청소년지도사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마침 제주에 났고, 합격을 해서 이주를 하게 됐어요."

- 제주와 인연이 닿은 느낌이에요. 당시에는 청소년지도사 일을 하셨는데, 캘리그라피는 취미로 하다 직업이 된 건가요?

"서예가의 꿈이 있으셨던 아빠의 권유로 어렸을 때 7년 동안 서예를 배웠어요. 당시에는 한창 친구들이랑 놀 때라 서예학원을 가는 게 좀 지루하기도 했어요. 벼루에 물을 부어서 먹물을 만드는 데만 40~50분이 걸리니까요.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만뒀지만, 글씨 쓰는 일 자체는 즐겼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서기를 꼭 했었고, 다양한 펜으로 글씨 쓰고 꾸미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글씨 쓰는 게 취미가 됐고, 페이스북에 좋은 글을 제 글씨로 적어 올리는 페이지를 운영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게 이어져서 나중에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는 발판이 됐죠."

- 재주가 많으신 것 같아요. 십 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어디어디에 사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일 처음엔 직장과 가까운 제주시내에 살았고요. 결혼 후엔 서귀포 남원 위미에서 지냈어요. 하귀 애월에도 살았고, 제주시 화북동, 서귀포시 호근동, 서귀포시 서홍동, 지금 살고 있는 제주시 건입동까지. 나열해 보니 정말 이사를 많이 다녔네요.(웃음)"

- 저는 제주 한 곳에만 살아봐서 다양한 경험이 정말 부러워요. 여러 지역에서 살아보니 어떤가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나요?

"서귀포니아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주에서도 서귀포는 햇살이 달라요. 정말 온화하고 거기서 바라보는 한라산도 아름다워요. 남향이 바다이기 때문에 오는 만족감이 크고 11월에도 따뜻해서 반팔을 입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공항이 너무 멀어서 오가는 게 힘들어요. 코로나 때 마침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이사를 갔는데, 약간 고립돼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주시내는 일단 공항이랑 가까워서 편리해요. 제가 육지에 자주 다니기 때문에 공항 가까이에 사는 게 좋더라고요. 지금 집은 공항과도 가깝고 남향이고 바다도 보여서 무척 만족스러워요. 지금은 저랑 남편 모두 만족하며 지내고 있어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저희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곳을 찾은 것 같아요."

- 청소년지도사로 일하다가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시고, 지금은 MBTI와 진로 전문강사로 일하고 계세요. 십 년 사이 직업을 세 번이나 바꾸셨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한 것 같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옷만 바꿔 입었을 뿐 결이 비슷한 일을 해온 것 같아요. 저는 원래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을 좋아했어요. 캘리그라피 일을 할 때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마음을 전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지금은 성격유형검사인 MBTI 정식 검사와 해석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STRONG이라는 직업흥미검사도 같이 해서 개인의 역량 강화를 돕는 일을 해요. 기업체에 MBTI를 매개로 소통이나 리더십 강의를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친구들 간 소통이나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을 돕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 MBTI가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유행이었잖아요. 지금은 일상 언어에도 MBTI가 등장할 정도로 토착화된 느낌이 들어요. 혜린씨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기 위해 MBTI를 선택한 느낌이 드는데, 왜 MBTI였을까요?

"제가 청소년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때 청소년 심리 상담으로 MBTI를 처음 접했어요.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무척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 갑자기 유행을 하더라고요. 근데 떠도는 정보가 제가 아는 MBTI가 아닌 거예요. 진정성도 없고 진짜 내용도 아닌, 겉핥기식 재미로만 나열된 정보들이 떠도는 걸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제대로 된 검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 자격을 갖추려고 강의를 들었어요. 듣다 보니 예전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게 떠올랐고, 배우다 보니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가짜 정보가 아니라 진짜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MBTI는 도구거든요. 관련 책자나 검사지에도 자기 탐색을 돕는 하나의 도구라고 쓰여 있어요.

도구는 칼처럼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해가 돼요. 유행에 휩쓸려서 잘못된 정보가 나도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하다 보니 전문 강사 과정까지 하게 됐어요. 제가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MBTI뿐만 아니라 STRONG, 에니어그램, 골든 성격 유형 검사 등 다른 심리 검사 자격도 갖추게 됐어요."

-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의 어떤 점이 잘못 됐다는 걸까요?

"MBTI는 사람을 유형으로 나눈 게 아니라, 성격의 특징을 유형으로 나눈 거예요. 예를 들어 색깔이 무수히 다양하지만 크레파스는 주로 12색이나 24색을 쓰듯이, 성격을 범주화해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예를 들어 분홍이 있다면 초록보다는 빨강에 더 가까운 색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이걸 알면 소통에 도움이 많이 돼요. 예를 들어 T와 F를 단지 공감 능력의 차이로 아는 분이 많은데, T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과 진실을 중점으로 판단을 하고, F는 사람과의 관계로 결정 내리는 걸 선호하는 유형이거든요. 서로 중요한 게 다르다는 걸 알면 의사소통이 원활해져요. 나랑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죠.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검사는 정식 검사도 아니고, 정보도 평면적이에요. 정식 검사 결과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와요. 진짜를 알리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절감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정보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종종 제가 하는 일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 내가 하는 일이 미미하게 느껴지면 동기부여가 잘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혜린씨는 무척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그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강의를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나서 MBTI 이야기를 하면,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진짜 정보가 생소한 거죠. 그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진짜를 이야기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반응들이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정식 검사의 경우 검사 전에 OT가 필요하거든요. OT에서 듣는 설명만으로도 자신을 탐색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평소 하지 않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 검사의 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알릴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사람들이 유용한 도구를 이용해서 나를 알고,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최혜린씨가 근사한 제주 자연을 사진에 담고 있다.
 최혜린씨가 근사한 제주 자연을 사진에 담고 있다.
ⓒ 최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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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보기 드문 사람을 만난 느낌이에요. 계속 부딪히고 도전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데,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도 진실한 사람이고 싶어요. 내가 하는 일에도 진심을 담아서 하고 싶고요. 그게 안 되는 순간이 오면 현실이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럴 때면 두렵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남편과 부모님 덕분이에요. 제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사실 누가 반대하면 하지 못할 텐데, 응원해 주실 때가 더 많거든요. 제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했을 때 집에 전화를 했더니 파티하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작은 일도 부모님과 공유하며 살았어요. 그때마다 늘 응원해 주고 기뻐해 주는 부모님이 계셔서 많은 힘이 된 것 같아요. 여전히 지지를 받으며 살고 있구나 느껴요. 물론 저도 욕 먹기 싫고 오해받기 싫은 마음도 있지만, 제게 소중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제가 어떤 삶을 살아도 이해해 주거든요. 그게 참 고마운 것 같아요."

- 제주에서도 일을 하지만, 육지에도 강의를 다닌다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이주를 고민할 것 같아요.

"육지로 다니는 건 한 번씩 여행 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충분히 즐기면서 다니고 있고요. 일 때문이라기보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과 더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 때 부모님이 워낙 조심하는 성격이셔서 거의 뵙지를 못했거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왜 제주에 있지?' 당장 이주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할 수 있다면 부모님과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고 싶어요.(웃음)"

-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다시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제주행을 택하시겠나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제주로 올 것 같아요. 아마 그때의 나라면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제주로 오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은 있어요. 제주로 오면서 결국 대학원을 졸업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다시 대학원도 다니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건 여러 방식으로 가능한데, 지금은 MBTI를 도구로 하고 있지만, 도구가 달라질 수도 있고 방법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속적으로 공부하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려고요."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다. 사랑을 양껏 받았던 기억, 필요할 때 늘 곁에 함께 한 기억, 결정적인 순간에 지지받았던 기억. 사랑받은 기억의 힘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 기억 역시 평생 한 사람을 옭아맨다.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도 혜린씨가 힘 있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랑의 힘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타인의 성장을 돕는 혜린씨를 보며, 안으로 스며든 사랑이 결국 공동체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마주한다. 결국 사랑만이 세상을 이롭게 할 거라는 믿음이 싹트는 오월이다.

태그:#제주도, #제주이주민, #인터뷰, #제주이민, #제주이민10년차들을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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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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