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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원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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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을 겪었더라도 누구나 고통을 똑같은 형태로 공유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같은 조건에서도 의지를 갖고 일어서 행동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자포자기 상태를 헤어 나올 방법 자체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살아온 과정과 삶의 방식이나 형태에 따라 개개인이 자리한 위치는 얼마간씩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국민성금이나 정부의 지원금 외에도 친인척과 살아오며 맺은 다양한 인연들로부터의 따뜻한 손길이 고난을 극복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모든 인연이 같은 형태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기에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헤쳐나가야 될 경우가 많다. 성실함과 고난에 함께 힘을 나눌 인연을 맺는 건 별개의 조건인 까닭이다.
   
강원도 산불 4월 4일 온 마을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도 가을은 깊었다.ⓒ 정덕수
소나무와 건축 중인 주택 산불이 휩쓴 성천리의 도로변엔 불에 그슬린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치료를 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기초공사를 마치고 목조주택을 시공하는 주택공사 현장은 그나마 안정을 찾아가는 주민의 삶을 만난 듯 반갑다.ⓒ 정덕수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월 4일 오후 7시 무렵, 원암리 미시령도로 근처에서 시작된 산불은 백두대간에서 동해로 내리 부는 강원도 특유의 봄철 강풍을 타고 엄청난 피해를 발생하게 했다.
 
자정을 넘기자 바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이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방향과 속초시 영랑동 지역에서 불길을 잡기 시작하는 현장을 확인한 후 기사를 송고했다.
 
날이 밝은 뒤 영랑호 근방을 둘러봤다. 자정 무렵 취재했던 화재 현장을 다시 찾아 잔불 정리를 하는 모습을 확인했고, 이틀 뒤 성천초등학교와 성천리 등을 찾아 이재민들을 둘러봤다.
 
그 뒤로도 주기적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이재민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들었다. 이구동성으로 피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 불만을 토로했다. 가장 난감한 사연은 세입자들에겐 제대로 된 보상 자체가 불가능하단 얘기다. (관련기사 : "우리는 세입자라서... 이게 무슨 개소리야" http://omn.kr/1jxfn)

피해복구는 고사... 세입자는 빈손으로 내몰릴 처지
    
무아갤러리 4월 4일 발생한 고성산불로 평생을 바쳐 일구어 온 삶의 터전과 작업한 작품 등 막대한 피해를 본 황경애 작가가 운영하던 무아갤러리의 전면엔 ‘본 건물은 산불화재로 소실된 건물입니다. 안전상 출입을 통제하오니 관계자 이외의 접근을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출입으로 인하여 받은 피해에 대해서 당사에서는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SHINSEGAE YOUNGRANGHO RESORT란 안내문이 걸려있다.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의 관계자 외엔 갤러리를 직접 운영한 황경애 작가도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고나 다름없는 안내문이다.ⓒ 정덕수
   
불에 탄 작품 4월 4일 밤, 황경애 작가가 운영하던 신셰계 영랑호 리조트 내의 무아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던 많은 작품들 가운덴 이와 같은 청동이나 브론즈, 또는 도자기와 같은 작품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라 하더라도 강한 화염 앞엔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정덕수
   
황경애 작가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 내에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건물 하나를 리조트 측과 이해관계가 맞아 갤러리로 탈바꿈시켜 운영하던 도중, 방치됐던 건물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게 되며 처음 "우리(리조트)야 그 건물이 골치인데 갤러리로 운영하면 좋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잘 운영하란" 얘기와 달라졌다고 한다. 갤러리 일부를 나눠 황경애 작가는 작업실로 이용했는데 이번 산불로 작업실에 있던 작품과 화구까지 모두 잃었다.ⓒ 정덕수
 
황경애 작가는 속초 영랑호리조트의 무아갤러리와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작업실 그리고 동해안을 찾는 지인들과 이용하던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민가까지 총 3곳의 미술 관련 사업장이 전소되는 피해를 봤다. 현재 그는 세 곳 모두를 임대로 사용했던 탓에 피해복구는 고사하고 무아갤러리의 경우 빈손으로 밀려날 처지다.
  
속초시 영랑호 근처에 거주하는 홍순경씨는 전소된 주택을 철거하고 비교적 빠르게 재건축을 해 입주를 목전에 둔 상태다. 홍씨는 "그나마 직접 건축업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초기에 정부가 6천만 원을 보상금으로 준다고 했다가 성금까지 합해서 1억 원을 피해보상금으로 줘 자비를 보태 건축을 했어요"라고 하면서도 "화재에 책임이 있는 한전에서는 총 피해액의 15%만 보상금으로 주겠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한전에서 주겠다는 피해액의 15% 보상금은 정부에서 지급한 국민 성금을 포함한 피해보상금과는 별개의 내용이다. 이재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이다.

홍씨의 발언처럼 현재 이재민들은 '산불이 발생하게 한 원인 제공자인 한전이 국민들이 낸 성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피해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상태다. 몇몇 이재민들은 수일 내로 다시 서울 한전 본사를 찾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화재에 한 번, 오보에 또 한 번 눈물 흘린 이재민
  
피해복구 4월 4일 발생한 고성산불 이후 4월 11일 기사로 낸 불에 탄 오토바이와 경운기, 그리고 주택이 바로 이곳 홍순경 씨의 집으로 개는 빈집을 지키도록 나중에 데려다 묶었고 먹이를 매일 방문해 준다고 했다. 마무리 작업을 하는 홍순경 씨 주택은 시멘트 냄새가 모두 빠지면 입주를 할 예정이라 했다.ⓒ 정덕수

이날 홍씨는 일부 언론에 보도된 '목줄도 풀어주지 않아 화마 피하지 못한 강아지 사진'이란 기사로 가족들이 겪은 고통도 얘기했다.(관련 기사: 목줄에 묶여 화마 못 피한 강아지? 오보에 두 번 운 산불 이재민 http://omn.kr/1iww5)
 
그는 "기자란 사람들이 현장을 와 보지도 않고 기사를 쓴다는 사실도 이번 산불로 알았어요. '목줄도 풀어주지 않아 화마 피하지 못한 강아지 사진'이란 기사로 곤욕을 치렀는데 그게 사실과 다르거든요"라며 당시 겪은 고통을 떠올렸다.

이어 "정말 별 이상한 말을 다 들었어요. 정정 보도가 나가긴 했지만 잘못된 기사 하나로 피해를 봐 힘들었어요. 불길이 다가오자 개 줄을 풀어 피하도록 했고 날이 밝아 다시 돌아온 개를 묶었는데, 돌아다니며 묻은 오물을 목줄에 묶여 있어 피하지 못해 그을린 거로 기사가 나간 거예요"라며 일부 언론사의 오보를 지적했다.

마무리 단계인 집을 돌아보고 언제 입주를 하는지 묻자 홍씨는 "집 공사는 다 됐는데 아직 지금 머무는 곳에서 기간도 남아 있고, 시멘트 냄새 좀 빠지면 입주를 할 예정"이라며 "다른 볼일이 있어 나가야 하니 편하게 둘러보세요"라고 말한 후 차를 운전해 나갔다.
 
성천리 풍경 4월 4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미시령 국도변에서 발생한 산불은 곧장 성천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성천마을에도 가을은 깊어 논은 이미 나락을 모두 거두고, 소를 키울 볏짚은 발효과정을 거치기 위해 포장을 마친 상태다. 불에 탄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나 가을빛과 어우러져 지난 봄의 악몽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정덕수
 
그동안 몇 번에 걸쳐 현장을 방문해 들었던 한전과의 논란에 대해 이재민들의 입장만으로는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보상을 받았는지 아니면 보상 자체가 아직 협상이 되지 않아 미루어졌는지도 모호한 상태다.
 
더구나 산불피해 이재민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 "한가위를 앞두고 한전이 15%를 지급하고 지난 10월 10일 이후 다시 추가로 15%를 지급"했다는 다소 애매한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서 일부에서는 "이재민들이 한전으로부터 30%의 보상을 받았다는데 아직도 부족하냐"는 말을 한다.
  
이에 대해 노정현 고성산불피해비상대책위 위원장은 "추석 전에는 고성군 이재민들에게 총 피해액의 15%를 지급했고 추석이 지난 뒤 손해사정조사가 늦어진 속초지역 이재민들에게 15%를 지불했다"라면서 "모든 이재민이 15% 보상금을 받은 게 아니다. 상당수 이재민은 도저히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노 위원장은 "이는 피해 주민들이 전면적으로 합의를 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11월 18일 5차 협상을 위해 한전 본사를 방문한다"고 답했다.

'이재민들이 수일 내로 한전 본사를 찾아가 항의시위를 할 예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항의시위가 아닌 협상을 위해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재 원인 제공한 한전의 외면, 이재민은 외로운 싸움중 
  
피해복구 양봉업을 하는 박달원 씨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을 산불로 잃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으나 벽의 단열재가 모두 녹아 어쩔 수 없이 집을 헐어내고 새로 지어 방에 온돌을 깔고 시멘트로 일차 미장을 한 상태로 한 잘 정도 뒤엔 입주를 할 수 있다.ⓒ 정덕수
 
최초 발화지점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성천리에서 양봉업을 하는 박달원(83세)씨의 경우엔 적게라도 화재보험을 들어 둔 덕에 성금을 포함한 보상금을 합해 단열재가 모두 녹아 불가피하게 지은 지 얼마 안 된 주택을 철거하고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박씨는 올해 꿀을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벌을 30여 통 구입해 다시 양봉업을 시작했으나 이미 봄꽃 철이 끝난 뒤였고, 한전을 상대로 이웃들과 함께 힘겨운 투쟁을 하다 보니 제대로 벌을 돌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대청봉엔 희끗희끗한 잔설이 찾아왔다. 겨울이 목전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요즘, 박씨가 집을 짓다 중도에 공사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작업을 중지한 사연과 함께 하소연해 온다.

"취재해 가면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나요? 그러지 말고 어떻게 국민 성금을 개인이 직접 받거나 아니면 계좌번호를 하나 만들어 모금할 수 있게 알리는 방법은 없나요?"
 
오죽 답답하면 이런 말을 할까 싶다.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이번 산불을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알리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런 대답을 할 때만큼 난감하고 어려운 노릇도 없다.
모든 이재민이 어떻게든 빠른 복구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오해가 발생해 불편해지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깊은 밤은 오히려 평온하다. 해 질 무렵 저 멀리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스멀거리는 때가 오히려 더 심란한 법이다.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은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심란하고 막막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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