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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대전 국립묘지 내 김창룡 묘 이전 요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지고 있다.

현충일인 6일 오전 10시 30분. 대전시 유성구 갑동 대전 국립묘지 정문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민주주의민족통일 대전충남연합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1백여 명이 모여 김창룡 묘지 이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 시민사회단체는 김창룡(1920-1956) 묘가 대전 국립묘지 장군묘역으로 이장된 98년 이후부터 매년 묘지 이전을 촉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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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2개 단체에서 시작된 묘지 이장 요구는 이날 시위에서는 10개 단체로 늘어나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높은 관심도를 짐작하게 했다.

이들은 이날 낭독한 성명서를 통해 "일본의 관동군 헌병대에서 밀정으로 있으면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해방 후에는 양민학살에 앞장 선 친일 민족반역자 김창룡의 묘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현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김창룡 묘 근처 애국지사 묘역에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여사와 장남 김인 선생의 묘가 안장돼 있다"며 "김구 선생의 살해를 사주한 친일민족반역자 김창룡의 묘를 파내라"고 촉구했다.

현충원을 찾은 참배객들도 김창룡 묘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사실에 크게 놀라며 시위대열에 박수를 보내는 등 높은 반응을 보였다.

서울에서 유공자 묘역에 참배하기 위해 왔다는 이모씨(61)는 "대전 현충원에 김창룡 묘가 있는 게 사실이냐"며 "국립묘지를 더럽혀도 분수가 있지 어떻게 애국지사를 탄압한 김창룡이가 이곳에 묻힐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 1시간 30여분동안 현충원을 찾는 참배객들을 상대로 김창룡의 묘 이장 필요성에 대한 홍보활동과 시위를 벌였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여인철 지부장(48)은 "민족반역자들은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김창룡을 비롯 12,12 핵심인물중 한 사람이였던 유학성의 묘 등이 국립묘지를 떠날때 까지 가능한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창룡의 묘는 국군기무사령부 주관으로 98년 2월 대전 국립묘지 장군묘역으로 이장됐는데 수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1856-1939) 여사와 백범의 큰 아들 김인(1918-1945) 선생이 안장돼 있다.

김창룡 전 특무부대장은 함경남도 영흥 태생으로, 일제시대 관동군 헌병대 정보원,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원,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 육군특무부대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 1992년 안두희가 김구 선생 암살때 '실질적 지령'을 내린 인물로 지목됐었다.

한편 김종필 자민련 총재(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2과 근무)는 2000년 1월, '대전형무소 학살사건'을 공론화시킨 재미동포 이도영 박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전쟁 당시 양민학살은) 전부 김창룡(당시 육본본부 정보국 4과장)이 한 것이다"고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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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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