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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그룹 총수일가 등이 지난 99년 이후 계열사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18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LG본사.
ⓒ 유창재
"솔직히 (주식)시장이 아무리 맥을 못춰도 돈벌 수 있는 사람은 다 번다. 아니 그 걸 어떻게 하나. 총수나 사장, 이사들만큼 회사 내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부당내부거래라고 해도 다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는데..."(A증권 정 아무개 컨설턴트)

지난 9일 주식시장이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을 때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재벌 증권사에 근무하는 정 아무개 컨설턴트를 만났다. 최근 주식시장과 재벌 총수들의 내부거래에 대해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사고 파는 것까지 부당내부거래라고 할 수 있나요." 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 공정위 등을 이용해 한번씩 재벌사들을 상대로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과징금을 부과하지만 나중에 가면 재벌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별다른 근거없이 '재벌 옥죄기'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인이나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식을 터무니없는 값에 사고 팔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는 엄연히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된다. 특히 이들에 대한 지원은 기업과 선량한 투자자에 손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또 기업 내부정보를 속속들이 접할 수 있는 위치의 총수가 자신의 주식을 거래하면서 거액의 시세차익을 누리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수그러들었던 재벌 총수들의 부당내부거래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소송사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참여연대는 "LG그룹의 구본무 회장 등 구씨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사들인 후에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되파는 수법 등으로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면서 "소액주주를 모아 800억원대의 대표소송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지난해 제일은행과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얻은 바 있는 참여연대가 이번 LG그룹에 대한 소송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LG석유화학 주식만 집중 거래... 구씨와 허씨 일가 천억원대 시세차익

▲ 기업들의 내부자거래를 제공하고 있는 아이스코어의 거래현황 화면.
ⓒ 아이스코어
그렇다면 LG그룹 총수 일가들은 주식을 사고 팔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부자의 주식거래 정보를 제공하는 아이스코어(www.iscore.co.kr)가 최근 내놓은 내부자거래 시세현황 내용을 보면, LG그룹 총수 일가의 시세 차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올 1월부터 지난 9월 30일까지 지난 9개월 동안 가장 많은 돈을 번 내부자는 LG필립스LCD의 구본준 사장. 그는 LG석유화학 주식을 팔아 457억원, LG마이크론을 팔아 8억원 등 모두 465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구본준 사장 뿐만 아니다. 허창수 LG건설 회장도 LG석유화학과 LG마이크론, LG전선 등을 팔아 221억원을 벌어들였다. 이어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LG석유화학과 LG마이크론을 팔아 141억원을 벌었고, 허명수 LG건설 상무 역시 석유화학을 팔아 91억원을 시세 차익을 올렸다. 허승조 LG백화점 사장도 마찬가지로 석유화학 주식을 팔아 87억원을 벌었다.

내부자 거래 시세 차익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LG그룹 총수 일가들이 차지했다. 이어 15위 안에 들어 있는 내부자들 가운데 8명이 LG그룹 관계인들이고, 100위 안에 든 내부자들 가운데 LG그룹 내부자들은 무려 25명이나 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 것은 LG석유화학 주식이다. 이들 LG그룹 총수 일가들은 올 들어 끊임없이 LG 석유화학 주식을 내다팔았다. 이어서 LGEI와 마이크론 등의 주식을 팔아치운 그룹 관계인들은 한마디로 돈방석에 올라 앉았다.

3배 이상의 시세차익에 그룹 경영권도 장악

이들 LG그룹 총수일가들이 내다판 석유화학 주식들은 모두 LG화학이 사들였다. 구씨와 허씨 일가들이 막대한 이득을 올린 것은 헐값에 사서 3배 이상 비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같은 과정이 이뤄졌을까. 참여연대가 최근에 밝힌 이같은 먹이사슬 구조는 9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본준 등 LG그룹 총수일가는 지난 99년 6월29일, LG화학으로부터 LG석유화학 주식 2744만주를 주당 5500원에 사들였다. 전체 지분의 70%에 달하는 수치다. 이후 석유화학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됐고, 이들 그룹 내부자들은 지난 9개월 동안 석유화학 주식 1708만주를 주당 1~2만원에 팔아치웠다. 특히 지난 4월 29일에는 LG화학에 632만주를 주당 1만5000원에 팔았다. 3배 이상 시세차익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이같은 방식으로 LG 그룹 총수들이 얻은 시세차익만 1807억원에 달한다고 참여연대쪽은 보고 있다. 주식시장에 올라온 회사들이 의무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공시에 근거에 확인된 액수가 이 정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처분내역이 알려지지 않은 768만주까지 합하면 LG그룹 총수 일가와 화학 사이의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은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LG그룹쪽에서는 그룹이 전자와 화학계열의 지주회사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에서 생긴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LGCI(화학계열)와 LGEI(전자계열)로의 지주회사 주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주회사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해당 회사가 대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였을 뿐, 차익을 주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그룹 총수와 일가들은 이같이 주식을 갈아타면서 엄청난 시세차익과 함께 LGCI, LGEI 등 그룹 계열사의 지주회사에 대한 경영권까지 장악하게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액주주들 안중에 없고, 총수들 이익챙기기 급급

무엇보다 LG 계열사와 총수 일가 사이의 이같은 부당한 거래는 회사의 손해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이는 다시 소액주주를 포함한 다수의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지적이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이같은 주식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결정한 이사회 임원들과 해당 총수일가를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을 세우고, 주주들을 모집하고 있다.

소송의 피고로는 구본무 LG그룹회장과 강유식 LG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비롯, 99년 6월 LG 석유화학 주식을 헐값에 팔기로 결정한 이사들(허창수, 허동수, 성재갑, 조명재, 이기준, 장종현, 성준희)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한성대 교수) 소장은 "지난 4월 말 LG화학이 총수일가의 석유화학 주식을 다시 사들일 때 주식거래의 부당성을 지적한 바 있다"면서 "총수 일가가 가지고 있는 LGCI 지분 가운데 부당이득분에 대해 무상 소각을 요구했지만 그쪽(LG)에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총수와 계열사간의 이같은 거래에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대주주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것"이라며 "지난번 삼성 주주대표 소송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송을 통해 총수 일가의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쪽에서는 이미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LG그룹의 이같은 거래가 부당내부거래로 판정이 났고, 부당이득을 올린 내용들이 분명한 만큼 주주대표 소송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룹 총수들, 주식평가액 1조원 줄어
유독 LG 구본무 회장만 556억원 이득

올들어 국내 그룹 총수들은 자신들의 회사 주식이나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팔면서 얼마나 이익을 올렸을까. 결론은 LG 그룹을 제외하곤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수십억원 이상 주식 이득을 봤던 총수들이 하반기 들어 주식시장 급락과 함께 손실도 크게 늘었다.

우선, 상장기업 지분정보를 제공하는 에퀴터블(www.equitable.co.kr)이 내놓은 작년 1월부터 올 5월까지 국내 50대 그룹 총수들의 자사주 거래 내용을 보면, 21개 그룹 총수 37명이 자사주 또는 계열사 주식을 거래하면서 이 가운데 22명이 이익을 냈고, 12명은 손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SK주식 646만3911주를 장외에서 사들이면서 129억3000만원의 평가이익을 얻었고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49억6000만원, KCC 정몽진 회장은 24억3000만원, 롯데 신동빈 부회장은 23억6000만원을 차지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총수들의 손실이 크게 늘었다.

재벌 총수 가운데 유독 LG 구본무 회장만 이득

최근 증권거래소가 내놓은 10대그룹 총수 상장주식 평가액을 보면, 이들 그룹 총수의 주식 평가액이 6개월 사이에 1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지난 4일 현재 공기업을 제외한 10대그룹 총수들이 가지고 있는 상장기업 주식 총 평가액은 2조2686억원. 종합주가지수가 가장 높았던 지난 4월18일보다 29.9%(9661억원)가 감소한 액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1조2869억원에서 8896억원으로 가장 많이 감소했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2844억원(7813억원→4969억원), 현대중공업 정몽준 고문은 1375억원(2817억원→1442억원) 줄어들었다.

특히 현대그룹 계열의 손실 폭이 큰 것은 금강산사업 부진, 대선 출마, 대북 지원설 등이 잇따라 나오면서 현대상선 주가가 60.2%, 현대 중공업은 48.8%, 현대종합상사는 43.4%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SK 최태원 회장(1058억원), 한진의 조중훈 회장(331억원), 롯데 신격호 회장(304억원) 순으로 손실이 컸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도 손해를 봤다.

하지만 유독 LG그룹의 구본무 회장만이 1898억원에서 2454억원으로 556억원 이익을 누렸다.

구 회장의 경우 LG카드, LG생명과학 등의 기업들이 새롭게 시장에 상장되면서 보유주식도 852만주에서 1483만주로 늘어났다. 따라서 평가액도 1898억원에서 2454억원으로 2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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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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