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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이 '木月에게'라는 헌사가 붙은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를 박목월에게 보냈다.

        완화삼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 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은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이 시에 대한 화답으로 박목월이 쓴 시가 <나그네>이다.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芝薰

   나그네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용담댐에 있는 <나그네> 시비. 작가를 '조지훈'으로 써 놓았다.
ⓒ 이상훈
이 정도면 시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비는 용담댐 수자원공사 옆 전망대에 있다. 행여 <나그네> 시를 박목월이 아닌 조지훈 작으로 학생들이 잘못 알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수라 생각한다. 아마 <나그네> 시의 앞에 있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芝薰'이라는 도입부 때문에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신경림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서 <완화삼>과 <나그네>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그네> 시 앞에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芝薰 " 한 리드는 이 시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말하자면 <완화삼>의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주조가 <나그네>에서는 "술 익은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로 변조되어 있다.

그밖에도 "구름 흘러 가는/ 물길은 칠백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에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추측한대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서로 주고받은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다만 <완화삼>을 원전으로 한 <나그네>가 훨씬 성공한 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나그네>는 어찌 보면 <완화삼>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구체화한 시요, <완화삼>의 완성이다. 여기에 단순성과 구체성이 요체라는 시의 비밀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속히 시비에서 작자를 박목월로 수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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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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