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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자 회담에 열리기에 앞서 한-미-일 3국은 8월 26일 오후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3자회담을 가졌다. 한국측 수석대표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오른쪽), 미국측 수석대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왼쪽), 일본측 수석대표 야부나카 미토리 외무성 아시아.태평양국장(가운데).
ⓒ 연합뉴스 배재만
"차기 회담 일정이 결정되는 게 기본 목표다."

6자회담에 앞서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29일에 끝난 6자 회담은 '절반의 성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회담 참가국들이 두 서너 달 안에 다음 회담을 갖는다는데 공감대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성과를 거뒀지만, 일정과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불확실성이 남기 때문이다.

이번 베이징 6자회담 1차 회의는 참가국들의 '공동발표문'을 남기지 못했다. 대신 중국 외교부의 왕이 부부장이 회담 마지막 날 기자회견을 통해 '주최국 요약 발표'를 밝힌 것으로 갈음했다.

주요 내용은, (1)대화 지속을 통한 이견 조율 (2)차기 회담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 재개 (3)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 금지 (4)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5)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 (6)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 등 6개 항이다.

여기서 (1)대화 지속을 통한 이견 조율 (2)차기 회담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 재개는 6자 회담의 전과정을 아우르는 원칙으로, 회담 명분과 관련해서는 북한과 미국을 포함해 참가국들이 거부할 수 없는 합의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여겨 볼 것은 (3)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 금지 (4)한반도 비핵화이다. 이 두 가지는 일단 북한이 양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북한이 밝힌 것은 핵 문제 해결 과정에 있어 중요한 전제인 북-미 신뢰 구축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이 약속에 대해 미국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으로서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에 대한 공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이 언급한 것은 중요한 양보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17일, 핵 문제가 불거진 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로 표현되는 핵 폐기 요구에 대하 버텨 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과 연계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점은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 마련에 적잖은 숨통을 틔울 것으로 예상된다.

(5)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 (6)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 역시 중요한 성과다. 이 두 사항은 언뜻 미국의 양보로 보인다. 이제까지 북한이 거듭 요구해온 것이 바로 체제 보장이며,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이 서로의 요구 사항을 포괄적으로 동시에 이행하자고 밝혀온 점에 비쳐보면, 미국이 중대한 양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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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신중하게 볼 부분이 있다. 먼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와 관련해, 미국이 중요한 제안을 내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파월 미 국무장관은 6자회담에 앞서 지난 7일, 북한의 안전을 행정부의 서면으로 보장하고 의회가 이를 결의한다는 제안을 밝혔다.

이른바 '문서 보장' 방식인데, 미국이 이같은 제안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는지가 불분명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국내외 언론 보도로는 그 같은 '문서 보장' 방식의 안전 보장을 약속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이다. 핵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해 북한은 지난 4월의 베이징 3자 회담에 이어 이번 6자 회담에서 '일괄타결 도식'과 '동시 행동 원칙'을 밝혔다.

즉 미국은 ①북-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며, ②북-미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③북-일, 남북 경제협력 실현을 담보하며, ④경수로 제공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을 보상하고, ⑤경수로를 완공하는 대신, 북한은 ①핵 무기를 만들지 않고, ②그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며, ③핵 시설을 궁극적으로 해체하며, ④미사일 시험 발사를 보류하고 수출을 중지한다는 것이 '일괄 타결 도식'이다.

또 '동시 행동 순서'는, ①미국이 중유제공을 재개·인도주의 식량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북한은 핵 계획 포기 의사를 선포하며, ②미국이 불가침조약 체결·전력 손실을 보상하는 시점에 북한은 핵 시설과 핵 물질 동결하고 감시 사찰을 허용하며, ③북-미, 북-일 외교 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북한은 미사일 문제를 타결하며, ④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서 북한은 핵 시설을 해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핵 해결 방안은 '북한의 선 핵포기 후 경제 지원 등 논의'한다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무조건 핵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한 뒤,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며, 이를 철저하게 사찰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북·미의 입장이 맞서 오던 상황이기 때문에 6자 회담 참여국들이 '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에 합의했다는 것은 미국의 기존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지난 29일 '보도'와 어제(30일) 있었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 '회견'을 보면 미국이 실제로 이같은 양보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북한은 오히려 미국이 '선 핵포기' 요구에 미사일과 재래식무기, 인권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를 "한계를 넘어도 너무 넘는 강도적인 요구"(중앙통신)이며 "기존의 '선 핵포기' 주장보다 더 후퇴한 날강도적인 요구 조건"(외무성 대변인)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과 국내외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은 결코 북한을 포함한 6자 회담 참여국들이 공감하고 있는 포괄적 단계적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반대로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2001년 6월 6일 밝힌 대북 정책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고 있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시는 핵과 미사일, 생화학 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WMD)와, 재래식 전력, 인권 등의 문제를 한 묶음으로 풀겠다는 '미국식 포괄 해법'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해결하면 국교 수립과 경제 지원 등 북한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이른바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를 내놓았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 원칙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북한과 다른 참여국들이 고려하고 있는 포괄적 단계적 타결 방안과는 다른 얘기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숱한 문제점 때문에 6자 회담이 당장 결렬 과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은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6자 회담이 각자에게 주는 이해 관계를 외면하기 어렵다. 즉 북·모두 회담 결렬보다는 유지가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1)적어도 6자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의 대북 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외면하기 어렵다. 미국으로서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밀 폭격'이나 '전면전'을 흘리며 위협하기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또 회담의 지속에 따라 핵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는 무마할 수 있다. 이 부분은 특히 북한이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 금지'를 가시화하고, 공식적인 언명까지 내놓는다면, (3)오히려 북한에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가장 의미 있는 것은, (4)6자 회담 같은 핵 회담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만큼 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까지 자연스럽게 시간을 끌 수 있다는 점이다(이 부분은 기회가 되는대로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미국 역시 적잖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1)6자 회담이 끝내 결렬될 경우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압박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명분을 얻어 냈다.

이 점은 특히 미 국무부가 지난 29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다자간 과정이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표 쪽으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공감대가 참가국들간에 형성"됐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다자회담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즉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견인할 수 있는 틀이 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의 틀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북한은 미국이 압박해온 다자 회담에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6자 회담 1차 회의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이 약속은 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자칫하면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국제적인 대북 압박 체제 형성에 명분을 줄 수 있다.

(2)또 부시로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핵 문제로 인한 위기 상황을 좀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북한에 대한 정밀 폭격이나 전면전은, '현재'의 부시로서도 부담스러운 카드다. 아프간 침략, 이라크 침공, 중동 평화 로드맵의 위기 등 상황은 부시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여기에 국내 경제까지 자신의 재선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시로서는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손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제까지 '북한 위협론'을 활용해 미사일 방어 체제를 추진해 왔고,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다시 쥐게 된 점 등을 고려하면, 당장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 보다는 여전한 '악의 축'으로 남겨두고, 대신 위기 국면만 잘 조정하는 것이 부시로서는 나을 수 있다.

여기에 (3)차이나가 핵 문제에서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게 된 점 역시 미국으로서는 크게 남는 장사다. 즉 핵 문제 해결의 부담을 미국 스스로만이 아닌 지역 패권국인 차이나와 나눴다는 점은, 장기적으로는 두고 봐야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해결 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6자회담 2차 회의가, 한국과 차이나의 기대대로 10월에 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과의 회견이나 미 국무부의 성명 어디에도 차기 회담 일정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도 어긋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였으며 오히려 우리의 무장해제를 위한 마당으로 되고 말았"으며 "우리는 이런 백해무익한 회담에 더는 그 어떤 흥미나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고,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로서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는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하고 있다"고까지 언급했다.

미 국무부 역시 성명에서 "다음 회담의 합의와 관련 다자간 과정이 가치있고 계속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장소와 시간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같이 볼 때 6자 회담 2차 회의의 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주의해서 볼 것은, 북한과 미국 모두 6자 회담이 결렬됐다고까지는 밝히지 않은 점이다.

북한이 다소 강하게 '6자회담 무용론'을 펼쳤지만, 이 부분은 변하지 않은 미국의 회담 태도에 대한 강한 불만으로 보인다. 약간의 냉각기를 거치고 나서 차이나의 외교적 노력이 시도될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한국 역시 나름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좀 더 기대치를 낮춘다면, 올해 안에는 6자 회담 2차 회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이 차이나처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다음 회담 일정을 중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틈새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 금지'를 가시화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즉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을 포함한 어떤 형식이든 국제적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 재처리 완료와 핵 실험, 핵 보유 같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약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특히 강온파의 대립이 격심한 미 행정부 안에서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미국에 대해서는 순연한 의미의 '동시 병행을 통한 해결'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적어도 이번 6자 회담 1차 회의에서는 미국을 뺀 나머지 참여국들은 내용에는 차이가 있어도, 포괄적 단계적 해법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자신만의 '일괄 타결-대담한 접근'을 고수하는 미국에게 정책의 수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핵 문제와 관련해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공은 ~에게 넘어갔다"는 케케묵은 표현이 그것이다. 이 말은 특히 북한을 지칭하며 많이들 써왔는데, 이번에는 대상을 바꿔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공은 이제 미국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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