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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필증
ⓒ 오마이뉴스 윤성효
훈련기와 전투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주)(KAI)(대표이사 길형보)에 노조가 결성되었다.

경남 사천에 있는 KAI는 IMF 이후 삼성과 대우·현대가 각각 28.1%의 지분에다 채권단이 15%의 지분으로 참여해 설립된 회사다. '무노조'를 내세우고 있는 삼성의 계열사라 볼 수는 없지만, 삼성의 경영기법이 남아 있는 회사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이 대우종합기계가 갖고 있던 지분에 대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KAI는 창원에도 공장이 있는데, 사천1공장은 종업원 2000명의 대규모다. 서부경남 최대 사업장이라 할 수 있다. KAI 노조 결성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방위산업체인데다가 삼성의 경영기법이 남아 있고, 노사협의회가 있지만 한계를 느껴 노조가 결성된 것이 특징이다.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1공장 노동조합은 25일 사천시로부터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천영호 위원장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면서, "IMF 이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대가를 받지 못했고, 고용 불안도 느껴 노조 결성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설립신고 때는 불과 몇 명에 그쳤지만, 이후 인터넷과 현장 접수 등을 통해 신고필증을 교부받은 다음날까지 무려 300여 명이 가입했다고 밝혔다.

천 위원장은 "회사는 아직까지 노조에 대해 부정적이며, 사무실은커녕 노조 활동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서서히 깨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KAI 노조는 사무공간이 없어 인근에 있는 한국노총 소속의 대동기업 사무실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노조 간부들은 신고필증 접수를 위해 이틀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이들은 회사에 월차 휴가계를 냈는데, 회사에서는 무단결근 처리해버렸다. 이 회사 사규에 따르면 연 무단결근 3일이면 해고사유에 해당한다는 것. 이에 대해 천 위원장은 "회사에 휴가계를 내고 나왔는데 어째서 무단결근인지 모르겠다"면서, "앞으로 이것도 싸워 나갈 것이며, 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사규도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 KAI 노조는 서부경남 최대 사업장에서 결성된 것이다. 사진 오른쪽이 천영호 위원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천영호 위원장 "노사협의회 차원은 안돼" "조합원 계속 늘어나"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은 다음날인 26일 저녁 사천읍내에서 천영호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기존 노사협의회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는 한계가 있었는지?
"97년과 98년 두 차례 노사협의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사협의회 위원들이 문제라기보다는 틀 자체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의 눈치를 보다보니 노동자의 권익을 제대로 지켜낼 수 없었다."

- 노사협의회 관계자들을 만났는지. 어떤 반응인지?
"설립신고를 한 뒤 만나 입장을 전달했다. 노사협의회는 조합원이 51%일 때까지는 비노조원을 위해서라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안다. 현재 상황에서는 노사협의회도 인정해야 한다."

- 노조 결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
"IMF 이후 몇 년째 임금이 동결되었다. 그 때는 모두 힘들 때였으니까 노동자들도 같이 참자고 했다. 그런데 사측은 경영 상황을 직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설명회를 한다고 해봐야 형식적이다. 경영에 있어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하기에 하지 않는다. 직원들 스스로 우리 회사라는 인식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필요하다."

- 고용 불안도 있는지?
"몇 년전 명예퇴직이 시행되었다. 회사에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구조조정 이야기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 고용이 불안한 건 사실이다."

- 방위산업체인데, 노조 활동에 제약은 없는지?
"이제 노조 신고필증을 받았는데, 방위산업체이기에 여느 회사의 노조와 활동에 있어 제약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특별한 제약은 없을 것이다."

- 방위산업체에 노조가 생겨 물량 수주 등에 어려움이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우려는 안해도 된다. 업계 특성을 감안해서 활동을 할 것이며, 회사와 대립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를 지향할 것이다. 대한항공도 노조가 있지 않나."

- 신고필증 교부는 원만하게 이루어졌는지?
"22일 아침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을 기다렸다가 시청 민원실 문을 열자마자 접수시켰다. 담당자는 하자가 없다고 했고 곧 신고필증을 내주겠다고 했는데, 예상보다 하루 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 시청에 가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아마도 회사의 눈치를 살핀 것 같았다."

회사측 "노조, 법적으로 인정", "경영설명회도 자주 했다"

회사측도 노조가 만들어지자 상황 파악에 나서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 KAI 노무팀 관계자는 "노조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인정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법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지 않느냐"면서, "아직 조합원이 어느 정도 되는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방위산업체의 노조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 노조 공부도 많이 해야 할 판"이라 말했다. "시청에 신고필증을 교부해주지 못하도록 방해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관여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시청에서 알아서 할 문제였다"고 말했다.

"삼성의 경영 기법이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직급 등에 있어 인용한 부분은 있지만, 지금은 어떠한 교분도 없다"면서, "KAI를 삼성 계열사로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영설명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그는 "경영설명회는 자주 열어왔고 불과 한 달 전에도 노사협의회 위원들과도 이야기했다"면서, "구조조정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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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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