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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환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우리들도 죽을 맛입니다."

요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은 아침마다 전국언론노조와 중구청 직원들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져 때아닌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중구청측이 스포츠조선 사태와 관련해 언론노조가 거리에 내건 대형 현수막을 불법 부착물로 간주, 이의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구청측은 프레스센터 앞에서 철야농성이 시작된 지난 13일부터 하루 두 차례로 꼴로 농성장을 찾아 현수막의 철거를 요청하고 있고, 이에 언론노조는 현수막을 거둬들였다가 다시 내거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노조가 현수막을 내걸면 어김없이 중구청 직원들은 다시 농성장을 찾아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노조와 중구청 직원 사이에는 잦은 언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중구청은 "불법이니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말이 고정 레퍼토리이고, 언론노조는 "정당하게 집회를 하고 있는 장소에 내건 현수막을 철거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공연한 일에 핏대를 세우지 말고 방씨 일가가 소유한 코리아나호텔 앞의 고질적인 불법 주·정차부터 신경을 써라"는 것이 반박의 요지다.

▲ 중구청 직원들이 16일 오전 전국언론노조가 조선일보를 향해 내건 '조선 방사장은 성희롱 문제 해결하시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 이영환
그러던 가운데 중구청의 한 직원은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다"며 자신들의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측이 김동일 중구청장은 물론 관련 부서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화는 중구청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 서울 시청 출입기자실에서도 걸려오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중구청 자치행정과 한 관계자는 "조선일보 시청 출입기자인 K, S 기자는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 '왜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며 "조선일보가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통에 높은 분들도 꽤 신경을 쓰는 눈치여서 우리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민원'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가 나중에는 "우리가 현수막 철거에 나선 것은 조선일보가 무서워서라기보다 우리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발언을 수습하려 애쓰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K기자는 "현수막에 쓰여진 내용이 사실이 아니기에 조선일보의 일원을 떠나 민원을 제기한 것일 뿐"이라며 "이는 내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이면 이를 치워달라고 전화를 하는 것과 같은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식 전국언론노조 스포츠조선지부 위원장은 "조선일보 기자들이 '관계사' 관계인 스포츠조선 사태의 해결을 위해 나서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객관자적인 입장만은 견지해 주었으면 한다"며 "개인 자격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기자들이 구청에 전화를 하는 행위는 어느 의미로 보나 '압력'에 다름 아닐뿐더러 충분히 기자가 사주와 회사의 민원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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