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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세차게 비가 내렸습니다. '쿠르릉' 천둥소리에 잠을 깨어 베란다로 나가 보니, 기숙사 앞 정원수도 천둥소리에 놀랐는지 얼마 남지 않은 잎새를 흩날립니다. 으스스 한기가 도는 양에, 창문을 닫고 냉큼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아쉽습니다. 요 몇년 사이, 가을은 느낄 새도 없이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던지요. 올해만큼은 안되겠습니다. 11월의 마지막 휴일, 서둘러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창덕궁은 올해로 600살이 됩니다. 한양의 건설이 자신의 정적이었던 정도전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 데다, 왕자의 난을 겪기도 해서인지 태종은 경복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지금의 창덕궁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조선 왕조의 왕들과 함께 한 곳이지요. 600돌을 맞은 덕에, 그 행사의 일환으로 오늘은 옥류천 지역까지 자유관람이 허용됩니다. 이에, 떠나가는 가을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져 봅니다.

일기예보는 하늘이 곧 맑아진다고 하였지만, 하늘을 가득 메운 먹빛 구름은 아직 떠나갈 준비가 덜 되었나 봅니다. 덕분에 간간이 그 사이로 동그란 얼굴을 내미는 해는 자뭇 겸손하기까지 하여, 이순간 만큼은 자신의 양태를 맨 눈으로 봄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늘의 은쟁반은 보름달마냥 겸손하면서도, 보름달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광명을 온누리에 선사합니다. 사람의 눈을 따르지 못하는 카메라 때문에, 더 많은 이들과 은빛 태양의 아름다움을 나눌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그 해가 비추어주는 늦가을의 정취는, 그러한 아쉬움을 떠나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 자시문
ⓒ 정국진
자시문(資始門)은 1782년(정조6년) 지어진 중희당(重熙堂)의 서문입니다. 이곳은 본디 세자궁으로 지어졌으나, 정조의 손자인 효명세자(익종)가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면서부터 창덕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헌종과 철종이 주로 정사를 본 곳이기도 하며, 고종이 명성황후를 아내로 맞고 청나라나 서양의 여러 나라와 통상조약을 맺으며 사절들을 접견한 곳이기도 합니다.

훗날 일제는 중희당을 없애고, 그 자리에 후원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는데, 그 탓에 본디 중희당의 서문이었던 자시문도 지금은 마치 내의원(성정각)의 동문인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근왕파를 앞세워서 개화 정책을 추진하던 명성황후가, 구식 군대의 반란(임오군란)으로 상궁으로 변장하여 이 문을 지나 피신했을 때에도 이 나무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요.

후원으로 가는 길에 단풍나무 가지 하나가 담장 위편에 살포시 늘어졌습니다. 오목하게 패인 담장 암키와 안쪽은 낙엽들의 아늑한 안식처입니다.

▲ 궁에서 후원 방향으로 가는 담장
ⓒ 정국진
창덕궁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시설물이라면, 단연 부용지와 부용정일 것입니다. 치렁치렁 붉은 벼슬을 단 단풍나무 가지 하나가 부용정 지붕을 가리우다가, 나풀나풀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 낙엽은 부용지를 소금쟁이마냥 유영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두 층 높이의 건물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주합루입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지어져 채제공·정약용·이가환·박제가·유득공·이덕무 등 적서의 구별 없이 다양한 인재가 활동하게 되는, 왕실도서관이자 정책연구기관인 규장각이 바로 주합루 건물에 있었습니다. 아래층은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었다고 합니다. 아아, 이건 특권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눈 아래에 두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중후반 문예 부흥을 함께 했을 다산(정약용) 역시 그 아름다움을 보았을 수혜자입니다.

▲ 주합루
ⓒ 정국진

▲ 오솔길 사이로 난 계단
ⓒ 정국진
이 연못에는, 그 단면이 마치 부채꼴 모양처럼 생긴 관람정이 있습니다. 이런 모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입니다. 관람정이 이런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은 일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본디 서너 개의 연못으로 되어 있었던 이곳을 한반도 모양처럼 파서 배를 띄우며 노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연못의 이름이 반도지(半島池)이고, 정자는 관람정(觀纜亭 : 배를 묶는 닻줄을 보는 정자)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에도 가을은 여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 반도지와 관람정
ⓒ 정국진
반도지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인 존덕정(尊德亭) 위에 올라봅니다. 연못과 지면을 살포시 덮은 노란 은행잎들의 아름다움을 시샘했는지는 몰라도, 단풍나무 하나가 기둥 사이로 그 손을 쭈욱 뻗었습니다.

▲ 존덕정에서 바라본 반도지
ⓒ 정국진
여기서 조그만 산책로를 따라 걸어내려가면, 연경당 뒤편이 보입니다. 임금이 사대부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사대부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은 이 건물은, 귀하신 양반님네 집 양식이라고는 해도 역시 단청으로 꽃단장한 으리으리한 궁궐에 비할 수가 없지요. 관람객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마 임금한테도 인기가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가을은 새들의 지저귐만이 맴도는 이곳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똑같이 허용합니다.

▲ 연경당 뒤편에서 바라본 풍경
ⓒ 정국진

▲ 나무 뿌리를 치장한 단풍잎들
ⓒ 정국진
외진 곳에 늙은 나무 하나가 섰습니다. 그나마 줄기나 가지라면 모르련만, 검붉은 뿌리로는 볕도 바람도 잘 들지 않습니다. 긴 여름 동안 이끼랑 부대꼈을 녀석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기 전, 각양각색의 잎사위들이 치장하는 이 시간, 뿌리는 한 해의 가장 화려한 때를 만끽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단풍 잎새를 주워 책갈피로 삼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이 이 뿌리가 순간이나마 행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와줄 수 있는 길인 듯해서였습니다. 나는 옥류천으로 향했습니다.

▲ 옥류천의 바위 사이사이에 낀 이끼들
ⓒ 정국진
소요(逍遙)

옥을 씻은 듯 청류(淸流) 구비구비 긴데.
난간에 가까운 산빛 서늘함을 안았네.
호량(濠梁)에는 전부터 관어(觀魚)의 즐거움 있나니,
난정(蘭亭)의 술잔에 대할 만하도다.

*청류 : 맑게 흐르는 물
*소요 : 마음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다님. 산책.
*호량 : 연못을 건너가기 위한 다리.
*관어 : 물고기를 보다.
*난정 : 왕희지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정자. 옥류천의 정자를 빗댄 것이다.


▲ 옥류천의 작은 계곡 사이로 부유하는 단풍잎들
ⓒ 정국진
임금과 신하들은 옥류천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다 돌때까지 시를 짓는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위에 소개한 시도 아마 그중에 나온 것이었을텐데요. 정조가 가을의 어느날 읊조린 것이겠지요. 옥을 씻은 듯한 청류, 즉 옥류(玉流)를 따라 단풍잎 하나하나 떠 내려옵니다. 나는, '난정의 술잔'이 어쩌면 이 단풍잎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을 만끽하고 다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나와 보니, 창덕궁 600돌을 맞는 궁중음악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기념행사 대부분이 마친 상태이지만, 인정전을 감싸는 행랑을 따라 전시된 기념사진전은 내달 20일까지, 그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대조전 및 주합루 특별관람은 예약자 90명에 한하여 이번 달 말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이날 내린 비로 창덕궁이 가을을 조금 더 멀리 떠나 보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과 창덕궁의 늦가을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겨울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요.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현재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학부에 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 싸이월드 페이퍼 '몽상하는 리얼리스트의 人。文。學 이야기'(http://paper.cyworld.com/realistbydream)에도 올렸습니다. 창덕궁에는 11월 27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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