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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전 <시민의 신문> 이사는, 이형모 전 사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촉발된 <시민의 신문> 사태 관련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지난 22일 반론을 올렸습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재반박하는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주>
▲ '<시민의 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7일 오전 이사회의 주주총회 강행을 앞두고 프레스센터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상법상 절차와 요건을 갖추지 않은 불법 주총"이라고 맹비난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현백 전 <시민의 신문> 이사이자 본 상담소도 회원단체로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쓴 "내가 본 <시민의 신문> 사태의 진실"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에서 말 걸고 싶어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함께 이 글을 씁니다. 많은 말들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시민의 신문> 이사직, 중립과 객관의 자리?

먼저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진실'에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습니다. 정현백 대표가 쓴 글의 제목은 "내가 본 <시민의 신문> 사태의 진실"인데, 정 대표가 보는 것이 사태의 진실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권력은 무엇일까요.

정 대표는 기고글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것이 왜 정당했는지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본 사태의 진실'이나 '이제는 밝힐 필요가 있는' 진실이 아니라 평가받고 토론해야 할 대상입니다. 특히 <시민의 신문> 이사진은 이 사태에서 성추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시민의 신문>의 노조원 등을 돌아봐야 할 핵심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BRI@직장을 잃게 될 24명의 직원을 고려해 경영 정상화에 애썼다고 하면서도, 이 전 사장이 직원 6명을 상대로 낸 1억 8천만원 상당의 명예훼손 손배소의 배경을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진실'을 택했다는 뜻입니까.

정 대표가 이번 사태에서 이사진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사라서 그렇게 행동했다', '이사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 정 대표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로부터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정 대표가 <시민의 신문> 이사로 임명된 이유는 여성운동가 출신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 대표에게 <시민의 신문> 이사이기 전에, 여성활동가 정현백 대표의 정체성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시민의 신문> 이사회는 다른 사회단체 운영위원회처럼 더 좋은 운동을 위한 논의기구이지, 친목회나 동창회가 아닙니다. 운동가 출신의 대표가 '그 비판은 여성단체연합이나 성폭력상담소가 할 것이고 나는 이사니까 다른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역할을 분열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사진의 '합의'는 누구를 위한 합의였나

▲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 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 대표의 글에서 성추행 사건의 합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불철주야 노력하여 합의를 이끌어내었다"고 하였는데, 불철주야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입니다.

해결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포괄합니다. ▲동일한 폭력과 기본권 침해가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 ▲주변인과 단체 구성원들이 일상생활에 변화를 줄 것 ▲피해자가 소속 단체에서 배제되지 않을 것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대안을 위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 등입니다.

합의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혹은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선택 중 하나입니다. 가해자로 인해 생활, 학습, 노동, 운동의 공간이 박탈되고, 그로 인한 피해를 금전적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치유 작업은 피해자의 몫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결정은 치유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므로 피해자가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정 대표를 비롯한 이사진이 불철주야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하지만, 합의된 내용이 피해자의 선택이었는지, 합의 내용에 있던 가해자의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 지켜보는 것까지가 '합의'입니다. 따라서 '나는 합의를 '성사'시켰지만 가해자의 불이행에 문제 제기하는 것은 여성단체가 할 일'이라는 식은 어불성설입니다.

피해자가 무엇을 요구했었는지 명확히 다시 생각해봅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반성과 재발방지의 의미로, 가해자가 시민사회에서 사퇴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민의 신문> 사장 사퇴와 피해자가 있던 H포럼 운영위원 사퇴로 축소됐습니다.

이같은 축소된 합의를 성사시킨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누구입니까. 모습을 드러내고 이야기하십시오. 가해자가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왜 '경영정상화' 방패 안에 숨어버렸습니까. 이 전 사장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고소한 것을 보아도, 그가 합의를 '면죄부'인 양 착각한 결과입니다.

▲ 활동가 모임,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소속 회원들이 23일부터 서울 종로 내수동 이형모 전 시민의신문 사장이 근무하는 사무실앞에서 '성폭력 가해자 이형모는 명예훼손 '역'고소를 철회하고 시민사회운동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민사회가 침묵하는 한 성폭력은 반복된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피해자를 향해 '반성하고 사과하라'는 성명서는 의미없는 확성기 같습니다. 가해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명예훼손 손배소는 성찰의 영역을 닫아버리는 외길인데, 가해자는 취하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사실, 1억8천만원이라는 금액의 무게에 피소된 사람들의 마음이 위축되고 있어서 무섭습니다.

합의 내용이었던 '고용 보장' 문제는 피해자가 현실적인 눈치와 압력과 싸우느라 녹초가 돼버려, 결국 포기하게 되었듯 말입니다. 가해자는 사라졌고, 가해자를 규탄하는 1인 시위자에게 삿대질하던 유명 운동권 인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할 관련자들도 사라졌습니다.

여성단체에 대한 책임론이 편파적인 소문과 함께 비난처럼 떠도는 가운데 공론의 장에 글을 기고한 정 대표에 되레 고마운 심정마저 듭니다. 그나마 이사진의 행동과 입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2004년, 비슷한 사건으로 재발방지 약속을 했던 이 전 사장은 2년 후 같은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잘만 가면, 민형사 소송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사람들은 체념하게 될 것입니다. <시민의 신문>도 망해가고 있습니다. 2년 후, 같은 일이 반복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지원과 연대는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이들에 대한 지원, 사건해결과정을 돌아보는 작업,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의 공감과 에너지가 공급되기를 기다립니다. 성폭력에 대한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을 기다립니다.

태그:#성폭력, #운동사회 성폭력, #정현백, #시민의 신문, #이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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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4월 문을 연 이후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법/정책 마련 및 인간중심적인 성문화 정착과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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