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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학원 관계자들이 전자기타로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며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자료사진·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애가 학교에서 아동에 대한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는 용지를 들고 왔다. 주소며 전화번호며 적어 내려가다가 끝 부분에 다니는 학원을 적으라는 난을 보았다.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상세한 설명까지 있었다. 그 난은 아동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이 한두 개가 아님을 간파라도 한 듯 칸도 널찍하니 적기에 좋았다.

그러나 적을 게 있어야지. 나는 없을 무(無) 하나만 쓰고 그 지점을 통과했다. 그러다 검토차원에서 다시 한 번 죽 훑어 보다가 '이거 너무 무관심해서 혹여 내 아이가 천덕꾸러기가 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래서 없을 무에 작대기 하나 그어 부연설명을 적었다.

'집에서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아직 어려서 학원은 생각하지 않고 한 4, 5학년 정도 되면 아이의 반응을 살펴서 운동학원을 한 군데 정도 보낼 생각'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남들은 이 난을 어떻게 채울까 상상해 보았다.

[사례①] 32평 아파트 전세값과 맞먹는 과외비

내가 내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는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돈이 아까워서다.(만약 보내야 할 이유가 생기면 그 돈 내 먹고(?) 직접 가르치겠다.) 교육적으로 각종 사교육의 난무가 아동을 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내지 않는 것은 두 번째 이유다.

한 지인은 중3과 초등생 아이 둘 과외비로 한 달에 100만원 든다고 하였다. 셈에 서툰 나지만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암산에 들어갔다. 한 달에 100이면 열 달에 1000, 열두 달이면 1200만원? 그 지출이 큰애 고3까지 4년간 죽 간다고 할 경우 1200 곱하기 4는 4800. 4800만원은 우리 동네 32평 아파트 전세값이다.

아파트 전세값 4800만원은 시간이 지나도 내 돈이지만 4년 과외비 4800만원은 4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만이다. 세상에 그보다 허무한 일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게다가 돈 들인 거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공짜라도 사양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고 어렵더라도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야 할 그 수많은 시간을 타의에 의해 공부하고, 놀 자유라고는 눈금만큼도 없이 늘 빡빡한 스케줄로 살게 하다니. 아무리 성적이 오른다 해도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순간순간 즐거운 삶, 친구들과 아낌없이 까르르 거리며 나름대로 인생을 설계해보는 게 정작 중요한 게 아닌가 말이다.

[사례②] 초등생부터 '공부 포식', 중고생 되면...

내 아이와 같은 학년인 동네의 한 아이는 전 과목 공부방 과외에다, 기본 중의 기본이 된 피아노, 영어에다 새로이 필수가 된 '논술'까지 합쳐서 매일 매일 '공부 포식'을 하고 있다. 내 아이와 달리 그 애는 덤벙대지도 않고 차분해서 무리하지 않아도 총명하게 잘 따라갈 아이인데 끝없이 되풀이되는 문제 풀이와 학원 행이 안쓰럽다.

비용으로 따지면 전과목과 논술 합해서 15만원, 영어 10만원, 피아노 6만원 해서 3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교재 값이라며 별도로 받는 액수까지 합하면 여기서 몇 만원 더 추가해야 한다. 아이의 엄마는 맞벌이를 해서 그런지 과외비용을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초등 저학년이니 그렇지 고학년으로 올라가고 중고생이 되면 [사례1]의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은 과외비를 지출하기 쉬울 것이다. 초등생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 어린이집 시절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 수많은 학습지와 학원 행이 아이의 내적 성장에 과연 얼마나 거름이 될지….

부모보다 더 좋은 선생은 없어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시절 함께 TV를 볼 때면 이따금 뉴스의 한 장면을 부연 설명해주곤 하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촌부 아버지가 알고 있던 지식은 별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으나 어린 날의 나에겐 무척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울 아버지가 세상을 잘못 만나서 그렇지. 다른 이웃집 아저씨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암.'

세월이 흘러, 그 아버지에 그 딸인 나는 그 옛날 아버지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아들에게 톡톡히 써먹고 있다. 물론 아버지보다는 내가 아무래도 내용적으로 풍부(?)한 것을 아이에게 전해주는데 문제는 짱구를 닮은 아이가 도무지 엄마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의 어떤 설명에 감동하여 추가로 진지하게 질문해 올 때는 '그래 계속 이렇게 나가면 되는 거야' 안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육식의 종말>을 읽으면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나오는데 나는 그것을 아이에게 그대로 이야기해준다. 이러이러해서 인도 사람들은 소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야, 라고 말해주고 얼마 지나면 아이는 그새 잊어버렸는지 '엄마 인도 사람들은 왜 소를 좋아한댔지?'라며 물어온다.

그러면 나는 또 이러저러해서 라고 설명을 해준다. 몇 번을 그렇게 들으면 완전히 기억하게 되는지, 그 증거로 어느 날은 아이가 나에게 질문한다.

"엄마, 인도사람들은 왜 소를 좋아하는지 아나?"
"몰라, 왜 그렇대?"
"엄마는 그것도 모르나, 바래이. 첫째, 소는 밭에 나가서 일하제. 그리고 우유도 주제, 그리고 그 똥을 말려서 불을 피우면 밥도 할 수 있제, 또, 그리고 무엇보다 송아지를 낳으니까 너무 좋은 거지."
"그렇네…."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같은 경우도 옛날 얘기해준다며 구구절절 얘기해주고는,

"엄마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저기 책꽂이에 있는 <아리랑> 열두 권에 다 나오니 나중에 크면 직접 읽어봐라. 엄마가 얘기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얼마 전에는 몽골 초원에서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럴 때면 즉각 아이를 불러서 같이 보면서 설명을 해준다.

"저기 둥근 천막집 있제. 저게 바로 '게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의 김장은 김치이지만 저분들의 김장은 뭐라고 했지?"
"엄마, 양고기 썰어 널어 말리는 얘기는 제발 고마 해라."
"아니, 직접 보라고. 봐, 저렇게 널어 말리잖아. 그리고 우유로 요구르트 만드는 것도 나오잖아. 날씨가 추우니까 그냥 아무 데나 둬도 냉장고나 다름없고….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힘든 자연환경 속에서 다들 지혜를 발휘하며 저마다 저렇게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이처럼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뭔가를 얘기해주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아이는 나에게 무엇이든 물어보게 되고 나는 나대로 성실하게 답해주게 된다. 나아가 지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친구(타인)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지 요령도 일러준다. 공부가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삶의 과정 자체가 공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무엇보다 아이에게 시시콜콜 얘기해주는 것이 취미이다 보니 나는 나대로 평소에 늘 뭔가 탐구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래저래 한없이 부족하고 게으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그 어미에 그 아들일 테니 특별히 욕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물론 이러는 나도 어느 순간 확 돌변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지 싶다. 아니, 살면 살수록 작금의 우리 교육 행태에 반기를 들고 싶어진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공부는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 영악함이 너무 끔찍스럽다.

하여간, 아이가 초등 저학년인 지금은 무엇보다 공부 스트레스 없이 열심히 놀게 하고 싶다. 놀게 하면서 엄마와의 소통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저도 모르게 뭔가를 습득하다가 정말 어느 날 '쿵!' 자신의 기호를 발견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본다.

태그:#수능, #대입, #입시,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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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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