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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심야과외에 대한 <서울신문>의 보도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수업'을 받는 것은 어떤 일일까? 즐거운 '놀이'까지는 안 되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익히는 흥미진진한 '배움의 시간'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지게 되는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겹더라도 해야만 하는 그 어떤 것, 더 정직하게는 학생으로서 의무로서 '노동'과 같은 것일까?

그 어느 쪽이라도 중요하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놀이라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지 하루에 서너 시간은 몰라도 10시간 이상 한다면, 아니 해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놀이'일 수 없다. 그게 만약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 같은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오늘(26일) 학원 심야과외 금지문제를 다룬 <세계일보>와 <서울신문> 기사를 보며 드는 단상이다.

지난 주말 일부 방송 보도로 제기된 학원 심야과외 금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새삼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그동안 무력화됐던 사설학원의 심야 교습 규제가 3월 23일부터 개정된 학원법(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육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적 근거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일부 방송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오늘 <세계일보>와 <서울신문>이 이를 본격적으로 쟁점화 했다.

공부 10시간 이상 한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세계일보>는 1면 머리기사(유덕영ㆍ장원주 기자)로 3월 23일부터 개정된 학원법에 따라 학원들의 밤 10시 이후 교습이 법적 처벌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심야 교습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울 학원가 풍경을 전했다. 서울 강남과 목동의 학원가에서는 25일 밤 11시 넘게 수업이 끝나는 풍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밤 10시 넘어 학원에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세계일보>는 "원래는 밤 12시 25분에 끝나는 데 오늘은 시험을 봐서 일찍 끝났다"는 중학생 이 모양(15)의 말을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반응이다. 그 화살이 위법행위를 태연하게 무시하고 있는 학원 쪽이 아니라, 교육당국 쪽으로 향하고 있다.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학원 관계자들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 발상"이라고 목소를 높이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공교육 정상화 등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무리하게 학원 수업단속만 밀어붙일 경우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그동안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 교습 금지'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서울시교육청이 한 발 후퇴할 조짐까지 보인다.

<서울신문>은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심야과외를 밤 11시 까지 허용'(강아연 기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오후 10시로 제한했던 학원 심야수업 제한 조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에 따라 이번 주 중 내부 논의를 거쳐 오후 11시로 시간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6월 시의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이르면 7월 중 조례 개정안을 공포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동안 초중고교 학부모, 학생, 교사, 학원 관계자들 2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밤 11시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차지"해 이 같은 방침 변경을 결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대구, 충북, 충북, 경북 등 5개 시․도 교육청에서는 조례를 통해 밤 10시 이후 심야 교습 행위를 규제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첫 도입한 것은 1995년부터다. 2004년 학원의 반격이 시작됐다. 근거법이 없는 서울시교육청의 조례는 무효라는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패소했다. 사실상 심야교습규제가 무력화됐다.

이에 따라 2006년 9월 학원법 개정을 통해 근거조항이 마련됐다. 각 시․도 "교육감은 학교의 수업과 학생의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시·도의 조례가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학교교과교습학원 및 교습소의 교습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개정 조항은 3월 23일부터 효력이 발효됐다.

하지만 이 개정 학원법은 효력도 발생하기 전에 사실상 사문화될 '역풍'을 맞고 있다. 우선 현실이 그렇다. <세계일보>와 다른 언론 매체들이 전하는 것처럼 밤 10시 이후의 학원 교습 행위는 이제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도 크다. 당장 비즈니스에 큰 타격을 받게 되는 학원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학부모들의 반응 또한 <세계일보> 등이 전한 것처럼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들인 학생들의 반응은? 사실 그것이 궁금하다. <세계일보>가 전한 서울시교육청의 설문조사 결과가 그나마 참고할만한 자료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 설문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감한 현안으로 부상한 지금 이를 공개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게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쩌라는 말인가?

▲ 강남 대치동 한 학원의 상담실.
ⓒ 연합뉴스 진성철

개정 학원법 효력 발생 전에 사문화되나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들은 수업이나 학원 강습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드는 '놀이'까지는 아닐지라도 하루에 7~8시간을 넘어, 10시간, 12시간씩을 해도 견딜만한 그런 것일까?

어떻게 10시간, 12시간이 되느냐고? 쉽게 계산하자. 고교생들의 아침 등교시간은 보통 7시 30분이다. 아침 자율학습 1시간에 정규수업 7~8시간을 더하면 그것만 해도 8~9시간이다. 여기에 학원 강습 한 두 시간 만 더해도 하루 10시간은 보통이다. 종합반이라도 듣게 되면 10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같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다.

쉽게 말하자. 어른들에게도 하루 8시간 넘는 노동은 벅차다. 그것도 꼼짝없이 죽치고 앉아 해야 하는 작업이라면 더 그렇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2년, 길게는 3년 이상을 그렇게 하라는 것은 거의 '죽음'과 같은 일이다. 어떻게 그런 작업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겠는가? 그런 중노동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나 있겠는가?

공부하겠다는 데, 학원 강좌라도 듣지 않으면 따라 갈 수 없는 데 무슨 호사스런 이야기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밤 10시 학원 심야 과외 규제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아이들'이다. '공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하루 10시간 넘는 '중노동'을 강제하는, 허용하는 사회는 청소년 학대의 사회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학대다. '학교수업'을 위해서라는 법조문은 잊어버리자. 법조문에서 살려야 할 조항이 있다면 바로 '학생의 건강'이다.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최소한 7,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는 것은 굳이 과학적인 증거를 들이 댈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밤 10시로 규정된 학원 심야과외 시간을 더 연장시켜야 되는 것일까?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런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OECD 교육통계 결과를 보면 2005년 기준 우리나라 수업일수는 초ㆍ중등 모두 220일로 OECD 평균보다 초등은 33일, 중등은 35일 더 많았다. 수업시수에서도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함께 수업시수가 가장 많은 상위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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